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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 눈물이 마른 강

by 청사

예술은 허구이다. 그러나 예술은 이미지화하여 실체가 갖는 힘보다 더 큰 의미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거기에는 스스로 종속되는 자유의 헌납이 있을 뿐 아니라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숙명이 더해진다. 그 경우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초능력을 가져 생존한다. 그것이 허구라는 이름을 가진 예술의 운명이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 중심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 Detail, Giudizio Universale,1541년) 제단화는 천장화 <아담의 탄생>을 그린 뒤 20년이 지난 뒤 219대 교황 클레멘트 7세(Clement VII)가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려달라는 제의를 받아 시작되었다. 그 후 220대 교황 바오로 3세(Paolo III)가 다시 의뢰를 하자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교황청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임명, 장려금으로 매년 금화 1,200 에퀴를 평생 지불, 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작품 내용에 대한 관여금지 등의 조건을 걸었다.

그 말을 들은 교황 바로오 3세는 “나는 당신의 그림을 갖기 위해 교황이 되기를 30년 동안이나 기다렸소”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미켈란젤로는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신의 루네트화 2점, 형식미와 우아미를 강조한 페루지노의 <성모승천>, 그 이외 <예수님의 탄생>과 <모세의 발견> 5점을 제거했다. 61세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종교적, 예술적, 시대적 시상을 가지고 심판의 구도를 완성했다.

<최후의 심판>의 모티브에는 당시 매우 암울했던 시대상이 반영되었다. 로마는 스페인 군대에게 점령당하여 약탈당하고 황폐화되었다. 유럽은 종교개혁을 주장하는 신교세력과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 구교세력 간의 분열로 전쟁에 휩싸였다. 그 과정에서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그런 상황을 심각하게 목도한 미켈란젤로는 종교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시대와 인간을 보면서 신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1541년에 완성된 <최후의 심판>은 다양한 종교적 예술적 시대적 함의를 갖게 되었다. 도상에는 심판장,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 천사, 천당으로 들어가는 사람,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 연옥에 있는 사람 등이 각자의 역사적이며 허구적 임무를 받아 정지된 행동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심판장 상단 중앙에는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며 나타난다. 날개 없는 천사들이 심판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심판장 중앙에 천국이 열리고, 심판자 그리스도는 오른팔을 치켜들어 선택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를 갈라놓는다.

일곱 천사가 곳곳에 있는 죽은 자들을 심판의 나팔로 소환한다. 대천사이며 수호자 미카엘(Michael)이 구원의 명부를 펼쳐 들고 있다. 반대쪽의 천사는 지옥의 명부를 펼쳐 들고 있다. 사람들은 덕행과 악행의 무게를 잰 다음 구원받는 영혼과 저주받는 영혼으로 나뉘어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진다. 구원자는 적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는 많아 보인다.

심판장의 중앙 왼쪽에는 천국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의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로 충실한 열두 제자, 순교한 성자, 그리고 선한 행동을 한 자들이다. 그들은 각자 순교 당시 고문당한 형구 또는 상징적인 물건을 들고 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매우 고통스럽고 험난해 보인다.

세례자 요한은 망토를, 성 안드레는 십자가를, 성 바르톨로메오는 그의 벗겨진 가죽을, 성 로렌스는 쇠살대를, 성 라우렌시오는 석쇠를, 성 블레이스는 달군 쇠빗을, 성 카타리나는 바퀴를, 성 베드로는 두 개의 열쇠를, 시몬은 큰 십자가를, 회개한 도둑 디스마는 작은 십자가를,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는 부서진 칼날 바퀴를, 세바스티아노 성인은 화살을 들고 있다.

단테의 <신곡>에서 천국은 모든 영혼의 본 거주지이기도 하다. 하늘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돈다. 단테는 하나님의 모습을 산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빛으로 감쌌다. 천국은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 등이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주 전체는 신의 무한한 창조능력에 의해 운영된다. 단테는 천국을 악이 없는 세상으로 빛과 같이 광채가 덮고 있는 세상으로 상정했다.

<요한계시록>(21장 1절, 22장 5절)에서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신랑을 맞는 아름다운 신부 차림의 하나님이 재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어주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보석과 같은 도성이 있는,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이 있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와 열매가 있는,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되는, 저주받을 일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는, 하나님이 영원히 무궁토록 다스리는 세계이다.

미켈란제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천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세계인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 다만 심판자가 가리키고, 구원받은 자가 향하고, 천사들이 안내하고 있는 곳일 뿐이다. 더욱이 인간계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악을 심판으로 제거하고, 다시는 심판과 악이 소환되지 않는 눈물이 마른 강과 같은 상징화된 허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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