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설렘이다. 삶을 존재하게 하고, 생의 의미를 갖게 한다. 항상 마음속에 있으면서도 단 한방에 유리알처럼 깨지는 시대가 됐다. 원가족(Family of origin)이라는 말이 귓속을 후벼 판 적이 있다. 왜 원가족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원가족은 개인이 태어나 처음으로 신체적 · 심리적 · 정서적 삶을 시작한 가족을 의미한다. 핏줄로 연결되어 유아 시절부터 함께 보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냄새를 가장 알고 있다.
생식가족(Family of Procreation)은 결혼해서 새롭게 형성된 가족을 의미한다. 생식가족은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그들만의 냄새를 만든다는 점에서 또 다른 원가족을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가족이 지속되고, 가족의 확대와 번영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원가족이든 생식가족이든 가장 깊은 설렘과 기쁨을 동반하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 경제적 환경들이 변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원가족 간의 가족애도 흔들리는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 결혼 대신에 미혼이나 비혼, 나 홀로 가족, 부부가족, 졸혼 등 새로운 시대성을 담은 소수 또는 단독가족이 생겨났다. 가족 간 알뜰하게 챙겨주는 과정에서 생겨났던 가족 구성원의 냄새가 사라지거나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하고 싶은 설렘이 아니라 지우고 싶은 상처로 남는 경우도 왕왕 있다. 현재 우리 가족은 안녕한가 라는 질문을 문뜩 해본다.
메스 미디어에서 주워들은 원가족여행이라는 개념이 마음속 깊이 닿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쁘게 살다가 숨을 돌리고 하늘을 보는 순간에 훅 들어왔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간 외로운 작은 돌처럼, 정서적 동일성, 정체성의 확인, 편하고 자유로운 만남, 목마른 그리움 등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면, 마음속 구석구석에서 점차 빠져나가는 허전함을 채우고,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설렘을 맛보기 위한 원시적 사고가 발동한 것이 분명했다.
원가족여행을 한번 했으면 하는 열망이 새파랗게 피었던 것이다. 큰 아이가 시집을 가 새로운 가족을 꾸려 냄새가 엷어져 그런지도 모른다. 가족의 분산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휑하니 비어버린 방을 보거나 가끔 집에 들르면 마음속에 있는 설렘이 요동을 친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언제 다시 오니?”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
더욱이 최근 둘째 아이의 결혼 날짜가 결정됐다. 벌써부터 또다시 허전하게 만들어질 블랙홀이 두려워진다. 만사 제치고 원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티르키에나 두바이 중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자유여행이나 패키지여행 중 어떤 여행을 선택할 것인지가 화두였다. 동서문화를 걸치고 있는 티르키에로 갈 것인지 아니면 생소하면서도 떠오르는 신천지 두바이로 갈 것인지, 그리고 가고 싶은 데를 골라 가는 자유여행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행사가 정한 일정을 소화하는 패키지여행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논의 끝에 이번에는 전혀 색다른 문화를 가진 두바이로 가고,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이 포함된 혼합형 여행을 선택했다. 아내와 나는 그곳을 가는 데는 몇 가지 잔잔한 우려가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리고 유럽여행을 하면서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장시간 비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국적인 나라에서의 습관과 음식의 차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행의 즐거움은 기획하여 준비하고 떠나는 설렘을 만끽하면서 반은 누린 셈이 된다. 출발을 앞두고 시간에 딱 맞춰 가자고 주장하는 아내와 작은 아이, 미리 여유 있게 가자고 하는 나, 그리고 가면 된다는 큰 딸 등이 시간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결국 운전대를 잡은 나의 의지대로 진행됐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인천대교를 건너 제2인터내셔널 터미널 장기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면 올수록 느끼는 것은 평일에도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주인을 기다리는 차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갔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오늘은 우리도 그들의 무리에 속하게 됐다는 다행스러움과 환희가 달콤한 양념처럼 곁들여져 발길을 재촉했다.
