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으로 반짝이는 벚꽃과 근엄함으로 빛이 나는 사무라이가 어울리는 기묘한 분위기가 공간을 채웠다.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위상과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권위를 가진 쇼군(將軍)은 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자기의 명을 어긴 사무라이(侍)들에게 할복을 허락하였다.
할복으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릎을 꿇고 단도를 들은 사무라이의 눈빛은 쇼군의 위세만큼이나 광이 났다. 생명은 충성 위에서 자라며 죽음은 의리 위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명령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처단한 것이기에 명예로운 할복을 청해 벌어진 상황이었다.
사무라이 세계에서는 자신의 죄를 갚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무사도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날카로운 칼이 충성심으로 무뎌지는 칼날을 낳고 있었다. 쇼군의 손짓으로 명령을 내리자 부관은 목소리가 터지도록 소리쳤다.
“시작해”
“예”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버리라는 단 한 마디의 명령에 일사천리로 할복을 했다. 할복하는 자들은 그들의 운명을 자신에게 맡겼고, 칼은 주인의 말을 듣고 생명을 갈랐다. 운명의 주인, 칼의 주인, 생명의 주인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칼이 인간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칼을 제압했다. 땅바닥에는 명예로 빚어낸 피의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쓰러져가는 몸체는 임무를 다한 뿌듯함에 세상을 덮으며 깊은 땅속으로 포효를 쏟아냈다. 죽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승화되는 듯했다.
충성과 복수가 동일선상에서 살아 움직였다. 서로 반대편에 있어야 어울리는 충성과 복수가 동행하며 화해를 했다. 충성이 복수의 뜻을 바꿔 새로운 꽃길을 열었다. 그것이 충성을 강조하는 무사도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이고, 사무라이 세계에 숨겨진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숙한 긴장감과 살풍경이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할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생명을 해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충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영화 〈47 RONIN〉에서 주군의 복수를 마치고 쇼군으로부터 명예로운 처벌을 허락받아 생명을 던지는 한 장면이 도쇼궁(東照宮)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사무라이의 성지처럼 보이는 도쇼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궁금해졌다. 도쇼궁이 담고 있는 무사도가 애국인지, 충성인지, 복수인지, 배반인지, 의리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깊은 산속에 떡하니 위용을 과시하는 거목, 정성을 들여 다듬어진 돌담,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 등은 잠들어 있는 도쇼궁의 주인을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견고하게 방어하는 부동의 호위병처럼 보였다.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가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창건하여 발흥시킨 무사도가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도쇼궁의 주인 도쿠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천하통일을 하여 무사도의 꽃을 피우고 막부의 영광을 이어갔다. 동쪽에 빛이 나는 궁전을 의미하는 도쇼궁에는 생과 사, 전쟁과 평화, 빛과 그림자가 하얀 보자기에 싸여있는 듯했다.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요메이문(陽明門)이었다. 도쿠카와 이에미쓰(徳川家光)가 1636년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출입문이었다. 이 궁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었다. 가지각색의 빛으로 다가오는 화려함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엄숙함은 주인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무엇인가를 봐야 통과할 수 있는 문이었다. 한 사람만을 위해 열리는 문이었다. 요메이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삶을 담고 있었고, 인간사에 붙어사는 외로움의 길을 안내하는 듯했다. 용마(竜馬), 봉황, 참새, 나비, 코끼리, 호랑이, 목단 등이 동행을 했다.
동물 가운데 2번째 그림은 거꾸로 살아갔다. 그것은 ‘마귀를 쫓기 위한 역주’(魔除けの逆柱)라고 불리고 있었다. 상하 거꾸로 새긴 것은 ‘인생을 완벽하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덕과 겸양을 표현한 것이었다.
잘 나가는 인생은 부러움을 살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시기를 사 공격이나 파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전국을 통치하고 호령했던 도쇼궁의 주인 이름에 있는 덕(德)이 연상되었다. 그것이 도쿠카와가(徳川家)가 통치하며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철학인 듯 보였다.
