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고독과 침묵의 대화

by 청사

평범하지 않은 사회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사람이 많은데도 사람이 그리운 곳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자신만을 바라다보며 다독여야 하고 위로하는 사회였다. 가끔은 평범하지 않은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가고 싶은 충돌이 생겼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일상적인 한마디의 인사말 이외의 교류는 벌어지지 않았다. 부탁을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사귀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쫓기듯 외면하듯 겉치레 인사만 오갔다. 그런 도쿄에 살면서 여전히 속마음을 읽고 적응하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인식했을 뿐이다.

머릿속에서만 있던 종교적 생활에 발동을 걸었다. 성당 주소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더더욱 사람이 보이지 않아 겸연쩍게 목례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생기지 않았다. 내 눈에는 고독한 거리, 고독한 사회, 고독한 사람이 보였지만, 그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평온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오밀조밀한 건물이나 골목은 형제처럼 닮아 보기는 좋았고, 반복되어 나타나 익숙해졌다. 그러나 큰 건물이나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 초초했다. 그러나 주소가 있어 어딘가에는 있다는 확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서 모르는 불특정인으로부터 길을 묻거나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인 사안을 두고 문답을 하는 것도 매우 드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길을 몰라 묻는 것은 개인주의를 위배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듬성듬성 다녀도 눈길도 마주치지 않아 물어볼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성당이 있을 법한 곳에 도달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급하던 차에 지나가는 선진국 사람 일본인이 있어 금기를 깨고 길을 물었다.

“혹시 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네? 성... 당이 뭐 하는 곳인가요?”

“아 예. 처치요?”

“예... 모릅니다.”

일본의 심장부이고 첨단 문화가 살아 숨을 쉬는 도쿄에서 ‘성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일순간 성당을 모르는 것이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접했던 일본적 현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종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사당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예를 하고 지나갔다. 그곳에는 이끼와 먼지가 내려앉은 아주 오래된 상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일본인의 행위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예의 내용은 잘 모르나 독백하는 그 모습은 침묵의 종교적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택가에 제법 크게 조성된 가족묘지가 있었다. 그런 곳에는 언제나 까마귀가 앉아 오가는 이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날갯짓을 하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광경을 목격할 때면 갑자기 생각이 정지되거나 몸이 움츠려져 우울했던 경험도 있었다.

산속에 있어야 할 묘지가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현상이 매우 기이했다. 내 마음속에서 죽음은 생과 사를 갈라놓고, 사는 곳과 죽은 곳을 갈라놓는 매우 엄격한 격리였다. 살아가는 삶과 죽어버린 삶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본의 각 가정에는 선조를 모시는 제단으로서 불단(仏壇)이 있다. 불단 앞에는 조상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과 꽃을 놓는다. 가족들은 출입할 때 조상과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매년 8월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오본(お盆)이라는 행사를 하였다. 집 앞에 불을 지펴 조상이 찾아오도록 길을 밝혔다. 조상은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뒷동산에 있어 함께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조상은 호도케사마(佛神)가 되어 가정 주위에서 맴돌다 필요하면 되돌아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존재였다. ‘래세’(來世)에 대한 희망과 기대보다는 현실을 보호해 주고 절대적으로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는 조상이 가정의 보호 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승과 저승이 있지만 생과 사가 하나로 교감하는 것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 간에는 생명유무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괴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후손이 존재하는 한 영적으로 살아가는 동행인이었다. 가정에서 조상은 숭배대상이고 가족은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인이 일생을 통해서 접하는 종교적 또는 신앙적 생활은 매우 인간적이었다. 태어나면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신사(神社)에 가서 이름을 받거나 장수건강을 기원했다. 건강하게 잘 자란 젊은이들은 결혼할 때 서양식의 교회나 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어 화촉을 밝히고 있었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으로 정착해 온 불교적 윤회를 믿어 절에 뼈를 묻었다.

21세기 도쿄에 사는 나는 공동묘지, 외로운 상, 불단, 오본(お盆), 이종교 간의 공존 등이 공존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성당’을 알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이 뭐 하는 곳인가요?”라고 되묻는 사람의 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당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였다. 길모퉁이에 조그마하고 아담한 건물이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보니 ‘카사이성당’이라고 쓰인 푯말이 있었다. 그리고 성당의 출입문 위에 조그만 십자가가 부끄러운 듯이 평범하게 있었다.

십자가가 높은 곳에서 당당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본 십자가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친숙한 십자가였다. 신의 집이라는 것을 나대지 않고 알려주었고, 뻐기거나 위세를 부리지 않게 마중을 했다.

정적이 흐르는 문은 냉정하게 닫혀있어 발길을 멈추게 했다. 길을 헤맨 탓에 미사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가운데 한 발은 성당 문으로 향했고 한 손은 문고리를 잡아 열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여 죄인처럼 들어갔다.

샛눈으로 제단을 보니 외국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제단은 좁았지만 아기자기했고, 나이 든 중년의 복사가 앉아있어 신선했다. 사치도 권위도 거리감도 없어 좋았다. 모두가 자유롭게 성스러웠다. 처음으로 접한 일본성당은 그렇게 소박하고 인간답게 다가왔다.

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자들의 면면이 보였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족 단위의 신자나 연세가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없었다. 그 순간 생활 속에 정착된 조상을 모시는 일본사람의 일상이 스쳐 가면서 성당의 상황이 이해되는 듯했다.