출국 과정은 더욱더 간단하게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IT시대의 덕분이라는 생각과 함께 국제화라는 시대변화가 만들어낸 좋은 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출국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걸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사원들이 입은 딱딱한 복장과 경직된 자세는 여전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소지 물품을 검색대 위에 올려놓고, 보안검색대에서 점검기가 몸을 흝어내리는 동안 긴장도는 극도에 달한다. 통과한 물품과 몸을 추스르면 여행은 무르익어간다.
아이들은 예전대로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주문한 것을 찾았다. 작은 아이는 면세점에서 제공한 쿠폰을 소비하느라 덤으로 소비를 늘렸다. 점점 허기를 느끼는 뱃속을 채우고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기내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간단하게 먹자고는 했지만, 돌솥비빔밥, 카레, 어묵, 햄버거 등을 주문했다. 여행은 허기짐을 채우는 여정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보고 싶은 것을 봐 마음속에 담는 신성한 기회다.
탐승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생겨나는 긴장감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기장과 승무원이 힘차게 들어가고 공항관계자가 들어서는 모습은 기다림이 만든 춤사위였다. 탑승하기 위해 몰려드는 동행 승객들은 인연이 될 것이라는 무언의 환희였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의 패션, 생김새, 짐보따리, 눈빛 등과 의미 없이 마주치면 그것으로 족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터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나이가 지긋한 부부, 단체로 보이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귀와 시야를 채웠다. 아마도 그들 중에는 패키지 동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동행했으면 하는 내 마음대로의 소망이 개입하면 절정에 달한다.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으로 구성했기에 선호하는 호텔을 선택했고, 갈 곳을 이미 선정해 놨기에 동행의 의미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찾아다녀야 한다는 약간의 불안감과 단체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동시에 작용했다. 드디어 탐승 시간에 되었다. 어린아이를 동행하는 가족, 공항서비스를 받는 승객, 그리고 고령자들이 먼저 탑승구로 들어갔다. 우리는 정해진 존을 찾아 줄을 서니 발길이 빨라졌고, 상냥하게 인사는 승무원의 모습이 보이자 이곳의 풍경과 기억이 흐릿해지며 마음은 이미 여행지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장시간 비행과의 싸움이다. 직언하면 비행기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끌어 오르는 가스와의 싸움인 것이다. 앉아서 밥을 먹고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뱃속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가스가 발생하여 비행기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10시간 비행에 좁고 틈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차오르는 가스를 처리하지 못해 안달했던 악몽이 떠올랐다. 가스를 해결하려면 자리를 이탈해서 화장실에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갈 때마다 옆 사람을 지나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항상 부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해결하면 소리와 냄새는 틀림없이 민폐가 되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지가 되지 못됐다. 그런 이유로 승무원들은 그런 생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들의 신선함과 고상함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에 가슴에 묻어 버렸다.
걱정하는 동안 차곡차곡 좌석이 채워지면서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륙하기 10분 전 채워지는 좌석과 승객의 모습을 하나하나 뚫어지게 봤다. 옆에 앉을 사람이 누구인지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여성이면 세심하게 조심을 해야 하고, 남자라면 덩치가 있어 버겁고, 아이라면 노골적으로 표현할 것 같아 두려웠다. 소심함과 두려움이 혼재되는 사이에 이륙준비 신호가 내려졌다. 그런데 옆좌석에 사람이 앉지 않았다. 앞 좌석들을 보니 창문 쪽의 가운데 좌석이 모두 공석이었다. 일어나서 들어오는 승객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승무원이 선반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운데 좌석이 공석이고 마음 편한 아내가 옆에 앉는 이 모습은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자연스럽게 가스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속마음이 서로 닿았는지 아내와 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조용히 하이화이브 했다.
