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이제 죽은 목숨과 아직 살아있는 목숨

by 청사

전란이 위협적인 것은 애국을 빙자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혼란이 어지러운 것은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다차원적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부당한 이유는 인간적 인륜을 저버리기 때문이다. 독재가 나쁜 것은 일방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김은홍이 많은 전란이나 혼란, 인간적 인륜 말살, 독재를 겪으면서도 삶을 이어온 것은 ‘좋은 시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좋은 시대란 자신과 이치조 타로 간에 그리고 조선과 일본 간에 승패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되는 그런 시대를 염두에 두었다.

이치조 타로가 발버둥 친 것은 일본이 제국으로 남기보다는 조국으로 남아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조국이 되길 기대하면서도 그런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결국 자신과 제국은 하나의 운명으로 따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큰 파도가 불어닥치는 과정에서도 김은홍은 많은 존재가치를 가진 황금정을 지킬 수 있었다. 동시에 이치조 타로의 전폭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많은 돈을 벌어 사업확장에 나섰다.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근대적인 호텔을 건설하여 운영하면서 업계를 선도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관과의 유착 그리고 권력자와의 은밀한 관계가 중요한 힘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김은홍은 벌어들인 돈으로 사업 확장에 투자했고 동시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자의 반 타의 반 매애한 공존 관계를 유지했던 이치조 타로와는 이제 끈끈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묶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적과의 애틋한 동침이 언제까지 갈지 알지 못했으나 비밀과 신뢰가 엉키는 상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인식했다.

지금까지 이치조 타로는 조선에 지원한 이유가 된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잘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불어닥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태평양전쟁이 급진전되면서 인력 동원에 대한 압박이 가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지, 남양제도, 중국 등으로 인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과 크게 궤를 달리하고 있었기에 심각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더 이상 피할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에서 차출되는 인력이 산업노동자로 가는 것 이외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심을 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또한 어떤 이유로든 전장에 동원되어 살상에 관여하는 상황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더욱이 자신이 조선에 온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듯이 조선인도 남의 전쟁에 동원되고 싶지 않다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신념,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조선에 부임한 반전론자라는 사실, 조선에서 낙인찍힌 침략자로서의 양심, 조선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생겼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과 인생으로부터 구제하고 있는 김은홍과의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조 타로는 인력송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빠른 시기에 종결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최대한 인력모집과 송출을 늦추는 시간 끌기 전략으로 대응했다.

다양한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안 김은홍은 한성기생조합과 전국기생조합에 속한 기생들의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통제를 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치조 타로와 김은홍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필요와 애증에 의해 공존하고 있었지만 여성을 구하는 데 일치했다.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품위가 없는 기생일지라도 침략자의 첩은 되지 않겠습니다.”는 신념은 그렇게 소통했다.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의도와 목적이 달랐지만 여성을 구한다는 일치된 목표를 갖고 있어 서로를 의지하고 믿는 동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였다. 그것은 남과 여라는 차원에서 생긴 감정과는 다른 공동운명체로 향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여성을 구하기 위한 공조가 이치조 타로와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를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의 전세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내지로부터의 압박은 더욱 가증됐다. 이치조 타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방법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치조 타로는 할 수 없이 동원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기생조합을 통해서 차출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김은홍은 강하게 거부했다.

이티조 타로의 인력 차출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면서 김은홍은 이치조 타로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욱이 이치조 타로가 침략자 제국인으로, 감시자 제국인으로, 지배자 제국인으로, 전쟁 광대 제국인으로 돌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은홍은 이치조 타로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그녀는 이치조 타로에게 인력 동원의 목적에 대해서 물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

“돈과 자유가 있는 곳으로...”

“그곳이 어딘데?”

“적어도 여기는 아니야”

“여기가 지옥이라도 돼?”

“너와 내가 있는 여기가 지옥이야!”

“...”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이 지옥이야!, 다른 데로 가면 이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잖아!”

이치조 타로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조선에 왔지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이 전쟁의 최전선이었고, 지옥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조선인이 관계가 없는 제국 일본을 위해서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생명을 유지하는 한 이 전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스스로 생명을 끊을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깊게 인지했다. 마쓰무라 유지를 마음속에서 소각했듯이 이번에는 자신을 소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치조 타로의 생각을 알지 못한 김은홍과 동료들은 이치조 타로를 극도로 경계했다. 이미 황금정에서 경계대상이 되었고 기피 대상이 됐다. 코너에 몰인 김은홍과 동료들은 이치조 타로의 생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그때야 비로소 김은홍은 ‘이곳이 지옥’이라고 말한 이치조 타로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동시에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직감했다.

