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무방비 상태로 진행되었던 삶이 아니라 새로운 거미집을 짓기 위한 길이었다. 내가 가는 길은 아름다운 꽃이 피고, 꿈을 가진 뜨거운 심장이 뛰고, 멈추지 않은 희망이 지속되고, 포근한 둥지가 기다리고, 언제나 ‘우리’가 그려가는 미래가 체현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치조 마리는 학위를 마치고 도쿄의 한 대학에서 준교수로 임용되어 아버지와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나는 신시로 연못이 있는 캠퍼스에서 그 누구도 누릴 수 없을 만족감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변함없이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 안에는 채우지 못한 잠을 새우처럼 굽어진 사람들이 넘어지듯 의자에 기대어 달리는 속도에 몸을 의지했다. 그런 현상은 학창 시절부터 목격해 온 인간적인 경험이기에 자극제로 작용했고, 동시에 새벽이 가져다주는 신선한 선물이었다.
아침에서 기운을 얻어 걸어가는 발걸음과 큰 희망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큰 호흡으로 연구실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일상적인 캠퍼스에서의 생활과 일본에서의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소소하게 발생하는 불편한 현상, 이질성, 위화감에 부딪혀도 무감각하게 넘기는 정도가 되었다. 점점 일본 생활에 빠져들면서 일본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든 누구와 살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 누구도 비켜갈 수는 없는 업보인 것이다. 비켜갔다면 아마도 이미 생명을 잃은 사람이거나 천운을 갖고 태어난 몇 안 되는 행운아뿐일 것이다. 아니면 삶을 포기한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직업적 삶을 살아야 하는 절대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운이 좋게 나에게는 하고 싶은 학업을 하였고, 갖고 싶은 직업을 갖은 데서 오는 만족감과 희열이 쌓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이곳에서 살게 하고 나를 지탱하게 하며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깊게 느꼈다. 직업으로서 학문을 선택한 데서 유래하는 행복감이었다.
어느 순간 돌연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라는 질문이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에게 학문은 가장 단순하게 삶의 수단으로 존재하는 듯했다. 그것은 자기 보호 본능으로 얻은 전략적 포획물이었다. 거기에는 타인보다는 자기중심적 목적과 희망이 있었다. 학문은 자신의 존립을 위해 사유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잘 보면,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다. 사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영역이 더욱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의무와 책임뿐 아니라 공적인 의무와 책임을 지는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많은 기대와 희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영역의 직업과는 색다른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학문이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거나 학문을 하는 행위가 무익한 결과로 이어지거나, 부당한 권력이나 금권과 연결될 때 가차 없이 비판과 원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그리고 올바른 학문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애당초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자각 없이 선택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여기까지 왔다. 학문에 대한 자신만이 갖는 독특한 책임이나 의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가야 할 길이라는 것만을 보고 달려왔다. 학문이 나를 살게 할 수 있다는 확신 없는 확신이 지금의 나를 이끌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선택했다. 학문이라는 몸으로 세상이라는 연못에 뛰어들어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들고 빼꼼히 세상을 보는 듯한 모습으로 있을 뿐이었다. 아직 나에게는 물속에 존재하는 나와 물속에서 보는 세상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도 없이 불합리하게 널브러져 썩고 있는 부유물을 걷어내는 힘이나 해체하는 공식이 없는 상황에 있었다. 다만 어딘가에 언젠가는 불합리한 부유물을 해체하여 맑은 세상의 문을 여는 담론에 가담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학문에는 허구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진실만이 있어야 한다. 학문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지식이 있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학문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고, 길을 여는 답이 있다. 따라서 학문은 그것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쓰임새가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다.
나는 또다시 캠퍼스에서 직업으로서 학문의 길을 묻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학문의 길을 묻다’는 ‘삶의 길을 묻다.’이고, ‘인생의 길을 묻다.’와 동격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문하는 본질적인 나만의 이유와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었다.
내가 나에게 물었던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지만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결국 ‘무엇을 생산해야 할 것인가’로 귀결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업은 선과 악을 생산하는 기로에 서서 엄중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선(善)을 창출할 때 칭송을 받고, 많은 악(惡)을 생산하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선(善)을 생산하는 데 최고의 목적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많은 선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직업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생산되는 선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누군가에게는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나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삶의 수단으로써 학문을 선택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타인을 위한 여지와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치조 마리는 직업으로서 학문을 통해 미래를 개척하는 선택을 했다. 나보다는 더 멀리 보고 선택했다. 다만 우리가 선택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선(善)을 생산하는 데 최고의 가치가 있다.’점에서 일치했다.
그런 자각은 우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곳에서 선(善)을 생산하는 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했다. 이곳의 학문이 형성되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이곳에서 선을 생산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을 찾아야 한다.’는 갈망이 만들어낸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문을 통해서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선을 생산했고, 생산하고 있는 ‘그곳’에서 좀 더 연구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다시는 갈 수 없다고 인식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올바른 선(善)을 찾아 자신과 학문을 똑바로 세워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가 가야 하는 그곳은?’이라는 답에는 내가 태어난 한국도 아니었고, 배워서 살고 있는 일본도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사랑에 빠진 산시로 연못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현재로선 이곳이 아니라는 것과, 다른 곳이라는 것과, 지금 떠나서 도착해야 하는 곳이라고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치조 마리와 나는 연구년을 얻어 올바른 선(善)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촌놈으로 전락했던 나리타(成田)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김포에서 나리타로 오면서 아주 작은 백지장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지금 나리타에서는 가늠하고 싶지 않은 백지장 위에 올바른 선(善)으로 채워야 하는 책무를 갖고 다시 떠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여정은 재산을 몽땅 거는 도박도 아니었고, 난폭하게 도전하거나 죽을 만큼 핏줄을 세워 도발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었고, 아주 낯설 삶을 채우거나 상처를 입고 있는 인생을 치유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여정은 이제 외롭게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이었다. 혼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둘이 그리는 세상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다른 이름의 설렘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파란 하늘에 묻어있는 오점이나 티끌이 있어도, 칠흑으로 덮인 밤하늘을 무작정 걸어가도 행복을 느끼며 가기를 바랐다.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가끔 기다렸다가 또는 쉬었다가 하면서도 기쁘게 가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기를 염원했다.
밤하늘의 별을 찾아 헤매고, 가끔 우산 없이 가다가 소나기를 맞아 훌러덩 벗는 시원한 맛을 느끼며 가고 싶고, 가다 보니 맛있고 올바른 선으로 꽉꽉 채워지는 세상 속에서 허술하게 살아가도 되기를 희망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눈을 떼지 않고 보며, 잠시 눈이 시려 감는 순간까지도 손을 잡고 동행하기를 원했다.
나는 비로소 도쿄에서의 희망을, 나그네로서 끊임없이 흘렸던 눈물을,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사랑을, 서로를 위해 달궜던 몸부림을, 가끔 몸서리치게 찾아온 환희를,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울퉁불퉁한 ‘우리’가 극도의 가치가 있는 올바른 선(善)을 듬뿍 찾아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도했다.
THE END
이글을 은사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