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은 설렘 그대로였다. 10년 전에 봤던 그 모습이 마음을 흔들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 변한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곳에서 일어난 작은 흔들림은 고향처럼 느끼는 교감이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자보다는 떠난 자가 다시 와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처음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가운데 홀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했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일본말이 잘 들리지 않았기에 귀보다는 눈으로 기억해야 했던 곳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면서도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향해 가야 했던 곳이었다. 누군가가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 어리둥절 눈알을 돌리며 행선지를 찾아야 제맛이 나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오로지 가야 할 길에 몰두해서 가기에 바빴다. 앞에 놓인 길만이 가는 길인 줄 알았고, 구름과 소나기를 내리는 하늘만이 존재였고, 귀가해서 내일을 암울하게 맞이한 저녁만이 있었다. 오늘 도쿄역에서 처음으로 여러 길과 파란 하늘과 온화한 저녁을 느꼈다. 가끔 다가오는 흔들림은 쉼표를 갉아먹는 무모한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정이 되기 위한 몸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쿄에 간 이유는 일본 외무성 산하 국제교류기금의 후원으로 일본, 한국, 중국, 대만의 일본학자들이 주축이 된 ‘동아시아일본연구자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기는 많은 두려움과 공포, 걱정을 안겨줬던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후 약 9개월이 지난 2011년 12월 초순이었다.
심포지엄에서는 각국에서 연구되고 있는 일본연구 성과물에 대해서 발표하는 섹션이 있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동아시아는 3.11를 어떻게 논했는가 : 동북부흥에 대한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동일본대지진 이후 문제를 논하는 익숙하지 않은 섹션이 있었다. 더욱이 피해지를 견학하는 코스도 마련되어 마음이 복잡했었다.
야에스후지야(八重洲富士屋) 호텔에 도착하고 식사를 한 후 ‘낙엽’이라는 회의장에서 발표안내지, 발표수당과 함께 생뚱맞은 생명수당을 받았다. 전쟁터로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생명수당을 받는지 의아해했다. 담당자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 진원지에서 가까운 센다이(仙台)에 가서 발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약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지진에 의한 직간접인 위험이 있단 말인가?’ 잠시 동료 교수의 얼굴을 보며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다고 하면 “도쿄에서 개최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담당자에게 질문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면서 난처하다는 듯이 이해 해줬으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번 심포지엄은 각국에서의 일본연구현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동시에 국제심포지엄을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유치하여 지역의 안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피해지역의 부흥과 이해를 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쓰나미 피해지역을 견학하는 코스는 그렇게 마련되었던 것이다.
일본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동북지방의 부흥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즉각적으로 수긍했다. 그리고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흩고 간 지역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매대학의 교수 및 직원, 2010년 한국문화연수에 왔던 일본학생들, 특히 생사를 걱정했던 M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다음날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신칸센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내 마음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는 것 같았다. 차창 사이로 비치는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가는 대로 내버려 뒀다. 애착을 유발하거나 관심을 끄는 요소를 만들지 않으려고 자제하면서 한계에 부딪히면 눈을 감아버렸다.
차창 뒤로 가는 것은 과거이고, 달리고 있는 것은 현재이고, 다가오는 것이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에 머무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아니 빨리 미래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도착할 미래에는 흔적으로 남겨진 과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바쁜 몸체는 동일본대지진 진원지에서 멀지 않은 센다이역(仙台駅)에 더디게 도착했다. 과거의 미래가 현재로 있는 곳이었다. 주위에는 지진을 비난하거나 꼬투리를 잡을 만한 파편 하나도 없었다. 거리는 매우 평온했고, 길은 길대로 나있었고, 자동차들은 혼란함 없이 갈 길을 잘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열딱지 상처가 아니라 간파할 수 없는 웃음기가 굳은 핏기가 서려있는 듯했다.
학원 건물에는 “かんばろう東北の受験生!!”(힘네 동북의 수험생), “第一志望は、ゆずれない”(제1지망은 양보하지마)라는 문구가 대학시험 시즌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것을 보면서 “かんばろう仙台!!”(힘네 센다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으로 지나갔지만 그런 구호가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악몽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신호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9개월 전의 센다이를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있었다. 아찔했던 M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머릿속에 스스로 내버린 상처를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현장에서 확인했으니 상처를 잊자 잊어버리자!”라고 강하게 외쳤다. 상처는 아무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라고 세뇌시켰다.
마음 편하게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진원지로부터 멀지 않은 해안가에 있는 ‘마쓰시마 센추럴(松島センチュリ)호텔’에 들어섰다. 호텔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뉴스에서 본 거대한 붕괴나 파괴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로비 천정에 바닷물이 들어와 남긴 자국이 쓰나미의 난폭성을 고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텔직원에게 “이곳의 원상복구가 빨랐던 것인지 아니면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인지”를 물었다. 직원은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쓰나미가 피해 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들으니, 평소에 호텔 앞의 시야를 가려 야속하게 생각했던 작은 섬이 쓰나미의 몸부림을 잠재웠기에 안전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다를 증오하고 싶었고, 또한 현장에서 무자비하게 인간의 세계를 침탈한 벌거벗은 바다의 민낯을 보기 위해 호텔 앞바다를 쌍불을 켜고 응시했다. 거기에는 쓰나미에 무너져 산산조각 나 바닷물에 잠겨 있는 방재 둑만이 공포에 젖어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 바다에는 쓰나미에 포획된 채 오가도 못하고 떠있는 부유물 위에 갈매기가 삼삼오오 모여 인간세계의 문명을 깔보듯이 도도하게 앉아 있었다. 바람도 없고, 거친 파도도 없고, 쫓는 이 없고, 평온을 독차지하며 소곤소곤 속삭이며 살아남은 그들만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날렵한 날개를 휘두르고 선착장이나 어선을 따라다니며 먹이를 간절하게 갈구하는 애처로운 갈매기가 아니었다. 냅다 던져준 새우깡 하나에 만족했던 측은한 갈매기가 아니었다. 바다 위를 날 수 있는 날갯짓으로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짜릿함을 즐기고 있는 승자의 모습이었다.
현장을 묵도하니 살아남은 존재는 야단법석이었다. 파괴되고 살아남지 못한 존재는 침묵이었다. 인간과 갈매기는 바다를 두고 그렇게 운을 달리했다. 문명과 자연은 바다를 두고 그렇게 갈라서고 있었다. 나는 내 조국도 아닌 이곳 바다를 응시하면서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휘말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