지옥으로 향하난 열차를 탄 김은홍은 이치조 타로의 생명에 대해서 결단을 내랴야 하는 상황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적은 물리쳐야 맛이 나고, 믿음은 배반해야 맛이 나는 악 처세술에 의지해야 하지만, 자신의 가슴팍에 묻었던 이치조 타로에 대해서 그렇게 할만한 용기와 미움이 없었다.

이치조 타로의 운명을 앗아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진 빚과 배반할 여지가 없었기에 행사할 마음도 애당초 없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운명공동체라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이치조 타로의 생명을 빼앗아 결별하기보다는 생명을 동시에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김은홍은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둘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현명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런 김은홍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치조 타로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김은홍과 동료를 구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이치조 타로는 처참한 제국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지우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구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결정 시점이 언제 인가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는 갈림길에 서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그들의 결정과는 관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기대와 선택을 초월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제국 일본이 벌인 전쟁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김은홍에게는 한국해방이라는 상황이 작용하였고, 이치조 타로에게는 제국패배라는 상황이 작용하면서 그들의 선택은 운을 다하고 말았다. 그들이 선택하기 직전에 비로소 절박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김은홍은 이치조 타로를 보며 안심을 했지만, 이치조 타로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치조 타로에게 제국패배는 부당한 전쟁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에게 식민지 착취자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동시에 일본인으로부터 한국 앞잡이라는 양날의 비판과 낙인이 찍혔다. 제국이 패망하면서 이치조 타로는 반전론자가 아니라 지배자로 배반자로 전락했다.

황금정을 운영하면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김은홍에게 해방은 독립운동의 끝을 의미했고, 자유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숨죽여 살아온 삶으로부터의 행방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일본 앞잡이라는 겉으로 보인 시대적 비판이 날아들면서 애국자에서 매국노로 전락했다.

김은홍의 독립운동 지원 활동은 분명히 조국을 위한 애국적이며 충성이었으나 황금정과 이치조 타로와의 관계에서 오는 김은홍 모습은 일본 앞잡이에 불과했다. 이치조 타로가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한 행동은 분명히 반전론자로서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직 제국의 지배자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대적 오해와 배신의 올가미에 걸려 생명이 저울질당하면서 조선으로부터 증오와 미움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김은홍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치조 타로는 의로운 일본인이면서도 버림을 받았다. 식민지와 피식민지는 애국자와 반전론자라는 위치에서 매국노와 독재자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여 쓸모가 없는 시대적 허물이 되게 하였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해방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변명과 설명이 통하지 않는 해방공간이 형성되면서 일방적 비판과 적대적 힘이 작동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 선과 악이 재단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운명은 제국에서처럼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외부인의 선택에 맡겨져 흔들거렸다.

이치조 타로는 패전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는 폭풍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어떤 계산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희망적인 기대도 하지 않았다. 반전론자인가 평화론자인가, 애국자인가 매국노인가, 죽느냐 사느냐 라는 고고한 논쟁이 아니라 속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인간적 고뇌에 놓여 자신의 생명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전쟁 도발에 대한 반대행위가 자신의 생명을 좀먹고 있었다는 것을 애당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로 결정되는 생사의 길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생명이 다하기 전에, 조선 젊은이들에게 제국 일본을 위해 강요했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사죄를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에 진지하게 몰두했다.

그들의 운명에 대한 고뇌가 깊어지는 가운데 해방과 패배라는 시대 상황이 확산되면서 증오와 복수의 물결이 그들 앞에 들이닥쳤다. 생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폭력, 성남, 함성, 타도, 울분 등의 대상이 되면서 매우 작아지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했다. 해방을 맞은 흥분의 광기가 자신들이 해온 독립운동이나 반전론을 잠재웠다.

