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울타리를 넘어가는 나그네

by 청사

추억은 남는 것이었고 희망은 다가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치조 마리와의 추억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선택을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생의 동료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껌딱지로 동행했다. 그녀를 위한 생각과 행동은 기쁨이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사였다. 그렇게 울타리를 넘어가는 나그네가 되었다.

학위를 마치고 상근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지금까지 불안에 떨면서 희망을 키운 노력에 대해 받을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더욱이 자신도 모르게 우연의 이름으로 다가온 다양한 기회와 인연에 대해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내고 싶었다.

항상 애착이 가는 산시로 연못에 갈 때면, 그곳은 만남과 이별을 반전시키는 괴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또 다른 희망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헤어질 때 홀로 한 언약을 얹어 놓았던 돌부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은 매화나무를 심기로 했다. 절개 있고 아름다운 사랑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행운목이 되기를 바랐다.

매일 마주하는 캠퍼스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사랑스러웠다. 삶의 시작과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어서, 뜨거워지는 머리와 가슴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학창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면서도 도다이 해체를 강하게 반대하여 도다이 지킴이가 되기 위해 앞장섰던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쿄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명확했기에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녀에게 꼭 한 번만 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고백이었다. 그녀와 일시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인생을 같이 하자는 결정을 그녀의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초대를 나에게 전했다. 마리의 존재와 초대에 대한 신뢰에 기대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노파심이 생겼다. 전통적인 화족 집안에서 한국인에 대한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녀와 함께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사라졌을 때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집이었다. 눈에 익었고 마리의 안내를 받고 있기에 전혀 위화감은 없었지만 전경이 눈앞에 훅 들어오면서 긴장도가 높아졌다. 점점 초점을 잃고 있었고, 발길은 무거워지면서 기가 빨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소리는 급박해졌고 리듬이 빡빡해졌다.

눈앞에 펼쳐진 정원은 ‘신시로 연못’을 닮아있었다. 아버지는 산시로 연못을 좋아해서 집 정원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인 있었기에 유심히 봤다. 규모는 작았지만 나무, 돌, 길, 우리가 밟고 있는 것도 닮았다.

숨이 넘어가며 고르기가 반복되는 불규칙한 박동을 듣고 있던 마리는 운을 띄웠다.

“긴장돼?”

“응. 그 말을 들으니 더 긴장돼.”

“우리 부모님도 사람이니깐 걱정하지 마.”

“....”

긴장과 걱정이 스며드는 사이에 이미 발길은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벽에 걸려있는 액자들이 눈으로 들어왔다. 훈장과 작위를 단 인물들이 눈을 압도했다. 거실 안에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은 스캔하는 듯 뚫어지게 봤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

그녀와 수다를 떨었던 입은 흔들렸고, 말소리는 기어들어가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꼬꾸라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리의 친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한국식으로 그 자리에서 큰 절을 올렸다. 부모님, 동생, 마리도 놀랐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던 것 같았다.

“아, 아니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아버지는 말을 했다. 이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던 그녀의 동생은 “복종”이라고 속삭이며 웃어넘겼다. 아버지는 “어디 그런 말을...”이라고 하며 안정된 목소리로 부언을 하셨다. “참 좋은 예절법입니다. 내가 알기론 이런 인사법은 한국에만 있지요? 좋은 전통입니다. 이 시대에... 그러면 나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냥 받으시면 됩니다.”

어머니는 준비한 다과와 차를 내왔다. 이야기는 울긋불긋하게 이어졌고, 분위기는 어색하고 경직되는 가운데서도 춤을 췄다. 어머니는 시종일관 웃음으로 아버지, 그리고 나, 마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긴장된 분위기를 녹이려 애를 쓰고 계셨다.

아버지의 유한 얼굴에 비취고 있는 웃음에는 이 상황을 기뻐하며 즐기고 계시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아버님의 말씀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자네는 우리 집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네.”라고 핵폭탄급의 발언을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리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듯이 내 얼굴을 보고 힘을 내라는 웃음을 자연스럽게 던졌다. 나는 ‘우리 집만의 관문’이라는 말에 꽂히고 말았다. 그 관문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셨기에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집만의 관문’은 긴장과 불안감을 증폭시킨 채 미스터리로 남아 머릿속을 엉클어 놓았다.

“그래 미래의 자네는...?”

“예, 교육자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길이지. 어디에서?”

“아직...”

“아빠 잘해나갈 수 있어요.”

