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흐름을 확인하다 감성 시대의 물결에 당혹스럽게 휘말린 상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사상의 제국과 밤의 제국 사이에 혼란을 겪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긴박함에 노심초사했으면서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묶은 때를 버리고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함과 안락함을 내어주는 고향으로 여길 만큼 애착이 깊어지는 조시가야(雑司が谷)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체온을 올리고 있는 도쿄의 여름 날씨를 피해 나무숲이 우거진 골목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햇빛과 그늘 간의 싸움에 끼어 있듯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빛과 그림자 사이에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어느 사이에 그동안 피해 가려고 애를 썼던 을씨년스러운 곳에 서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발길은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들어온 조시가야 영원(雑司が谷靈園)이라는 공동묘지로 향했다. 삶의 종지부를 찍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어 가는 길도 아니었다.
이 발길은 흠모했던 죽은 사상과 살아있는 사상의 차이를 확연하게 선을 긋기 위해 걷고 있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 속에서 살아있던 사상을 무덤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사상을 묻어야 할지 몰랐다. 아주 잘 조성된 묘지 옆의 좁은 틈새에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좌우할 수는 있는 특권이 없듯이, 내가 죽었다고 인식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동안 자신을 이끌어온 사상의 생명을 끊어 무덤으로 밀어 넣을 자격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오싹함이 온몸에 새파랗게 퍼졌다. 있는 그대로 두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마지막 미련에 사로잡혔다.
생과 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언제나 동행하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죽은 사람은 무덤으로 가는 존재이고, 산 사람은 그 무덤을 보러 가는 존재라는 단순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은 묘비로 말을 하고, 산 사람은 묘비가 말하는 것을 읽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산 사람으로 죽은 사람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을 강하게 끌고 있는 아담하고 품위가 있는 묘비 앞에 서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넣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무덤이었다.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무덤이었다. 《마음》 (こころ)이라는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이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잠들고 있었다.
그는 메이지를 거쳐 다이쇼기에 문학의 사명과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변화하는 세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새 시대의 정신을 이야기했고, 문명으로 가는 길을 애타게 갈구했다. 그의 문학적 이념과 진정성은 당시뿐 아니라 전 시대와 사람에게도 관통했고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문학의 역할과 목적을 이해하고 생명을 불어넣었던 열정은, 정상과 비정상의 갈림길을 선택해서 싸웠던 정의는, 전쟁을 싫어해서 전쟁을 상대했던 신념은 표현을 다하지 못한 채 침묵으로 말을 했다. 나에게는 그중에서도 전쟁을 피하기 위해 간절하게 시도했던 모험이 이제야 빛나고 있어, 그의 전쟁이 하얀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비로소 나는 내가 간직한 사상을 그 옆에 조용히 놓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분과의 동행이라면, 사상의 생과 사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나무 결과 비단 결 같은 마음에 큰 위안을 갖는 동시에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압축한 비석이었다. 살아있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세상이 보내는 비평이 쓰여있는 듯했다. 비석에는 나쓰메 선생이 하고 싶었던 말인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하여 그렇게 썼는지 알 수 없었다.
‘文獻院古道漱石居士’
나쓰메 선생의 비석에는 고인의 활동을 나타낸 원호(院号), 살아오는 동안에 행한 도리(道号), 그리고 계명(戒名), 위호(位号)가 적혀있었다. 나쓰메 선생의 원호 문헌원(文獻院)은 문학자를 의미했다. 도호 고도(古道)는 평소에 중시해 온 철학이며 도리였다. 계명 세키(漱石)는 이름을 의미했다. 위호 거사(居士)는 불가에 출가하지 않고 가정에서 수행한 불교 신도를 의미했다. 소세끼 선생의 묘비는 ‘문학자로서 옛 도리를 중시한 세키 수행자’를 의미했다.
비석을 보면서, 젊은 시절 요절에 의지하며 겨우 연명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삶과 영혼을 문학의 꽃으로 피웠다는 점, 구시대와 신시대의 울퉁불퉁한 인간과 사회의 막가파 같은 도리를 치밀하게 질타했다는 점, 전쟁보다는 평화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 미개보다는 문명에 심하게 애착을 가졌다는 점,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는 일본을 사랑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소세키 선생은 거친 질풍노도처럼 강하게 살았지만 조용히 지나가는 실바람처럼 사라졌다. 세상을 향해 머리가 깨지도록 강한 메시지를 설파했으면서도 소박한 무언으로 세상을 품고 있었다. 문학을 통해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걸맞은 사명 문학과 문학자의 길을 걸었다.
문학자로서 소세키 선생은 전쟁 소집을 피하기 위해서 홋카이도(北海道)로 숨어들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피신한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무서워 피한 것인지, 생명을 구걸하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맹목적으로 충성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열망에서 시대성과 싸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쟁 국가 일본보다는 평화 국가 일본을 희망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애국자로 비쳤다. 그의 가슴에 있는 것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국 일본’ 임이 확실했다. 그에게 문학은 일본을 살려야 할 사명이고, 평화이고,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평화주의자’였다고 평가하고 싶었다. 분명 당시의 일본을 사랑하고 미래의 일본을 걱정하였기에 전범자가 아닌 도망자로 남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전쟁으로 인하여 낙인이 찍힐 전쟁 국가로 남기보다는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국가 일본으로 남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 일본에 대해서 애정을 가졌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기에 제국 국가가 되려는 일본에 대해서 많은 우려와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다. 조국의 평화를 간절하게 바랐고, 제국 국가의 흐름을 느끼면서 불안함을 가진 지성인이었다. 그처럼 그의 마음에는 조국 일본과 제국 국가 일본이 있었다.
생을 마감한 죽음의 세계가 눈앞을 가려도, 강한 열기가 숨소리를 태워도 태연하게 선생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만이 알고 있는 평화를 안고 무덤으로 가셨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선생이 그토록 우려한 전쟁 국가로 남아있는 현실에서 선생이 세상을 향해했던 전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죽음은 신체적 삶의 끝이지만 정신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나는 내가 간직한 사상을 그 옆에 조용히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철회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를 아는 사람에 의해서 살아갈 자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소세끼 선생님, 이승은 살만한 곳인가요? 선생에게 이승의 삶은 무엇이었습니까?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 시대는 괜찮은가요? 다시 산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요? 일본과 도쿄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요? 일본사람은 괜찮은가요? 저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죽어본 경험이 없어 그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 신, 영화, 소설, 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죽음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서 그 세계에 있는 나쓰메 소세끼 선생에게 듣고 싶었다.
“저승은 존재합니까? 종교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선생이 사는 세계는 가볼 만한가요? 저승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한 마디만 해주세요. 선생께서 이승에서 베스트셀러를 냈듯이 그 세계에서도 소설을 쓰시나요? 저승에 대한 르포르타주 소설을 쓰면 대박이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답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눈앞에서 햇빛에 시달리며 작아지는 그림자를 보면서 나의 삶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아지는 삶을 생각하면서 마치 생전의 선생을 대하듯이 무덤 앞에서 묵묵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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