일부 해방의 광기는 화풀이 대상을 찾아 강압하고 린치하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제국인이 벌인 광기와 닮아갔다. 제국인이 벌인 광기의 본질은 전쟁, 침략, 멸시였다. 행방된 한국인이 벌인 광기의 본질은 해방, 복수, 증오였다. 진짜가 가짜를 대신하고,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행방 공간의 질서와 가치는 지배자 제국인의 질서와 가치를 무너뜨리고 해방된 한국인의 질서와 가치로 대체됐다. 그리고 한국인의 원성을 들었던 시설이나 사람은 제거의 대상이 되었고, 광분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일본으로의 도피를 시도하기도 했다.

일부 일본인은 부하였던 한국인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조선인이 경영하는 이발소, 여관, 목욕탕, 가정부로 일하는 상황이 되었고, 담배, 두부, 비누 행상도 나타났고, 일본인 교사가 가르치던 학생 집의 식모로 들어갔다. 또한 파렴치한 일부 일본인은 일본인 여성을 모집하여 권력자 지위를 획득한 미군의 전문위안부로 제공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일본인 이치조 타로는 목숨을 구걸하기를 거부하였고, 더욱이 김은홍의 도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한 행위에 대해서, 제국이 한 행위에 대해서, 일본에 대한 자신의 행위로부터 도피하거나 피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추락과 사죄는 인간의 법칙이고, 일본의 추락과 사죄는 역사의 법칙으로 여겼기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일본인을 색출하라는 소리는 삶과 인생을 앗아가는 소리였다. 삶을 포기하라는 소리였다. 칼보다도 날카로웠고, 소총보다는 큰 충격이 온몸을 쏘는 듯한 전율이 일어났다. 그러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보다는 몸속에 있던 반성과 회한의 피가 빠져나가고 있어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

이치조 타로는 죽이고자 하는 조선인의 행위와 살고자 하는 일본인의 행위가 서로 맞닿는 지점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지만, 과거에 이유를 만들어 조선에 온 것처럼 또다시 이곳을 떠날 이유를 만들어 도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쟁을 피해 조선에 온 것은 지옥에서 다른 지옥으로의 단순한 이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이치조 타로가 자포자기와 회한으로 이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김은홍은 그가 숨어서 해온 진실이 헛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했다. 김은홍은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조국의 배신자가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치조 타로의 순수함, 전장으로 동원되는 여성을 구제한 인간애, 자신이 진 빚을 갚을 마지막 기회, 조국을 위한 활동의 정당성 논쟁의 무의미성 등을 인식하고 이치조 타로를 일본으로 귀환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치조 타로에게 일본의 패망은 전쟁을 회피하고자 했던 자신과 패잔병으로 전락한 자신에 대한 차이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적어도 조선에서 전쟁이 만들어내는 비극에 자신이 관여한 것을 알았기에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살아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김은홍은 해방과 동시에 동족인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자신에 대한 멸시와 증오가 패망을 계기로 조선인과 일본인으로부터 받는 이치조 타로에 대한 멸시와 증오가 동일선상에 있다고 인식했다. 거기에는 애국자와 반전론자로서의 평가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했던 대가로 한국의 해방 그 자체에 만족했고, 이제냐 그런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한국의 해방은 모든 일본인의 몰락이었기에 많은 색다른 상황을 만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김은홍의 운명은 이치조 타로가 틀어지고 있었지만 행방 공간에서는 김은홍이 이치조 타로의 운명을 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 앞에 있는 모습에 놓여 있었다.

김은홍은 상대를 죽여야 살 수 있는 준엄한 경쟁에서 서로를 살게 했다는 사실, 서로 알지 못하게 자신들만의 신념을 존중해 온 사실, 그리고 인간사의 기본 원리인 보은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 기구한 운명에 대해서 서로가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 진정한 충정과 진정한 배반이 무분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로운 길과 삶을 선택하는데 조금의 망설임이나 잠시의 흔들림도 없었다.

김은홍은 설득이나 설명이 통하지 않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한국으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였다. 그녀는 ‘국가는 배신할 수 있지만, 고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이치조 타로에게 국가로의 귀환이 아니라 고향으로의 귀향을 설득했다.