도쇼궁에는 목조상으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오로지 한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전란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도쿠카와는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동물을 통해서 편안함을 얻고 싶었을 것이라는 염원을 표현한 듯했다.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만이 얻어지는 것이므로 얻은 평화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동행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발길을 옮기자 신사(神社)의 건조물을 의미하는 샤뎅(社殿)이 나왔다. 내부에 지어진 사카시타몬(坂下門)의 안쪽은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묘지로 연결되는 내궁이 있었다. 내궁으로 가는 길인 참도(参道)에는 ‘잠자는 고양이’(眠り猫)가 있었고, 잠자는 고양이 뒷면에는 ‘지저귀는 참새’가 그려져 있었다. 잠자는 고양이와 지저귀는 참새는 통치자 도쿠카와의 간절하고 속 깊은 의미와 염원을 담고 있었다.
‘잠자는 고양이’는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의미하고 있는 평화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을 대하는 깊은 통찰력이 있었다. 잠자는 고양이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면서 적이 침입해 오면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는 자세를 상징하고 있었다.
실눈으로 잠자는 고양이는 침입자를 알아내는 염탐꾼이며 적을 저지하고 방어하는 파수꾼이었다. 잠자는 고양이는 도쿠카와 이에야스를 지키는 파수꾼이며 자신의 충복이며 분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국을 통치하는 막부의 생존을 위해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도쿠카와를 의미했다.
칼싸움을 통해서 통일했고,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시퍼런 도전을 제압하며 지배해 온 도쿠카와가 이룬 평화는 전쟁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동행하고 있는 누군가는 언제든지 위협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숨어있는 적으로부터 자신과 막부의 보존을 위해 잠을 자지 못하는 ‘잠자는 고양이’처럼 살아온 것이었다. 그는 평화를 누린 것이 아니라 항상 전쟁을 하고 있었다.
‘잠자는 고양이’는 한가롭게 나락을 까먹으며 즐거워하는 ‘지저귀는 참새’가 소소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였다. 참새가 누리는 평화의 세계에는 희생과 전쟁을 불사하지 않은 도쿠카와의 냉정함과 혼이 있었다. 거기에는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날카로운 통치자의 무한한 희생이 있었다.
이윽고 많은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는 신큐샤(神厩舎)로 향했다. 일본인에게 친숙한 여덟 마리의 원숭이를 그린 나무조각상이 기다렸다. 그것은 통치자 이에야스가 평생을 살아온 길이 있었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이 있었으며 생명이 녹아 있었다.
인간은 권력을 갖거나 지배를 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에 필요한 지혜와 혜안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것은 천하를 품에 안았으면서도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마른땅과 진 땅을 넘나들며 생명의 곡예를 했던 도쿠카와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첫 번째는 어머니가 세끼를 안고 미래를 걱정하는 모자(母子) 원숭이였고, 세 번째는 부모의 품을 떠나 점차 혼자서 자립하며 살아가는 모습, 네 번째는 젊은 시절 큰 뜻을 품고 천하를 향하고 있는 모습, 다섯 번째는 천하의 뜻을 품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모습, 여섯 번째는 사랑의 계절이 오면서 타인을 생각하는 모습, 일곱 번째는 부부가 되어 삶과 인생의 완숙함을 위해 힘을 모아 극복하는 모습, 여덟 번째는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어른이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돌봐주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띵하게 내리치는 것은 두 번째 삶을 사는 원숭이였다. ‘듣지 않고(聞かざる), 말하지 않고(言わざる), 보지 않는(見ざる)’ 세 마리 원숭이였다. 칼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을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보지 않는’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악한 것, 부정한 것, 권력의 시비, 도덕의 시비, 변화무쌍한 삶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필살기였다.
무사 사회에서는 칼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잡고, 그 칼은 목숨을 걸고 승부를 내는 특징이 있다. 그 세계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결코 약한 자가 아니고 강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결코 강한 자가 아니다. 약한 자의 칼날도 강한 자의 목숨을 거둘 수 있고, 강한 자의 칼날도 언제나 힘을 잃을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숭이는 만사에 대해서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경고였던 것이다.