성가도 부르고 설교도 듣고 영성체를 하는 사이에 얼렁뚱땅 시간이 흘러갔다. 신부는 능숙한 일본어로 마지막 기도를 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모두 행복하시길...”

신부님은 문 앞에서 일일이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눴다.

“새로 오신 형제분?”

“예 오늘 처음...”

“잘 오셨습니다.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입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훌륭해요. 한국 사람 많아요. 티타임이 있으니 만나보세요.”

신부는 미국 출신으로 세례명은 마오였고, 일본에 와 선교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으면서도 성직자로서의 위엄보다는 ‘편안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이윽고 떠들썩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다가서자 한국인의 냄새와 일본인의 냄새가 동시에 나는 듯했다. 새로 왔기에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왔어요, 주재원? 유학생?”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학생이구먼, 자자 힘들지 여기 앉아”

“역시 한국적인 정서가 좋아, 여기에서도 살아있어!”라고 속삭였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고독한 사회가 훅 날아가는 듯했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 한국적인 정서를 만끽하였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인 신자 중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에 산 분이 없었다. 일본인과 결혼한 한일부부, 기업이나 기관의 주재원 가족, 신분을 알 수 없는 몇몇 여성 등이 있었다. 그들은 성당에 오면서 작은 코리안 공동체를 구축하여 교류하였다.

그 이외에도 외국인이 있었다. 이민의 후손들이 일본경제가 좋은 틈을 이용해서 조부나 부모의 고향에 돌아와 정주하면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외국인으로는 미국인과 이탈리아인들이 있었다. 작은 성당임에도 국제사회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일본성당이기에 일본사람이 당연히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미사가 끝나고 바로 사라졌다. 임원인 듯한 몇몇 일본인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사치를 부리거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고, 소박한 성당처럼 마음 씀씀이가 소박하고 합리적이었다.

성당에 익숙해지면서 소박한 일본인을 닮아가듯이 큰 변화도 없었고, 떠들썩한 파티나 모임도 없었다. 다만 일본적인 방식으로 정착된 성당에서의 종교 생활은 한국인이 많아지면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성당 활동에 대한 흐름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신부의 영명축일이 다가왔다. 미사 시간이 끝나고 신부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신부님의 영명축일입니다.”라고 하며 일본인 신자대표가 신부에게 꽃다발과 손수건 선물을 건넸다. 그것으로 선물행사는 끝나는 듯했다.

그 순간 한국인들은 개인별로 준비한 꽃과 봉투를 건넸다. 한국인이 만든 돌발 상황에 대해서 신부와 일본인 신자들은 놀라고 있었다. 무엇이 놀라게 했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알고는 있지만 침묵했다.

그 이후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서먹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한국적인 현상과 일본적인 현상이 복잡하게 엉키고 있었다. 절약을 넘어 인색한 듯한 일본인 신자, 인심을 넘어 사치스러운 듯한 한국인 신자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었다.

그동안 체험해 온 일본 사회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일본은 선진국이고 부자나라 아닌가?”라는 질문과 함께 ‘일본 부자론’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일본인은 합리적인 것인지, 구두쇠인지, 몰인정한 것인지, 돈이 없는 것인지, 부자라서 인색한 것인지 등 다양한 추측이 갔다.

한편으로는 성직자나 신자가 걷는 종교의 길에 대해서 일본적인 방식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한 사회를 느끼게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소박하고 합리적인 사고는 종교를 종교답게, 신자를 신자답게, 성직자를 성직자답게 만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마오 신부는 한국의 성당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성당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곳은 신부에게 천국이에요. 신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아 그 기분이 어떤지 느끼고 싶어요.”라고 부러운 듯이 표현했다.

농담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 말에는 또 다른 진실이 담겨있었다. 이곳에서 마오 신부는 매우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을 했다. 미사를 집전하거나 그 이외의 일에 대해서 직접 챙기고 있었다. 신자를 일일이 챙기고 있었다. 거기에는 특권이나 권위가 붙어있지 않았다.

비록 그것만이 아니었다. 때마침 일본 지방선거가 있었다. 참정권이 없는 나와 관련이 없었지만, 선거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성당에 가면서 후보들이 미사에 참석하여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미사가 시작되었지만 성당에서는 지방선거나 후보에 대해서 일체의 언급도 없었다.

일본에서의 정치와 종교는 각자의 모습으로 따로 있었다. 성당은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했다. 종교가 정치에 들어가지 않았고, 정치가 종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치 활동과 종교활동은 별개의 것으로 존재했다. 일본정치와 일본종교의 존재 방식이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했다.

한국에서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있는 이상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적 상황에 대해서 오히려 당황했다. 그것을 보면서 인색한 듯한 일본적 종교 생활이 매우 정상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종교에는 검약과 합리적 사고가 작동했고, 성직자와 신자는 종교 안에 있었다.

나는 어떤 종교든 수용하는 현상을 보면서, 정치와 종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검소한 일본성당을 보면서, 소박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보면서, 개인적 사안에 대해서 독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침묵의 사회라고 인식했다. 그런 현상이 선진국 일본이고, 평화로운 일본인이라고 규정한다면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일본인이 만든 침묵의 사회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정치에 대해서, 다른 신앙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침묵하는 평등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내가 느꼈던 고독은 침묵하는 사회에 적응하면서 생긴 작은 자각이며, 새롭게 온 사람이 걷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당분간 고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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