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천지창조이다. 잠에서 깨어나야 시작이 있다.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침 식사는 출발을 위한 중요한 의식이다. 언제부터인가 호텔식으로 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우연의 법칙을 지켜 온 지 20여 년이 됐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탈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그렇게 움직일 뿐이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몇 마디 배운 아랍어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막상 들어서자 동남아인인 듯한 안내인이 먼저 영어로 대화를 선점하는 바람에 휘말려 써먹지 못했다. 사바흐 알카이르(صباح الخي,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단어가 입속에서 돌며 행방을 잃고 말았다. 놓치는 것이 기회이고 다가오는 것이 기회라고 했던가? 아부다비를 향하는 아침은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됐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는 풍부한 유전으로 절대적 아군의 군자금 같은 돈의 난(亂)이 일어난 곳이다. 그 결과는 부유함과 화려한 건축물로 구성된 신세계였다. 돈의 난을 비난하거나 증오할 수 없는 이유였다. 탐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호기심이 있었던 곳은 영화촬영지, 모스크, 그리고 석유회사였다.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은 고백하고 싶은 연인과 동행하듯 설레고 긴장이 됐다. 내리쬐는 햇살에 달궈진 기온과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에어 컨디션 간의 기싸움이 한창이었다. 밖을 보니 다가오던 사막의 끝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도로 옆 나무들이 듬성듬성 머리숱이 빠진 대머리처럼 억울하게 서 있다. 딱풀로 사막 모래를 뭉친 벽돌로 지은 듯한 주택들이 간간이 고독하게 앉아 있었다. 그 어디에도 시원함을 연상할 수 있는 잔잔한 강이나 우거진 산을 볼만한 여지가 없었다. 열심히 진지하게 설명하는 칸두라를 입은 가이드의 말이 쌓이면서 아부다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버스로 달려가는 동안 교차로 신호에 걸린 적이 없었다. 길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볼 수 없었다. 생명이 숨 쉬는 곳이라는 사실은 거짓이고, 생명이 결핍된 사막이라는 사실은 옳다는 생각이 딱 맞은 곳이었다. 다만 사막, 바다, 주택 등 비인간들이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서로를 침묵으로 격려했다. 2시간 30분 정도 달렸을까?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아랍에미리트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7개 아미르 중 석유 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 정치나 경제 등 영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살결같이 부드러운 모래가 풍부한 곳이고,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달리는 동안 말라비틀어진 호기심을 갖고 시내로 들어서자 아부다비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부다비가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는 데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돈의 축제에 초대되면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누벨 (Jean Nouvel)의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 네덜란드 건축가 콜하스(Rem Koolhaas)의 구겐하임 아부다비, 영국 건축가 포스터 (Norman Foster)의 자이드 국립박물관,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하디드(Zaha Hadid)의 아부다비의 퍼포밍 아트센터와 셰이크 자이드 다리(Sheikh Zayed Bridge),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의 해양박물관 등이 있다. 그리고 호주의 건축 회사 DBI가 아이디어를 세련되게 불어넣은 5개 복합건물로 구성한 에티하드 타워(Etihad Towers), 미국의 건축회사 HOK의 아부다비 국립 석유 회사(Abu Dhabi National Oil Company, ADNOC) 본사 건물 등이 있다. 돈은 예술을 있게 하고, 예술은 돈을 만드는 앙상블이 연출된 곳이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아 관람하는 과정에서 아부다비가 세계적인 야외촬영지라는 것을 알았다. 온 김에 그곳의 겉이라도 핥을 샘이다. 2014년 인도 아난드(Siddharth Anand) 감독의 액션 및 로맨스 영화 〈뱅뱅〉(Bang Bang!)은 리와(Līwā) 오아시스 사막, 카스르 알 사랍 사막 리조트(Anantara Qasr Al Sarab Resort),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 등에서 촬영했다. 2015년 아브라함(JJ Abrams) 감독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Star Wars : The Force Awakens)에서는 사막 리와 오아시스가 영화 속 행성 자쿠(Jakku)의 배경으로 사용되었고, 2015년 호주의 완 (James Wan) 감독의 <분노의 질주: 더 세븐>(Furious 7)은 에티하드 타워와 에미리트 궁전에서 촬영했다. 2019년 베이 감독의 액션 스릴러 영화 <6 언더그라운드>(6 Underground)는 에티하드 타워와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촬영했다. 2024년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듄>(Dun)은 영화 속 아라키스 행성의 일부를 리와 오아시스 사막과 카사르 알 사라브 사막 리조트에서 촬영했고, 한국영화 김홍성 감독의 <기술자들>은 아부다비 국제공항과 에미리트 궁전, 힐튼 캐피털 그랜드 호텔 등에서 촬영했다. 자연, 건축물, 영화가 만나 예술로 승화시킨 천연의 촬영지였다. 감히 시나리오, 카메라, 배우, 내가 그곳의 향기를 담는 그 어느 날을 그려본다.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LOUVRE ABU DHABI)이 시야에 들어왔다. 프랑스 정부와 아부다비 정부 간의 30년 교류 협약으로 탄생한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을 변질하지 않는 직사광선처럼 곧게 째려봤다. 빛의 장인이라 칭송 된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은 천정에 7,850개의 구멍을 뚫고 햇빛이 투과되도록 하여 벽과 바닥에 다양한 무늬를 만드는 별 모양의 돔으로 설계했다. 피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사랑의 빛으로 만든 것이다. 동시에 메카, 예루살렘과 함께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메디나(Medina)에 서 영감을 얻은 전시장을 12개 구역으로 나뉘어 역사적 유물, 현대 작품,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여한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것은 감성적인 기하학과 과학적인 덧셈과 뺄셈의 산술 법칙이 잘 적용된 예술품이었다.