“이런 만남은 아니면 말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중하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마리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두둔하기 위해서 속내를 확실하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리 집만의 관문”이라는 숙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이 상황은 나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엄습해 왔다.

실제로 마리와 나는 부모님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세워놓은 인생 설계를 통보하러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동거를 하려고 결심했다. 우리는 만남, 이별, 재회라는 굴곡진 경로를 걸었기에 그것의 종지부를 찍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하기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내 앞에 놓인 ‘우리 집만의 관문’을 통과해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에게 “그 관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마리는 웃으면서 “아직도 모르겠어. 이미 답은 나왔고, 이미 통과했어. 아버지와의 대화에 있었어.”라고 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우리 딸이 좋아하는 길”에 방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이었고 딸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같이 가는 것을 최소한의 관문으로 중시했던 것이다. 더욱이 딸에게 억지로 걷게 하면서 생긴 아픔과 상처를 알고 있었기에 딸이 가는 길에 동행하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이제 막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생겼다. 마리는 아버지의 심중을 읽었다는 듯이 아버지처럼 부모님께 핵폭탄급의 선언을 했다.

“아빠, 준비되면 바로 함께 할까 해요”

아버지는 동거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하셨고, 작은 집을 마련할 테니 먼저 결혼식을 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나는 정중하게 “부모님을 의견을 따르면서 우리의 힘으로 출발하고 싶습니다.”라고 간곡하게 말씀을 드렸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하는 시점을 ‘결혼’으로 생각하였다.

아버지는 일본과 일본인이라는 중심부가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특성 때문에 걱정했다. 혼혈인 화족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사는 과정에서 느낀 회한이 고스란히 우리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노출됐다. 혼자 있을 때보다 그녀와 인생을 같이하게 되면 그 문제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시작은,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 좋고,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좋다는 아주 평범한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평범한 이치를 벗어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본인과 결혼해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여기에서 삶의 여정이 정체되지 않고, 억세지 않으며, 물처럼 앞으로 잘 흘러가기를 바랐다.

결혼식 없이 동거하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어 새로운 출발을 바라는 아버지의 권유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를 무조건 끌어갈 이유나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할 변명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형태로 일본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산시로 연못에서 동행의 길을 시작하는 의식을 하자는 데 일치했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쪽을 강조하는 결혼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인연, 나와 마리의 인연, 가족 간의 인연을 강조하는 작은 결혼식으로 준비했다.

양가 가족들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인연 만들기 장소인 산시로 연못에 도착을 했다. 연못의 오른쪽에는 신부와 신부 가족들이 상견례하듯이 긴장하며 기다렸다. 연못의 왼쪽에는 나와 한국 가족들이 상견례를 하듯이 기다렸다. 우리는 산시로 연못을 두고 좌우로 서있었다.

나의 가족은 한복을 입고 있었고, 마리의 가족은 기모노를 입었다. 예상은 했지만 상이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이색적인 분위기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대조적인 상견례 예복이 낯설었고 이질감도 있었지만 금방 그 상황을 서로 인정하면서 친숙해지는 듯했다. 낯선 분위기는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서 일소되고 이웃처럼 친숙해졌다.

‘안녕하세요’와 ‘하시메마시테라’라는 인사말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서로 통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를 없애줬다. 거기에는 일본 박수와 한국 박수, 일본 박수의 의미와 한국 박수의 의미가 다르지 않았다. 서로 다름에 대한 사용설명서는 없었지만 서로 다른 것을 잘 이해했다. 다름은 닮음의 시작이 되고 닮음은 같음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산시로 연못은 순간적으로 발사되는 눈빛, 반갑다고 끄덕이는 인사, 고맙다는 마음 등으로 장식되었다. 각자가 내는 웃음과 기쁨이었지만 같은 것이 되고 있었다. 아름답고, 신선하고, 소박하고, 흠이 없는 가장 완벽한 산시로 연못이 되었다.

이어서 나와 마리는 의식을 시작했다. 연못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있던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떠나갔을 때 나의 마음을 적었던 돌’ 위로 안내를 했다.

주례는 별도로 하지 않고 이치조 가를 이끌고 있는 신부의 아버지가 대신하기로 했다. 신부 아버지는 결혼식의 기원으로 알려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일본국토탄생의 주역이었던 남신 이자나기(イザナギ)와 여신 이자나미(イザナミ)에 얽힌 만남을 소개했다.

