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흑과 백의 변증법

by 청사

세상사에는 흑과 백이 작동한다. 흑에도 검지 않은 것이 있고, 백에도 희지 않은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옳다는 주장에는 옳지 않은 것이 있다. 옳지 않다는 주장에도 옳은 것이 있다. 밥을 먹듯이 회자되는 정(正)과 부정(不正)에도 절대적인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 그름이 있으므로 알 수 있고, 백은 흑이 있으므로 알 수 있고, 정은 부정이 있으므로 알 수 있으며, 진실은 거짓이 있으므로 알 수 있다. 그처럼 상대적 존재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거기에는 완벽한 것이 없어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변증법(辨證法)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현안은 변증법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정과 부정, 흑과 백, 옳음과 그름, 진실과 거짓 등이 작용하여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 모순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할 것인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타카다 다카요시(高田孝義)는 어린 시절 이승만라인의 선언을 계기로 한일어업 마찰이 발생하는 가운데 어부였던 아버지의 배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하여 한국에 대해서 냉소적이며 비판적이었다. 한국에 대해서 매파적인 성향을 보였고, 동시에 일본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지배했다는 사실과 전쟁 국가로 질주한 사실에 대해서는 비판하였다. 식민지지배와 전쟁을 해야 하는 역사적 사정이나 상황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옳지 않았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렇기에 한국에 대한 의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도코이 아미(床井阿見)는 근대화과정에서 일본이 서구열강의 힘에 밀려 생긴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국력을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국민이 식민지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제국을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제국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를 만들어 착취하였고, 전쟁을 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되지 않는 비인륜적인 행위라는 인식을 가졌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지배하에서, 그리고 전쟁에 동원되어 상처를 입은 희생자에게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나는 친한파로 인식하고 있는 타카다 다카요시와 도코이 아미의 사고와 행동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본이 전쟁하고 식민지를 지배한 부분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한국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타카다 다카요시나 도코이 아미의 사고와 행동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일의 근대사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인식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둘러싼 해결안이 깊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흑과 백처럼 확연하게 구분되는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는데 변증법적 논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이 인식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여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 개의 역사적 사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따라서 대부분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이나 현안은 두 개의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여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이 ‘한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서로 다른 인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둘러싸고 옳음과 그름, 정과 부정, 흑과 백, 진실과 거짓이라는 상반대 모순을 통해서 ‘회색’을 도출하는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이나 현안에는 ‘변증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를 체험한 이치조 타로(一條太郎)는 “역사적 사실은 실제 경험한 사람의 것이다. 역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의 증언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역사적 사실은 변증법 논리를 초월하는 유일한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설파했다.

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그런 ‘회색논리’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일본에 내재화되고 있는 ‘회색 논리’는 한 문학자의 인식에 깊게 공감했다. 그는 일본과 자신을 자리매김한 ‘애매한 일본의 나’(あいまいな日本の私)에서 ‘애매한’이라는 단어를 중시했다. ‘애매한’이라는 개념은 일본국가와 일본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매한’에는 주체와 객체가 공존하고 있어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이 하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이기에 내가 나쁘면 남도 나쁘다는 논리가 있다. 모두가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고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나의 주도적이고 독창적인 의지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류의 흐름에 따랐을 뿐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 문학자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해하는데 ‘애매한’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를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아시아에 위치하고, 일본인은 전통적인 문화를 확고히 지켜오기도 했다. 그 애매한 진행은 아시아에서 있어 침략자 역할로 일본을 몰고 갔다.”라고 분석했다.

그런 언급에는 ‘서구국가의 침략성을 모방한 일본’이라는 점이 있는 듯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같은 서구국가가 각 대륙에서 식민지를 구축한 이유는 ‘식민지를 통한 국가의 번영’에 있었다고 한다면, 일본의 아시아 식민지화는 ‘식민지화하여 일본의 번영’을 추구한 것이 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애매한’이라는 개념은 일본인의 심성이나 처세술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확대 해석을 하면 한일 간에 벌어진 현안에 대해서 일본은 ‘애매한’에 기초해서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을 해결하는 데는 책임이 소각된 ‘애매한’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일 간의 현안 논쟁에서 작용한 변증법 논리에 의해 도출된 ‘회색’에는 ‘근대사를 승전사로 기억하고, 서구제국의 식민지나 식민이 되지 않은 일본의 자부심’이 숨겨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증법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나는 이 논지에서 우리의 모임이 한국과 일본이 근대사의 질곡에 빠져있는 변증법 프레임에서 벗어나 존립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우리의 논쟁이 꼬리를 물듯 지속되는 가운데 밖에 나갔던 이치조 타로는 자신의 부인 “이치조 가즈코가 근처에 와 있어 소개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모두 흔쾌하게 환영을 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무용과 지식을 겸비한 여걸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이치조 타로 부인이 들어왔다.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김은홍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무용이 넘치는 여걸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고 가냘픈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미 우리의 모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여유롭게 한 사람 한 사람과 눈 마주침으로 인사했다. 도코이 아미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현명하게 사셨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저는 경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국 시대에는 애국자로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반역자로도 살았지요.”라고 했다. 그녀의 말은 느렸지만 카랑카랑한 젊은 시절 김은홍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는 “해방 후 일본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요. 생명이 끝점으로 가고 있으니 경계인의 삶도 막을 내리겠지요. 다음 생이 있다면, 인간답게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타카다 다카요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요?”라고 질문했다. “제국의 사랑이 아니라 젊은이의 사랑이 가능한 세상이겠죠. 더욱이 일본에 살면서 이치조 가즈코가 아니라 김은홍으로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겠지요?”라고 말하며 도코이 아미를 유심히 봤다.

이치조 가즈코는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많은 일본인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제국 시대의 일본인들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을 거예요. 일본에서 태어나 제국의 사람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제국 시대는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가혹한 시대였지요. 모두가 희생자였고 모두가 피해자였어요. 내 남편은 일본인이면서도 전쟁을 반대했어요. 제국의 전쟁에 맞서다 많이 아파했어요. 온전한 사람으로 인간답게 살지 못했어요.”라고 말을 맺었다.

일제 강점기에 혼돈 속에서 살아간 사람, 국가라는 이름에 눌려 엉뚱한 데서 살아간 사람, 전생에서 희생된 사람, 제국의 이름으로 제국인으로 살아간 사람, 투쟁하다 사라진 사람, 경계인으로 살아간 사람, 제국 시대에 조선인과 일본인으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이고 피해자라는 인식이 들었다. 그것이 제국 시대가 낳은 한쪽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나 희생자가 생긴 것은 가해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시대에 ‘혜택을 입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가해자는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 시대의 ‘이치조 타로는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조선에서 여성을 보호하려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제국 시대 이후 그는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한국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한국인을 돕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한일 간에 존재하는 흑과 백을 ‘회색’으로 만드는 ‘변증법 프레임’에서 벗어나 제국의 사랑이 아니라 청춘의 사랑이 가능한 ‘흑백 프레임’이 활성화되기를 바랐다. 한국인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도코이 아미, 냉소적이지만 한국 관련 의제를 옹호하는 타카다 다카요시의 존재가 새삼 크게 보였다. 그들과 나의 공존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온전한 삶을 사는 토대와 징표가 된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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