발을 딛는 순간 바람과 바다와 공기는 가마솥에 숨겨 놓았던 뜨거운 수증기를 한꺼번에 내뱉고 있었다. 44도의 공중목욕탕에 들어가고 말았다. 야자수와 파란 잔디가 하얗게 끓어오르는 아지랑이를 힘겹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잽싸게 우산을 펴고 선글라스를 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했지만 땀을 삼키는 숙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미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상의 노트는 없어 보였다. 묵언의 수행을 하는 조용한 걸음과 직시하는 웃음은 한번 가보라는 뜻이었다. 루브르 아부다비라는 푯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루브르’라는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라는 의미로 인식되었지만,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그것보다는 엄습해 온 더위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인간적인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루기 까다로운 열기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든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가장 위대하고 도도한 예술품이었다. 뇌리 속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이 교차되면서 발길은 아부다비의 심장부로 향했다.
아부다비의 부유함과 화려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고 랜드마크 중 하나인 에미리트 팰리스(Emirates Palace) 호텔로 향했다. 전체적으로는 사나운 자연을 은은한 집으로 생성시킨 매우 성숙한 건물이었다. 100헥타르에 달하는 넓은 열판에 선선하게 조성된 정원에는 돈과 열정으로 태어난 수많은 다둥이 가로수가 속삭이듯 인사를 했다. 점점 눈으로 빨려 들어오는 모습은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발산했다. 아라베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114개의 돔이 있었다. 그리고 금, 자개, 크리스털 등으로 장식한 72.6m 높이의 그랜드 돔이 압도했다. 황금으로 장식된 호텔은 복도 길이가 1km를 넘고, 1,002개의 샹들리에가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의 무게는 2.5톤에 달한다고 전한다. 가이드는 한국의 어느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되어 묵었던 곳으로 그 당시 화장실을 지적했다는 일화를 양념으로 곁들였다. 기대했던 르카페(Le Café)에서 금 커피와 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전에 금 술(加賀鶴)과 금 참치를 먹었으니 아마도 몸 어딘가에는 금도색이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에서 황금을 먹는 사치를 만끽한 후 잠시 단체활동에서 일탈하여 일반 서민들의 일상을 알고 싶어 약 7분 거리에 있는 아부다비 마리나 몰(Marina Mall Abu Dhabi)로 향했다. 2001년 3월 28일에 개장되어 운영되면서 글로벌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이곳을 아부다비 최고 쇼핑몰 중의 하나로 선정한 바가 있다. 다행스럽게 동행했던 파키스탄 출신의 현지인이 안내를 했다. 아부다비 도로에는 렉서스, 토요다, 중국차, 그리고 울컥하게 감성을 후벼 파게 한 소나타가 날렵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마리나 몰에 도착하여 안내인에게 다시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사례금을 줬다. 고맙다는 말이나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없이 뒷주머니에 넣고는 사막의 그림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리나 몰은 푸드점, 카페, 패션, 볼링장, 음악분수, 멀티플렉스, 전망대, 까르푸, 향수판매대, 각종 엔터테인먼트 장소 등 일상이 있었다.