덕으로 소중한 삶과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원숭이의 일생과 숙명은 바로 도쿠카와의 일생과 숙명이었다. 동시에 우리 인간이 직면하는 일생과 숙명인 것이었다. 원숭이의 일생을 통해서 인간의 일생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코 좌시하거나 웃어넘길 수 있는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쿠카와(德川)라는 이름에는 ‘덕이 흐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덕에 기초한 삶은 자신을 낮추어 적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 겸양의 덕을 의미할 수 있다. 그 덕 속에는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보지 않는 덕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잠자는 고양이’처럼 눈을 감은 듯이 세상을 혼자만이 몰래 듣고, 말하고, 보고 있었다.
나는 도쇼궁에 들어서서 도쿠카와 시대에 들어와 사는 듯한 착각을 했다. 전국을 통일해서 막부를 구축해 통치해 온 그의 존재가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로 돌아가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도쿠카와라는 인물과 일생이 더욱 궁금해졌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1542년 아이치현(愛知県)에서 태어났고, 유쾌한 마음을 지녔으며 품위 있는 용모를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의 관계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길과 살아남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들과의 결별이라는 숙명의 길을 피하지 않고 승부를 건 다이묘(大名)였고 전국을 통치하여 정이대장군이 된 쇼군(將軍)이었다.
전쟁을 하는 싸움터에서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전쟁을 멈추기 위한 전쟁을 했는지도 모른다. 최대의 스승이자 경쟁자이며 숙적이었던 도요토미 가를 무너트려야 하는 운명을 건 전쟁은 충성이었고 배반이었다. 마침내 전쟁과 평화라는 틀 속에서 흔들리는 무사도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그토록 열망하던 태평한 세상(泰平の世)을 바라며 에도막부(江戸幕府)를 열었다.
말년에 시즈오카 순부조(駿府城)에서 조용하게 여생을 보내다 1616년 75세로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사라졌다.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있었던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막부의 영원한 생존을 갈구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후대가 계승하도록 유언으로 남겼을 뿐 아니라 죽지 않는 파수꾼이 되기 위해 스스로 몸을 갈기갈기 찢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얻은 평화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아니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도쿠카와는 생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충성과 배반에 대해서 경계를 했음에 틀림이 없다. 충성은 충성을 낳고 배반은 배반을 낳는다는 이치보다는 충성이 배반의 씨앗이 되고 배반이 충성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깊이 경계했다. 거기에는 영원한 충성도 영원한 배반도 없다는 것을 몸소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귀재였던 그는 하나의 무덤으로, 온전한 몸으로 막부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전에 ‘시즈오카의 스루가노구니(駿河国)의 구노잔(久能山)에 유체를 매장하고, 에도의 조조지(増上寺)에서 장례식을 하며, 아이치현의 아미카와국니(三河国) 다이주지(大樹寺)에 위패를 놓고, 1주기가 지나면 태양이 빛나는 닛코(日光)에 사당을 건설하여 8주의 방패가 될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만들었다.
