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작은 희망이라도 빚어내려는 듯 따스하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메스 미디어에서 숨가프게 송출되고 있는 일본동북지방의 대지진참상이 몸을 비틀게 하고 혼을 앗아갔다. 목숨이 한순간에 곤두박질 치며 쓸려가는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없었다는 아주 단순한 우연이 목숨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쿄에서 얼떨결에 경험한 지진이 잠시 스쳐갔다. 내가 직접 경험한 지진은 진도 5 정도였다. 좌우로 전등이 술에 취한 듯 흔들렸고, 누워있던 몸체가 타다미 속의 누군가가 미는 듯이 움직였고, 생명이 있는 듯이 책장이 움찔했다. 나의 눈동자는 그런 현상에 반응하기보다는 멍하니 천장을 보고만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지진이구나!”하며 때늦게 인지하자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번 지진은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18초 미야기현 오시카 반도(宮城県牡鹿半島)에서 진도 9.0을 기록했다. 1923년 도쿄를 중심으로 큰 피해를 주었던 관동대지진 진도 7.9보다도 더욱 강력했다. 지진 명칭은 ‘동북지방태평양바다지진’(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으로 약칭해서 동일본대지진으로 통칭되고 있었다.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처참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고 큰 불행을 가져왔기에 창조주의 알 수 없는 저주라고 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만약 악마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일을 벌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시야에 들어온 것은 파랗고 맑은 기를 싹 뺀 검고 험한 얼굴을 한 사나운 바닷물이었다. 방파제와 해안가 벽을 거칠고 무자비하게 쓸고 있는 현장이었다. 생전 처음 접한 잔혹한 자연이 만들어낸 난장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던 위안도, 아름답게 수놓던 지평선도, 뛰어들어 안기고 싶었던 낭만도,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포근하고 잔잔한 품도 없었다.
바닷물이 밀고 들어온 자리에는 아주 작은 생명조차도 형체조차도 없었다. 건물과 주택과 길과 밭과 논과 나무와 풀과 사람이 서로를 가르며 상처를 내는 것 이외의 선택은 없었다. 거기에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주던 너그러움과 위함도 없었다. 서로가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불신과 공격이 난무하는 야만이 있었다.
인간을 무너뜨린 자연의 알 수 없는 웃음과 비아냥이 있는 듯했다. 욕망을 가진 인간의 허탈함과 후회가 있는 듯했다. ‘파괴가 아니라 자연현상이었다.’라는 변명으로 이 상황을 표현하는 것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안에 있는 이성과 관용으로 용서되지 않았고, 내가 가진 원망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도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바다에 떠 있어야 할 배가 육지로 향했다. 물 위를 달려야 할 배는 주택 위에 올라타 뻘쯤 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것이 본연의 얼굴이었다.’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싶었다.’고, ‘여기에서 쉬고 싶다.’고 버티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모두를 잃은 듯했다.
길바닥에는 주인을 잃은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인이 가방을 잃은 것인지 가방이 주인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서로는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망가져 버려질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알아 체념한 듯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방은 주인을 빼앗겼고, 주인은 가방을 빼앗겼다는 사실만이 있었다.
지금은 애달프게 응시하는 눈길만이 이 가방이 담고 있는 슬픔을 알아주고 있을 뿐이다. 등굣길에서 동행하며 행복함을 가득 담고 갔을, 지식을 담아 가지고 왔을 아이의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청소차가 와서 불행한 모습을 싣고 쓰레기 무덤으로 가야만 비로소 그 슬픔에 대한 치유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과 아이의 별리는 행복과 불행이 맞닿은 지점이었고, 그것이 생명을 갖고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곡예라는 것을 알았다. 저승과 이승의 차이가 종이 한 장보다는 얇다는 것을 알았다. 찰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는 것을 알았다. 삶이라는 길을 가는데 얼마나 큰 지혜와 행운과 노력이 필요한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물과 가만히 서 있는 주택은 파괴라는 사실 위에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잘 어울렸던 조합이 한순간에 등지고 앉아 증오와 울분을 삼키는 듯했다. 파란 하늘에도, 잔잔한 물결에도, 침묵하는 건물에는 꿈과 희망이 없었다. 그것이 눈앞에 밟고 가야 할 오늘이었고,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내일이었다.
자연의 잔잔한 난폭함과 인간의 난폭한 잔잔함이 벌인 잔해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버티고 있는 물결에는 자연현상에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죽은 이들이 흘린 마지막 간절한 눈물이 고인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동행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간절한 심경이 반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목숨, 배의 목숨, 가방의 목숨, 주택의 목숨은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의 대상이었지만 이 또한 파괴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앗사리 알려주는 듯했다. 거기에는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로 위로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나 이유도 없었다.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문명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 잘난 문명의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 순간의 자연은 모든 존재를 붕괴시키고 삼키는 단순한 파괴자에 불과했다. 천적도 없고 파멸을 관장하는 완벽한 악마였다. 그동안 품어주고 껴안고 핥던 그 모습은 악의 끌림이었고 유혹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어디론가 사라진 지금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거품만 토하고 있었다.
‘모두가 어디론가 사라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면서, 갑자기 마음을 격렬하게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지진이 일어난 곳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 누군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에겐 M으로 기억되고 있던 그 학생이었다. 대지진발생지역에 살던 M의 생존이 궁금해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에게 M은 행방불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