이번 장기비행을 위해서 비행기와 가스에 대해서 사전에 조사를 했다. 비행하면서 많이 발생하는 가스에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었다. 비행기 내의 기압은 보통 해발 1,830미터에서 2,440미터 사이의 기압으로 조정되는데, 비행기가 하늘 위로 높게 날아오르면 지면보다 낮아지게 된다. 기압이 낮아지면, 공기가 많은 고기압인 뱃속에서 공기가 적은 저기압인 기내로 가스가 빠져나가게 되는 원리가 작용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분석을 빨간 줄로 그으면서 가스가 과학적 현상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리고 비행기 내부의 공기 순환 시스템 덕분에 가스 냄새는 덜 퍼진다는 설명이다. 기내에서 가스 냄새가 나지 않은 것은 비행기의 에어커튼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내의 공기는 수평이 아니 수직으로 움직인다. 수직으로 공기가 움직이면, 가스 냄새가 아래로 내려가 확산되지 않는다. 더욱이 비행기의 공기는 외부의 공기를 유입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외부 공기는 고온 고압으로 압축되고 200도가 넘은 온도로 가열되어 멸균된다. 비행기에는 먼지와 바이러스를 99.9%를 거를 수 있는 해파필터(HEPA Filter)가 있어 수시로 맑은 공기를 객실에 공급하고, 공기정화장치가 있어 공기 순환이 잘 된다는 것이다. 그런 설들력있는 설명은 자리에서 가스를 해결해도 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가스방출을 해도 냄새가 퍼지지 않는다는 과학적 설명을 믿고 그대로 실천에 옮길 생각이다.
그러나 마지막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가스 소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기내에서의 가스 소리를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사를 했지만, 소리를 없애는 과학적인 원리나 답을 찾지 못했다. 소리에 대한 걱정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이기에 실험을 하는데 망설여졌다. 식사도 하기 전에 가스가 뱃속에서 차올랐다. 부풀어 오르는 가스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러나 다시 가스가 차올랐다. 이번에는 독하게 마음먹고 좌석에 앉은 채 불편한 마음으로 가스를 방출했다. 그리고는 아내의 얼굴과 앞뒤 사람의 동정을 살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래도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몇 번을 실행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더욱이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던 가스 소리도 기내의 소음에 타임을 맞춰 실행하니 거의 인식하지 못하게 사라졌다. 자신만 알고 날아간 가스 냄새와 소리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같은 처지와 동등한 환경에 있기에 승무원이나 다른 승객과의 눈 마주침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 걱정이 되어 먹을까 말까를 망설였던 첫 번째 기내식은 파티의 서막이었다. 먹는 것이 몹시 기대됐고 떨리게 즐거워졌다. 오늘 메뉴는 돼지고기 슈트, 비빔밥, 파스타를 곁들인 서양식이었다. 아내와 나는 만찬을 두 배로 즐기기 위해 각각 다른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하나의 입으로 두 개의 만찬을 즐기는 맛은 원가족여행으로 얻는 눈깔사탕처럼 입속으로 펴졌고, 눈 속을 웃음으로 가득 채웠다. 밥을 먹고 곁들여 나온 빵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부푼 만족감으로 빵을 먹을 만한 여백이 없었다. 아내는 빵을 내게 주면서 가방에 넣어두라고 했다. 포획한 잼과 빵을 수거하자 잠이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가스로부터의 해방은 여행을 새로운 경지로 올려놓았다.
간식으로 따듯한 핫도그가 나온 후 두 번째 만찬을 마치니, 음악, 영화, 선잠 등이 일사철리로 진행되었다. 원가족, 가스, 기내식, 승무원, 잠, 비행기, 음악, 영화 등은 밤하늘과 낮하늘을 맞이하면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 꿈같은 구름 위를 조화롭게 행진했다. 가끔 불어오는 이상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나 주의방송은 풀어진 마음을 긴축하게 했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원가족 간의 얼굴을 서로 보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새 하늘과 땅이 맞닿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이대로 가서 이국적인 두바이 땅을 밟으면 되는 것이다. 계획한 대로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을 통해서 신문화와 문명을 흡수하고 받아들여 즐기면 되는 것만 남았다.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원가족여행’은 가족에 묻어있는 설렘을 어떻게 피어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