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침묵이 말하는 사람의 색깔

by 청사



죽음이 내려앉은 이곳이 그렇게 동떨어져 있거나 차갑게 느끼지 않았다.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는 동기가 되었고, 소소하게 벌인 소세키 선생의 저항이 올곧은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느새 발길은 이웃 묘지로 향했다. 눈에 들어온 묘비가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동공이 흔들렸다. 한 시대를 잔혹하게 휩쓸고 간 인물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놀란 만큼 무엇인가를 재빠르게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왠지 모르는 침묵이 온몸으로 스며들면서 몸뚱이가 싸늘하게 굳어졌다. 전쟁을 빼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무덤이었다. 오랜 세월 햇빛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지어왔는지 그 무덤은 매우 평화롭고 온순했으며 전쟁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사라진 대머리, 갸름한 얼굴, 덥수룩한 콧수염, 둥근 안경으로 구성된 모습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학자가 더 어울렸었다. 각이 진 군복과 날카로운 눈빛은 번뇌와 속죄보다는 문명과 야욕처럼 보였다. 주렁주렁 매달은 빛이 나는 훈장에는 하나하나 찢어진 역사가 숨겨있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얼굴에는 겁에 질린 가느다란 두려움과 검은흙 그림자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군인이나 정치가의 신분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식민지를 지배하며 국민을 동원하는데 부여된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었고, 성전이라는 명분으로 역사를 블랙홀처럼 한입에 털어 넣어 너덜너덜한 흔적만을 남겼다는 인상밖에 없었다. 동굴 속에 홀로 갇힌 외로움보다도 무서운 살 떨리는 고독함을 가졌다는 생각뿐이었다.

패전 후 도쿄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문 과정에서 그가 벌인 전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전쟁은 히로히토 천황의 의사였는가?”라는 심문에 대해서 “그 의사에 반했는지 모른다. 내각 및 군통수의 진언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 의사는 개전 칙사에서 보면, ‘중지하는 것이 짐이 의지다’라는 말씀이 명백하다.... 폐하는 최후 일순까지 평화를 희망하셨다. 이 전쟁의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지 천황 폐하를 시작으로 다른 자의 책임은 없다. 이 재판은 승리한 자의 패배한 자에 대한 보복이다.”」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의 실체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진실을 말했든 거짓을 말했든 그의 가슴에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개전은 내각과 군통수’에게 있다는 점을 암시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밝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재판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며 승자가 패자에게 하는 보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태평양전쟁이 성전이었고,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한 ‘전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책임이며 전범자로서의 책임이 아닌 듯했다.

전쟁에 진 것에 대한 책임에는 천황과 일본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을지 모르지만, 전쟁을 했다는 점에 대한 회한은 없는 듯했다. 더욱이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은 많은 전쟁참가자, 전쟁에 동원된 자, 희생된 자 등에 대한 책임은 아닌 듯했다. 그의 마음에서 ‘성전’만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한 사실은 근대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태평양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었다는 점, 전쟁을 수행해서 패배했다는 점, 자국이든 타국이든 많은 전쟁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 승리하기 위해서 전쟁을 했다는 점, 최후로 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본을 패전국으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후유증을 남겼다는 점 등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개인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 가족의 구성으로서, 국민으로서 살고자 했던 간절함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차이를 잘 알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분별력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의 깊은 내면에는 전쟁이 만들어 낸 인간적인 불행이나 악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했고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국익이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추구했던 일은 붉은 핏빛이 더덕더덕 묻은, 죽음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추구한 것은 전쟁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천황만이 있었는지, 일본만이 있었는지, 일본국민이 있었는지, 자신의 영웅심과 출세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본이 전쟁 국가가 되는데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에 대한 진위와 실체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을 보면서 보편적인 평화주의자, 조국을 사랑한 애국자라기보다는 전쟁주의자나 전쟁범죄자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인식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내게 그려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누구로부터 편견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무덤에 있는 비석에서 그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가 묻힌 무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다.

‘光寿無量院英機居士’

원호는 광수무량원(光寿無量)으로 ‘光’은 지혜를 의미하고, 수(寿)는 수명을 의미하고, 무량(無量)은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계명은 히데키(英機)이며, 위호는 거사(居士)이다. 묘비명 ‘光寿無量院英機居士’는 ‘끝이 없는 지혜와 수명을 가진 히데키 불교 신자’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나 무덤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진다.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무덤 앞에서는 원망을 자제하거나 비판을 아낀다. 그것은 이승에서의 삶을 벗어나 저승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광수무량’이라는 의미를 음미하면서 당황했다. “만약 그가 끝이 없는 지혜와 수명을 다른 쪽으로 사용했었더라면, 자신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일본과 국민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질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그를 원망하는 소리였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의 무덤을 향해서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뼈아픈 흔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역사 한복판에서 했던 일은 여전히 정당했습니까? 당신이 행한 것이 전쟁이었습니까 아니면 평화였습니까?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지금 한일 간에 일어난 역사적 비극에서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구려.”

내가 서있는 공동묘지에서 전쟁의 방관자로 낙인찍혀 비난을 받았던 소세키 선생과 전쟁 수행자로 낙인찍혀 비난을 받았던 히데키가 공간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누워있는 듯하여 만감이 교차했다. 동시대에 살아있었더라면 서로 반대편에 서서 증오했었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이 살짝 비켜간 운명 때문에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마음에는 자신과 일본을 끔찍이 사랑했을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죽음과의 대화를 했다.

“두 분에게 길을 묻습니다. 이승에서 살았던 삶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당시 일본이 갔던 길이 옳았습니까? 식민지 조선 국민에게 한 말씀을 하신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한국과 일본이 봉착한 역사적 난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무덤이라도 열어 묻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선과 악의 세계는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그렇듯이 한일 간에서도 그것을 분하게 변별할 수 있음에도 때때로 무엇인가에 의해서 혼란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덤에 숨어 침묵하는 전쟁과 평화에 답이 있는 듯했다.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도쿄에 있는 자신의 삶은 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졌다. 그들은 여전히 무덤에서 살아야 하고,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생과 사에는 차이가 있듯이 전쟁과 평화에는 차이가 분명하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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