‘이자나기는 “나와 당신은 이 천지 축을 중심으로 돌아서 결혼합시다. 당신은 오른쪽으로 돌고, 나는 왼쪽으로 돌아 만납시다.”라고 약속을 했고, 그들이 만났을 때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군요. 참으로 사랑스러운 남성이군요.”라며 서로 칭송하며 결합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탄생신화의 신처럼 세상의 축을 차지하는 신부는 오른쪽으로 돌고, 신랑은 왼쪽으로 돌아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음을 강조했다. 만약 신랑과 신부가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면 영원히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만남은 서로를 향해 있어야 하고, 서로 쫓거나 같은 방향으로 달려간다면 영원히 만날 수 없다. 남녀가 만남을 가지면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유이다. 만남은 그렇게 운명적이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은 운명적인 만남이 만드는 기적이며 필연인지도 모른다.

산시로 연못을 수놓은 한국인 신랑과 일본인 신부, 한국인 가족과 일본인 가족, 일본식과 한국식 등이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어색함이 사라져 행복함과 다행스러움이 교차했다. 그곳에서 만나 그곳에서 함께하는 것은 산시로 연못이 주는 축복이었다.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청춘과 인생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도쿄에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음속에는 평화, 행복, 화합, 조화 등이 만들어낼 미래와 전쟁, 불행, 갈등, 불화 등이 만들어낼 미래가 섞이는 복잡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불안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떠날 때 간단한 줄만 알았던 귀향이라는 두 글자가 잊는 언어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둘만의 생활이 시작되어 일본이 마음과 몸과 미래가 정착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구석에는 공중부양을 하는 듯한 마음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에 들어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약속은 애당초 없었지만 귀향에 대한 미련이 조금씩 어슬렁거렸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두 개의 고향이 있었다. 태어난 곳과 지금 살아가는 이곳이었다. 태어난 곳은 떠나게 하는 냉혹함과 차가움도 있었지만 돌아오게 하는 부드러움과 따듯함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은 나에게 그림자와 빛으로 떠날 수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게 분명한 것은 고향은 왜 떠나야 하는지, 왜 돌아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있는 이곳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머물어야 하고 희망을 키우는 곳이어서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언제나 고향은 어머니가 지은 거미집과 같은 곳이었다.

귀향에 대한 향수를 눈치라도 챘다는 듯이 어느 날 마리의 아버지는 우리를 불러서 신중하게 이야기를 하셨다. 이치조 가의 가범(家範)에는 ‘남자 장손이 없는 경우, 가문을 계승하거나 대를 잇기 위해 양자인연을 맺는다.’는 규정을 언급하셨다. 그 순간 자신이 그런 상황에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하며 말씀하셨다.

“자네를 양자인연을 맺고 싶은 것은 우리 가족의 뜻이네.”

“네에?”

“그렇게 하려면 귀화를 해야 하고 양자인연(養子縁組) 신청 등의 절차가 필요하네.”

“꼭 양자인연을 맺어야 하는가요?”

“알다시피 딸 둘이고 아들이 없지만 가범에 따라 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잇고 싶네.”

“제가 어떻게...”

“자네와 한국 가족의 큰 결심이 필요하다네.”

아버지는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으시고 본인의 의중을 말씀하셨다. “이미 법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선대께서 계승해 온 가문의 전통을 계승했으면 하네.” 그리고 잠시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였다. 아버지는 좀 더 신중하게 말씀을 하셨다.

“단순하게 가문을 계승하는 것만이 아니네. 선대가 지켜온 정도를 잇고 싶네”

“가문의 정도...?”

“우리 가문은 불합리한 전쟁을 싫어했네. 그것이 우리 가문을 이어야 하는 이유이네. 자네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딸의 선택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는 자네를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 가문이 걷는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네. 그것이 우리 가문이 요구하는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이라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자네가 한국인으로 살든 귀화한 일본인으로 살든 그대로의 자네를 존중할 것이네.”

아버지의 뜻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심이 만들어낸 갑작스러운 충격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정성과 진심을 느끼면서 가문을 계승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구습이 아니며, 시대착오적인 허례허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바라는 희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복잡해졌다. 한국인에서 일본인으로 변하는 것이고, 다른 존재의 나를 만드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리에게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도리를 다할 것이고, 정도를 걷는 가문을 존중하겠다는 결심을 침묵으로 간절하게 전달했다.

나는 지금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상황이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꿈속의 세상에서나 그렸던 새파란 마음으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해야 했다. 그와 동시에 나처럼 ‘낯선 서점’에서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 미래의 나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리고 쓰임새가 있는 학문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도쿄에서 얻은 큰 행운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체현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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