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아주 위험한 이야기

by 청사

거대한 문어가 한 여인의 몸체를 정성을 들여 다정하게 포옹했다. 인간의 욕망과 비인간의 본능이 접점을 만들어 낸 <해녀와 문어>의 한 장면이었다. 완전한 인간 모습을 한 해녀와 해녀의 사냥감이 되어온 문어가 짝이 되어 밀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은 깊은 교감을 하고 있는 듯이 문어에게 육체를 내어 줬다.

세상을 받아낼 만큼 넓고 푸짐한 육체를 향해 부릅뜬 맑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응시하며 주둥이를 들이대는 문어는 이미 바닷속 뼈대 없는 생물이 아니었다. 여인의 마음을 알고 있는 성물이었다. 여인이 숨기고 있는 농후한 요염함과 욕망을 빼앗을 듯이 수많은 빨대로 집요하게 농락했다.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여인에게는 단 한줄기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뼈대가 없는 문어에게도 티끌만큼의 부족함도 없었다. 성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문어는 여인을 취하기보다는 차라리 사랑했다. 여인에게는 이미 다른 세계의 생물이 아니라 어엿한 존재로 있었다. 여인과 문어가 내뿜고 있는 호흡은 길게 이어져 비상했다. 차가운 바다에서의 살벌한 투쟁이 아니라 뜨거운 사랑방에서의 아름다운 교감이 있을 뿐이었다.

<해녀와 문어>의 세계는 청사초롱, 오징어, 함을 들어준 대가로 얻어낸 금전으로 부풀려진 허영과 욕망이 결코 아니었다. 이성 간의 교류보다도 더 자연스러웠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확인하는 달콤한 교감은 결코 사창가의 충동적 욕망이 아니었다. 도화지에서 살아가는 사랑이고 삶이지만 진중한 사랑이고 삶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야기였다.

매우 사치스러운 키모노를 입은 남녀가 숨어서 몰래 비밀 사랑을 했다. 위엄을 들춰내듯 묵직하고 품격이 있는 키모노를 거칠 사나이가 여성의 몸체를 노골적으로 탐했다. 울긋불긋 화려한 키모노를 입은 여성은 남성을 받아들이려 온몸으로 애원했다. 이윽고 남자와 여자는 사나운 불꽃을 튀기며 공간을 불태웠다.

정상(頂上)을 향해 달려갈 무렵 시퍼런 칼을 든 사무라이(侍)가 남녀의 행위를 사납게 노려봤다. 칼끝은 남녀의 몸체를 노리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칼끝처럼 성깔이 난 사무라이는 남녀의 욕망이 만들어내고 있는 불륜 앞에 주저 않았다. 성적 탐욕을 일으킨 바람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타인의 성은 매혹적이기에 부당하게 취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혹되어 취해버린 타인의 성은 추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허용되지 않은 성을 취했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교류하는 성은 성스럽고 부끄러움이 없다. 서로를 허용한 성이기 때문이다. 성생활을 하는 세계에서 타인의 성은 언제나 미추(美醜)의 경계선에 있어 다루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이것이 두 번째 이야기였다.

버드나무 가지 아래 빨래터에 한 여성이 묘한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여인의 눈빛은 물가에서 짝짓기 하는 모습에 몰두했다. 개들이 품어내는 발정에 여인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몸체는 흔들거리며 고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 여인의 욕망이 대응한 상황은 동물의 본능을 능가했다.

인간은 성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동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론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성은 아름다우며 추하고, 추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동물의 성은 가늠할 수 없는 것이기에 미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물가에서 벌어진 인간의 본능과 동물의 본능은 매우 닮아 있었다.

절제하는 성은 가치를 높여왔고, 궤도를 이탈한 성은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을 받았다. 절제하는 성에는 수용할 수 있는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밖으로 나온 성에는 허용할 수 없는 욕망과 추함이 있다는 전통적 기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것이 세 번째 이야기였다.

방안에 두 남자가 무엇인가에 홀렸는지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한 남자는 옆으로 기울인 몸체를 내주며 다른 남자를 유혹했다. 다른 남자는 요염하게 누워있는 남자의 육체를 향해 눈빛으로 간을 봤다. 한 손을 남자의 몸에 살며시 얹었다. 두 남성의 손길과 눈빛은 서로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들만이 아는 방식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그들의 가슴팍에는 설렘과 뜨거움이 일어나는 듯 절규를 했다. 동성 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간절함이 소통하여 흐르고 있는 듯했다. 성에는 구별이 없다는 것을 부르짖는 행위였다. 이것이 네 번째 이야기였다.