매우 간결하고 정갈한 느낌의 쇼핑몰이었다. 마리나 몰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쇼핑과 레저를 즐기기 위해 온 칸두라를 입은 남성과 아바야를 입은 여성, 그리고 각 매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 현지에 살면서 쇼핑하는 동남아인,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약간의 외국인관광객 등이 전부였다. 그중에는 칸두라, 구트라, 그리고 수염 등 삼종 세트를 갖춘 남자와 아바야(Abaya)를 입고 히잡이나 니캅을 두른 여성들이 유난히 많았다. 아마도 특혜를 받고 잘 살아가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국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판매를 하는 사람이나, 구매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리나 몰에는 화합, 행복,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평화로운 웃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선물을 받은 듯한 마음을 갖고, 아부다비의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랍에미리트 이슬람 성지인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로 향했다. 2007년에 문을 연후 기도의 메카이고 관광객이면 와야 하는 관광 명소였다. 정식 명칭은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하얀 모스크(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 Mosque)이며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규모이다. 아랍에미리트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 초대 대통령 빈 술탄 알 나하얀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모스크 입구 오른쪽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각 나라의 명장들이 설계한 모스크는, 네 개의 웅장한 철탑, 82개의 흰색 대리석 돔, 1,096개의 자수정과 옥석으로 장식한 기둥, 금으로 도금된 거대한 3개의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 물빛으로 반짝이는 잔잔한 호수, 세계에서 가장 큰 45톤의 들판 같은 카펫, 세계 최대의 대리석 모자이크 등으로 구성된 설산보다도 새하얀 세계였다.
모스크는 신의 계시를 담았고 눈을 크게 뜨게 하는 곳이었다. 하늘과 땅, 신성한 공간, 평화의 상징, 우주의 통일성 등을 의미하는 크고 작은 둠이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는 듯했다. 입장하기 전 가이드는 복장이나 행동을 일일이 점검하고 안내를 했다. 뜨거운 기온을 생각해서 만든 지하 통로를 10분 정도를 따라가니 웅장하게 서있는 하얀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건물 주위에는 연못으로 조성되어 깨끗한 물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운동장 같은 빈 공간이 나왔다. 광장 안에는 단 한 개의 의자도 장식품도 없었다. 유일신을 믿는다는 교리를 준수하듯 신을 상징하는 형상도 없었다. 그냥 거대하고 텅 빈 하얀 광장이 매우 간결하고 정직하게 있었다. 알라와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청렴이나 청결이라는 생각 이외 다른 잡념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광장 주위의 찬란한 기둥,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된 복도, 각종 조각품들이 있었지만, 그런 황금빛은 청렴이라는 깨끗함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모스크에서 즐거운 충격을 받고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는 석유산업이 있는 곳을 보고 싶었다. 아랍에미리트를 연합국가로 만들고 아부다비를 수도로 만든 것은 석유산업이었기 때문이다. 1971년에 설립된 아부다비 국립 석유 회사(Abu Dhabi National Oil Company, ADNOC)가 달리는 차창 사이로 보였다. ADNOC는 토후국 중 최대 국영 석유 회사로서 유전 및 천연가스 탐사, 개발, 정제, 수송, 저장 등 석유 에너지 산업을 운영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이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석유 회사이다. 2021년 하루에 400만 bpd를 초과하는 석유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500만 bpd로 늘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현재 회장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히얀(Mohamed bin Zayed Al Nahyan)이며, 15개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해외기업을 인수하는 기업가이다. 그는 아부다비 아미르의 왕이며 아랍에미리트의 제3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왕국의 왕이 지배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비밀이 많을지는 몰라도, 주어진 힘과 지혜로 풍요롭고 행복한 아부다비를 만들고 있다는 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ADNOC의 엠블램은 초롱초롱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사냥 매이다. 허허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되어 은폐하고 있는 생물을 찾아 낚아채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동시에 험악한 사막벌판과 험난한 바닷속 탐사에 성공하여 유전을 개발한 아랍에미리트와 오버램되었다. 사냥 매와 아랍에미리트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환상의 커플로 있었다. 지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은 눈을 떠 보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움직여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사막 같은 척박한 인생의 심장을 뛰게 하려면 무엇인가를 찾아 움직이어야 한다는 순간 자각이 살아났다. 사냥 매의 천리안과 날카로운 부리로 디지털이라는 신대지에서 희망을 채굴할 수 있을는지? 가격표를 끈질기게 가늠질 한 후 주유하기 위해 집어넣은 결제카드에서 역류하는 돈의 난(亂)이 벌어지는 찰나, 직원가족들에게 자유롭게 주유할 수 있는 카드를 지급한다는 전설 같은 미담이 휘발유 향기와 함께 비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