김은홍은 부산을 통해서 시모노세키로 가기로 결심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치조 타로와 함께 국가나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서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한국인과 일본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와 같은 국가론적 구도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돌아가기 위해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눈과 귀를 피해서 일본이 준비한 송환선이 있는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탈 수 있는 자리뿐 아니라 도전해 볼 수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에게로부터 버려진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귀향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고, 생명과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였다.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송환선은 무심하게 사랑을 버리고 떠나가는 야속한 님처럼 뒤로 하고 떠났다. 생살을 가르듯이 파도를 가르는 배는 하얀 피를 흘리며 질주를 했다. 냉정하게 울어대는 뱃고동은 땅과 바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생과 사를 가르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들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국적 없는 갈매기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목숨에 미련이 생겼다는 듯이 이치조 타로는 김은홍을 보면서 “저 배가 마지막이야. 우리의 여행은 여기까지야!”라고 체념을 했다. 김은홍은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야!”라고 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이제 죽은 목숨이야!”라고 대응하자 김은홍은 “아직 살아 있잖아?”라며 체념을 뭉개버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동자는 살아있다는 것과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김은홍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이 가져온 보석으로 밀항할 수 있는 배를 구하고 무작정 바다로 향했다. 파도 옮겨지는 그들의 목숨을 이미 바다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은홍은 그와 같은 아슬아슬한 삶과 미래가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차라리 깨끗하게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답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치조 타로의 얼굴을 깊고 오래 바라봤다.

그 순간 이치조 타로는 김은홍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손을 꼭 잡고 빈틈을 주지 않았다. 빈틈없이 손잡고 가는 길이 길어지기를 바라면서 지난날에 끼였던 굴곡진 삶들을 자유롭게 흘러가는 뭉게구름 위로 올로 놓았다. 지금까지는 제국의 인생이었고, 제국의 사랑이었고, 제국의 삶이었지만, 앞으로는 인간적인 인생, 인간적인 사랑, 인간적인 삶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새로운 삶의 문턱에 있었다. 그러나 귀향한 사람들은 ‘내지’(內地)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었다. 조국이 어려울 때 등을 보이고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호의호식을 했다고 인식하여 비국민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숨을 쉬고 있는 그들에게는 제국과 조국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제국과 식민지에서 그들은 전쟁이 평화를 찾아오는 과정이라고 미화된 상황을 경험했다. 그리고 전쟁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야 끝나는 부당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체험했다. 이제 겨우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살아있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전선에 휘말리고 있었다.

이치조 타로는 제국이 수행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는다는 자책 때문에 복직한 내무성을 사직했다. 그 후 전쟁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김은홍은 시대에 휘말린 ‘제국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적 사랑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이치조 타로와 삶을 같이한 김은홍(金恩弘)은 이치조 가즈코(一條和子)가 되어 살아갔다. 파란만장한 제국의 여인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서 평화로운 여인이 되어 살기는 바라는 자신의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이치조 가즈코는 조선에서 황금정과 호텔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돈과 사람이 몰리는 긴좌(銀座)에 황금정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클럽을 개업했다.

그녀의 사업수완은 익히 조선에서 증명됐듯이 탁월했고 황금정이 성공하면서 새로운 호텔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녀는 제국의 여인이 아니라 자유국가의 여인으로 활동하면서 받은 혜택을 이웃에 나누기 시작했다. 제국의 이름으로 수행한 남편의 권력사용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제국의 시대에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했다. 우선 조선에서 각자의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본에 와 살고 있는 재일 한반도 여인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명으로 일본 내에서 생존하고 있는 한반도인을 돕는 다양한 단체를 지원했다.

제국의 시대에 살았던 이치조 타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도코이 아미(床井阿見)는 “이치조 가즈코, 아니 김은홍은? 제국의 사랑은?”이라고 말하자 이치조 타로는 망설임과 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잠시 침묵이 침묵을 만들고, 시간이 시간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파르르 떠는 이치조 타로의 입술을 보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제국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태어나 보니 제국의 시대였고, 살다 보니 제국의 사람이었고, 그 사이에 제국의 희생물이 되었고, 제국의 남자와 여자로 삶과 사랑을 했을 뿐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치조 타로는 조국이 비판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일본은 무엇을 위해서 전쟁을 했고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전히 답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전쟁을 하지 않아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도 답을 찾고 있었다. 조국과 자신에 대한 질문 공세를 통해서 여전히 과거의 자신을 괴롭히며 지우고 있었다.



continued story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21화 제국의 땅, 그리고 남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