풍만하고 탐스러운 한 여인과 가냘프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다른 여인이 서로 보며 몸과 마음을 열었다. 두 여인이 나누는 눈빛에는 만족감이 있을 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서로의 만남이 어떤 경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그녀들의 부딪침은 고요했고 음침하지 않았다. 두 여인이 가는 길은 결코 탐욕으로 손잡고 가는 길이 아닌 듯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이야기였다.

남녀는 키모노(着物)로 숨겨진 사타구니 사이로 살포시 밀당을 이어갔다. 두툼해진 감성이 신체를 움직이며 폭발적인 만남을 만들어냈다. 남녀의 향기로운 입김은 헛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가닥 한가닥 서로에게 뿜었다. 깊이와 농도를 더해가는 가늠하기 어려운 한 쌍의 몸, 입술, 손은 완성체를 향해 질주했다.

이성이 있어야 하고 감성이 살아야 성립되는 그런 세계였다. 거기에는 자극적이지 않은 작고 평범한 사랑이 있었다. 노출되어도 욕되지 않는 부드러운 육체의 향연이었다. 공짜로 얻을 수 없는 세계였다. 남녀의 성은 분해되고 산화되면서 품위 있는 불꽃놀이로 승화됐다.

거기에는 결코 타락이나 탐욕으로 만들 수 없는 즐거운 미지의 성이 있었다. 재단하거나 감흥으로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겉치레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접근해야 완성되는 그런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랑을 담았고, 욕망을 부리지도 않는 육체의 미였고 남녀가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이야기였다.

내 손에는 지금까지 현혹시켰던 죄악사상을 담은 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성으로 풍미하고 있는 여섯 계단의 이야기가 있는 춘화(春畫)가 들려있었다.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봄꽃을 꺾는 모습이기도 했다. 미지의 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고, 욕망을 탐하는 세계였다. 차가운 냉소가 구석구석 피의 흐름을 멈추게도 했고, 머릿속에 뜨거운 욕망을 구석구석까지 흐르게도 했다.

춘화의 세계는 인간 성의 차갑고 뜨거운 광기의 맛을 보여줬다. 자신에게 춘화의 세계는 사랑이었고 욕망이었다. 이성으로 접근하거나 감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문명이었고 야만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인간이 숨기거나 갈구하고 있는 성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사는 성의 주인공은 흔들리는 도덕성으로 규정한 변태와 정상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곡예를 하는 듯했다. 평범한 성과 그렇지 않은 성의 세계에서 희망과 치유를 찾는다고 이해하고 싶었다. 인간의 성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춘화의 주인공처럼, 인간은 ‘타 생물과의 밀애, 불륜, 이종 간의 자극, 동성 간의 사랑, 범민의 사랑’이라는 다양한 성의 계단에 언제든지 오르거나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여섯 이야기를 맞춰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안전한 성을 추구하면서도 위험한 성에 접근하여 계단을 밟으며 정상에 오르기를 할 수 있다. 성에는 변화를 요구하는 욕망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각자의 성 결정은 ‘위험한’ 또는 ‘아름다운’이라는 기준으로 성 계단에서 곡예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의 미학적 표현은 예술이고 탐욕적 표현은 외설이 될 수 있다. 성의 본능적 표현은 생명이고 이성적 표현은 삶이 될 수 있다. 성의 감성적 표현은 사랑이고, 무모한 표현은 욕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은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성은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남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성 시대에 생명계의 성은 어떻게 존재해야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사랑이 성을 불러야 하고, 욕망이 성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현재 “도쿄의 성 자유는 어디까지 와있는지?”, “자신의 성 자유는 어디까지 와있는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울퉁불퉁한 감성 시대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익사상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시대의 대체 흐름을 확실하게 차지하고 있는 감성 시대를 느꼈다. 감성 시대를 생각하면서 ‘이성(異性)은 본능의 적자일까 아니면 사생아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 실체는 춘화의 세계에서 어렴풋이 시작되어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성은 자유이기도 하며 방종이기도 했다. ‘성의 자유는 문명이기에 숭고해지고, 성의 방종은 야만이기에 추해지는 것’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는 행방을 모르는 춘화의 성과 실체를 모르는 자신의 성을 숙제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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