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는 어느 날 나타난 초인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생사는 운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운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운명(運命)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필연적이고도 초인간적인 힘’이다.
여기에서 운명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고 종속되는 초인적인 힘이다. 인간은 초인적인 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초인적인 힘에 좌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그동안 무수히 짓밟혀 사라지는 풀이나 힘없이 나뒹구는 나뭇잎보다도 나약해 보였다.
그러나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운명(運命)에는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없는가?’라는 저항성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운명에서 운(運)은 ‘운전할 운’이고 명(命) ‘목숨 명’이다. 목숨을 움직이는 절대적 힘 이외에 또 다른 생명의 주체에 의한 변화와 바뀜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는 것과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태어난 자가 간섭할 수는 없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택함, 위기, 걱정, 행복, 쪼들림 등 인간적 현상은 생명의 주체에 의존하는 상대적인 요소이다.
나를 태어나게 한 생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부모로부터 얻은 생명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는 것이다. 또한 죽어야 할 생명이지만 그것을 늘리는 행위는 생명의 주체에 의해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생명이 있으면 태어나야 하고 언젠가 죽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절대명제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살아야 하고 산자는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에게 탑재된 생사의 숙명(宿命)이다. 그런 사이클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후천적으로 접근할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운명은 변하는 것이고 숙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어서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어서 피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자주 비유되고 있다. 인간의 출발점과 끝점에는 숙명이 있고, 중간과정에는 운명이 있는 것이다.
나와 M과의 만남은 ‘운명’이고, M의 안위에 대한 나의 걱정은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이라는 운명은 걱정이라는 숙명으로 발현되어 내 마음에 내재화된 것이다. 나와 M은 운명과 숙명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편의적이며 돌출적인 생각을 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역으로 M의 생명 구제가 불변적인 숙명이 되기를 바랐고, M에 대한 나의 걱정이 가변적인 운명이기를 바랐다. 나와 M의 인연이 여기에서 명쾌하게 단절되는 것이 M의 생명이 구제되는 필수조건이라면 말도 떨어지기 전에,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용할 것이다.
절대적인 힘과 상대적인 힘을 역으로 뒤바꾸고 싶은, 운명과 숙명을 역으로 뒤바꾸고 싶은 간절한 그 어느 날 소식이 왔다. 자세히 보니 일본에서 온 메일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M으로부터의 메일이었다. 마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에도 기꺼이 심장을 내줄 수 있는 기분이었다.
“先生
日本はまだ品物不足や
行方不明者がたくさんいて
まだ混乱の中にありますが
韓国や他の外国の方々が力を貸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
またすぐに回復すると思っています。
最後になりますが
本当に心配してくださって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Mより”
선생님
일본은 아직 물품 부족이나
행방불명자가 많고
여전히 혼란한 상태에 있습니다만
한국이나 외국 분들이 힘을 주고 있어
곧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정말로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M으로부터
M의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생사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마치 여행을 갔다 행방불명된 소중한 사람이 살아 돌아온 듯했다. 아주 멀리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이 반짝이는 웃음을 안고 돌아온 듯했다. ‘M을 기억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할 것이라는 다짐’보다는 그녀의 생사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에 주저앉았다.
더불어 나의 인식을 강하게 질타했다. 행방불명이라고 인식했던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너무 비관적이었다는, 불쾌한 인식이었다는, 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치부했다는, M의 생명을 부정적 숙명에 기울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M에 대한 존재가 나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렸던 것이다. M이 아무 탈 없이 삶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내가 끼어들어 벌인 소동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기억에서 시작된 마음의 저울추가 균형을 이루는 찰나, 어렴풋이 기억으로 존재했던 M이 가슴속으로 힘차게 밀고 들어왔다.
이미 내 심장을 향하고 있는 화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