‘유체를 구노잔(久能山)에 묻을 때 얼굴을 서쪽으로 향해 웅크리도록 매장하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서쪽 세력에 대해서 경계하는 의미를 담았다. 유체는 비가 오는 밤 시신을 담은 관이 눈에 띄지 않도록 비밀리에 구노잔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전국을 호령한 그는 자신의 유해가 여덟 개로 갈라지는 운명과 숙명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교토의 도쇼궁(南禅寺塔頭金地院東照宮)에는 막부 정사의 유언이 남아있고, 모발과 개인이 지녔던 불상인 지넹불(持念佛)이 있다. 에도막부는 이에야스의 신격화를 위해서 전국에 500 여개의 도쇼궁을 건설하도록 했다. 영원무궁한 승리만을 거두는 그리고 영원한 주군과 쇼군으로서 남아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유언에 따라 에도막부의 3대 쇼군 이에미쓰는 아버지의 유체를 묻고 신격화를 위해 시즈오카 구노잔에 도쇼사(東照社)를 창건하여 성지로 했다. 사후 1주기를 맞이하여 8주의 적을 경계하는 전쟁의 신으로 살리고 동시에 영생을 위해 닛코에 도쇼다이곤겐(東照大権現)을 창설하여 지금의 도쇼궁(東照宮)이 되었다. 여기에는 이에야스 영혼의 분사를 의미하는 어령(御靈)을 담은 관을 안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동쪽에 영원무궁토록 빛나는 도쇼궁은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훌륭한 빛을 내고 있어 신기가 흐르고 있는 듯했다. 그 빛은 이에야스의 혼을 갈아 넣어 후대와 막부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동쪽에서 빛을 내어 서쪽의 적을 비추어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안쪽 신사(奥社)에는 녹색의 철로 된 묘지 모양의 사당이 눈앞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유체가 없고 이에야스의 혼을 묻어 수호신으로 삼고 있는 곳이었다. 이에야스를 기념하는 사당 앞에는 삼구족(三具足 : 燭台, 花瓶, 香炉)을 놓아 수호를 불심의 세계에 의존했다. 촉대는 장수를 의미하는 학과 거북으로 되어 있었다. 자신과 막부의 윤회적 삶을 불교에 의지하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삼구족 옆에는 사당에 대한 설명문이 있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 공의 유체를 모신 사당입니다. 초기에는 작은 사당으로 만들어졌지만 3대 쇼군 도쿠카와 이에미쓰 공은 무덤을 돌탑으로 개축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에도시대는 가탑(家塔)으로 불렸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사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쟁의 신으로서 평화의 신이 된 도쿠카와 이에야스에 대해서 후대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비석을 찾아봤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東照大権現安国院殿徳蓮社崇誉道和大居士’
원호는 동조대관현안국원전(東照大権現安国院殿)이며, 정토교의 법호는 덕연사(徳蓮社), 예호는 숭예(崇誉), 계명은 도화(道和)이며, 위호는 대거사(大居士)였다. 그 뜻은 ‘세상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도쇼궁의 신으로 명예를 숭상하는 도화의 대불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도쿠카와는 최고의 원화와 위호를 갖고 있었고, 거기에는 살생, 전쟁, 복수, 배반은 없었다.
도쿠카와에게 에도막부는 한시적인 육체적 삶과 영원한 정신적 삶으로 탄생시킨 결정체였다. 그렇기에 없어져서도 안되고, 망쳐서도 안되며, 사라져도 안 됐다. 오로지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체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살아서도 지켜야 하고 죽어서도 지켜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면서도 죽으면서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온전한 몸체로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는 운명을 갖고 사라졌다. 잠자는 척하며 적을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주위에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에 대해서 생사를 가리지 않고 경계했다. 사무라이로서 검과 같은 날카로움을 놓지 않았고, 승부를 내는 세계를 영원히 살고 있었기에 유체분사라는 숙명을 받아들였다. 승부사 이에야스의 진혼곡이 265년의 막부를 지켜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은 평화를 낳았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을 통일시켰던 이에야스는 전쟁주의자에서 평화주의자로 살았다. 평화는 전쟁을 낳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야스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을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평화주의자에서 전쟁주의자로 살았다. 그에게 전쟁은 평화이고 평화는 전쟁이었다. 그는 고양이가 되고 싶었고 참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도쿠카와의 삶을 보니, 범민은 살아가는 데 의미를 두고, 지도자는 지배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범민은 주어진 삶을 사는 데 의미를 두지만 지도자는 영원히 사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범민은 온전한 몸으로 죽을 수 있으나 지도자는 쪼개진 몸으로 죽는 것이었다.
목숨과 영혼을 바쳐 그토록 지키려 했던 에도막부는 영원히 살지는 못했지만 시대와 사람은 이에야스를 영원히 살리고 있었다. 무너진 막부를 보면서 원숭이의 가르침이 의미가 있었는지, 유체분사가 의미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봤다. 또한 일본은 ‘잠자는 고양이와 기저귀는 참새’의 효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가늘게 눈을 감고 여기에 있는 동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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