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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 나는 지옥을 봤다

by 청사

지옥을 어떤 곳일까? 살고 싶지 않은 곳,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은 곳,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곳, 삶이 불가능한 곳, 저주받은 존재만 있는 곳, 누구나가 싫어하는 곳 등일 수 있다. 내게 묻는다면 지옥은 생명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폴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폼페이(Pompeii)는 고대 로마 제국의 색깔로 덮인 유적 도시라고 알려져 있기에, 발길이 닿는 대로 가볍게 가도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자 예기치 않은 모습과 마주쳤다. 멸망한 도시에 깊게 가라앉은 슬픔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화산이나 지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뉴스로 전해지는 분화나 지진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자신과는 관련성이 매우 적은 자연현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화산의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가 순식간에 삼켜버린 도시를 목도하게 되면서, 마치 성서에서 말하는 심판이 내려진 현장 같아 전율을 느꼈다.

이곳은 낭만의 징표인 포도와 포도주가 생산됐고, 상업이 번성하여 로마 귀족의 휴양지로 이용된 곳이었다. 플라비우스(Flavius) 왕조가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Monte Vesuvio) 화산이 폭발하여 3미터의 잿더미에 깔려 약 2,000명의 생명이 빼앗겼고, 도시의 붕괴와 함께 역사에서도 사라졌다.

15세기경 수로 건설을 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유적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748년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Maison de Bourbon)가 발굴을 시작하면서,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폼페이 양식을 담은 미술품 등 가치가 있는 유물은 프랑스 왕궁으로 옮겼고, 나머지 유물들은 거의 방치되었다.

186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초대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Vittorio Emanuele II)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를 책임자로 임명하여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 피오렐리는 유적들이 쌓여 있는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활양식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재생하였다. 그 결과 로마 제국의 전성기 때의 별장, 거주지, 목욕탕, 원형극장, 상가, 약국, 거리, 생활도구, 사람 등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그 후 베수비오 화산은 1944년 분출하여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그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미육군의 항공대가 화산재를 뒤집어쓰는 피해를 입었다. 그처럼 베수비오 화산은 다시 분출할 수 있는 활화산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베수비오 화산 연구센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폼페이의 참상은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정치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Bulwer-Lytton)은 『폼페이 최후의 날』(1934년)이라는 소설을 썼고,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는 『폼페이』(2003년)라는 소설을 썼다. 2014년에는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영국의 유명 고고학자 메리 비어드(Mary Beard)는 『폼페이 :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1972년 영국의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폼페이 원형극장에서 무관중 공연을 했다. 2016년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사회운동가 데이비드 길모어(David Jon Gilmour)는 폼페이 원형극장에서 라이브 연주를 했다. 2010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4인조 록 밴드 바스틸(Bastille)은 폼페이 화산폭발 내용을 가사로 한 <Pompeii>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가곡으로 알려진 <푸니쿨리 푸니쿨라>라는 곡도 만들어졌다.

예술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희로애락을 담는다. 폼페이를 주제로 한 각종 예술은 축제보다는 산자가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형식을 띠었다. 천오백 년 전 웃음과 삶이 넘치던 휴양지가 가장 비참하게 변한 곳에 서게 된 관광객으로서 ‘나는 과연 이 순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봤다.

무너져 있는 집을 보고 또 보았고, 활기차게 밟아댔던 낡은 돌길을 걸어갔고, 미래를 위해 꿈을 꾸는 듯한 화석이 된 어느 여인과도 마주쳤다. 주인을 기다리는 밥그릇을 봤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문과 담장을 봤다. 생명이 고갈된 천년의 죽음을 봤고, 최후의 심판을 본 것이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온몸에 돌아 한기가 왔고, 뭉개진 무지개처럼 검붉은 마음이 범벅이 되어 뒤엉켰다. 먹구름은 떠나지 못한 영혼의 그림자처럼 심신을 휘감았고, 지나가는 바람은 미련을 담은 아우성으로 들렸고, 소나기는 색이 바랜 하얀 피의 흐름이었고, 고요함은 죽은 이들의 무수한 독백이었다. 발을 디딜 공간과 숨을 내쉴 공간과 눈을 둘 공간을 급하게 찾아야 했다.

인간은 생(生)을 살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사(死)를 맞이하는 불변의 법칙을 따른다. 생과 사를 가장 깊게 겪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생물이기 때문이다. ‘폼페이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자신의 생이 어떻게 마감됐는지 알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왜 발길을 돌리지 못했을까?’라는 후회와 함께 깊게 자리 잡은 눈망울과 허공을 향해 빌고 있는 두 손의 바람은 그들 생의 종언에 대한 안타까움을 위로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지옥은 살아갈 희망이 없는 곳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곳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거나 지독한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앗아간 세상이 아닐까? 사지가 후들거린 채 자신들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어버리게 한 그런 지옥을 목격하면서, ‘나도 지옥에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에 화들짝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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