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답이 없는 것들

by 청사

현실은 설익은 지식의 보고이다. 국제심포지엄이 끝나고 호텔 근처에 있는 횟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일본에 살면서 먹어왔던 생선 중심의 일본요리 가운데 선호하는 메뉴를 별도로 주문했다. 눈앞에 펼쳐진 일본요리를 접하면서 촉촉하고 달콤하게 입안을 수놓는 맛과 눈의 시선을 강탈하는 황홀한 장식에 만찬은 격을 달리했다.

지진으로 인한 후폭풍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붕괴되어 발생되는 열을 헬리콥터로 물을 분사하여 식히던 매우 비과학적이며 21세기 과학 시대의 얼굴을 뭉게 버린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미학적 사고와 음식으로 여겼던 미슐랭 향기 일본이 살아있는 순간이었다.

원전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방사능이 유출됐을 것이라는 생각과 열기를 식히기 위해 뿌린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방사능에 의한 피해, 바다 오염, 생선 오염 등에 대한 걱정보다는 일본인이 겪은 겪고 있는 불행한 사태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피해지역을 보면서 내가 감탄하며 먹는 생선들이 어느 바다에서 잡은 것인지,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등에 대해서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삶의 터전이 무너진 곳에서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요리하는 요리사나 맛있게 즐기는 고객이 품어내는 웃음과 활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침이 되면서 마쓰시마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앞으로 전진”(前進松島)이라는 슬로건을 마주하며 피해지역 견학에 나섰다. 안내인은 그 지역에서 나서 배우고 자라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한 청년이 했다. 그 청년은 덩치가 좋았으나 긴장해서 그런지 목소리는 매우 떨리고 가늘었다.

6개월 전 뉴스를 통해서 본 지진피해 현장을 직접 보게 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설렘이 생겼다. 조각난 문명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기에 자리를 잡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제 자리를 잃은 모든 것들로부터 새어 나오는 조용한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듯했기에 마음은 더욱 참혹했다.

피해지역에서 첫 대면은 ‘꽃피는 언던의 집’(花坂ハウス)이라는 땅에 나뒹구는 간판이었다. 아마도 민박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은 겨우 버티고 있었고 벽과 내부는 산산조각이 나 너덜너덜했다. 간판은 집과 주인을 잃었고, 고객을 유혹하는 본연의 임무도 잃었다. 지킬 필요도 없는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어서 나타난 모습은 허허벌판 위에 올라와 있는 눈에 익은 어선이 있었다. 뉴스에서 본 바로 아주 큰 그 배였다. 바다를 나는 새라는 이름을 가진 조가이 마루(鳥海丸)였다.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땅을 짚고 있는 모습은 애당초 땅 위에 있었다는 듯이 안정되게 자리를 틀고 있었다. 저 배의 고향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물속에 빠져있는 집이었다. 어쩌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바닷물이 강제로 개입한 결과였다. 땅 위에 있어야 할 집이 바닷물에 있는 것이었다. 이 집은 육지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사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육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호흡이 잠시 멈췄다.

가느다란 호흡과 눈빛으로 넓은 들판을 봤다. 그곳은 곡식이 자라거나 가축이 있어야 어울릴 만한 곳이었다. 농작물이나 농부의 모습은 사라지고 파괴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경고라도 하듯이, 조각난 문명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듯이 커다란 크레인이 목을 길게 늘어트린 채 죄스럽게 통곡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산더미 쓰레기 산맥이 형성되었다. 운을 다하지 않은 채로 주검이 된 문명이 서로 껴안고 엉켜 뒹굴고 있었다. 삶을 살다가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에서 작렬하게 전사한 모습이 아니었다. 부서져 생명을 잃은 조각으로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의 존재는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문명의 무덤을 지나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개천이 보였다. 있었던 곳인지 쓰나미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엉망진창이었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가제도, 붕어도, 게를 닮은 생명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곳은 개천이라는 신분을 잃어버렸고, 생명을 담는 물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수많은 피해지역을 지나 가설 주택지에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안내인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몇 분이 거주하고 있는가요?” “네?”라고 답하는 순간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담겨 떨어졌다. 희망이 떨어지고 아픔이 굵어지는 눈물이었다. 불행을 씻어내려는 눈물이었다. 처음이 아니라 수 만 번 흘려본 눈물인 듯 얼굴에 새겨진 물길을 따라 널브러진 행복을 모으려는 눈물이었다.

가설 주택 앞에는 간이우체국과 몇몇 광고판이 있었다. 우체국 입구에는 ‘연말 대박 복권’(年末ジャンボ宝くじ)을 판다는 광고가 붙어있었다. 여전히 복권이라는 희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낚고 있었다. 제 분수도 까맣게 잊은 채 이곳에 있는 일본인이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택배회사와 생명회사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생명회사의 광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입원특약 그날부터”(入院特約 その日から)라고 쓰여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지진이 일어나 다쳐 입원한 날로부터 지급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처참한 지진의 상처를 상술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정함으로 다가와 씁쓸해졌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견학을 마쳤다. 이 참상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가진 눈이나 내가 가진 언어는 없었다.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저린 가슴으로 밖에 기록할 수가 없었다. 잔잔하게 눈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뜨거움으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자매대학의 관계자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 센다이(仙台) 시내로 들어갔다. 천만 근의 무거움에 눌려 있어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들에게 무슨 위로를 해야지, 웃는 얼굴로 반갑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침묵을 해야 할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많은 걱정이 되는 가운데서도 M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적인 얼굴로 가기로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들어섰다. 안면이 있는 국제교류부장이 웃는 얼굴로 맞이했고, 직원들과 학생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모두의 얼굴이 밝았기에 피해, 상처, 고뇌 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준비한 언설적인 위로는 또다시 상처를 번지게 하는 것으로 결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했다.

조금이라는 아픔이나 상처를 위로해주고 싶은 말을 준비했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에 담은 글귀를 빠르게 삭제했다. 내가 확인한 주인을 잃은 쓰레기, 바다에 있는 집, 땅 위에 있는 배, 흔적이 많은 상처들이 그들에게는 이미 잊히고 지나간 과거가 된 것처럼 인식됐다.

국제교류부장은 “인사 말씀을 듣고 싶다”라고 했다. 삭제된 인사말 대신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꼭 안아주고 싶었다. 웃음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떠질 것 같은 서성거림을 잠시 쉬게 해주고 싶었다.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눈물이 납니다.”라고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우리 함께 행복합시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일일이 그들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가 되어도 있어야 할 M이 보이질 않았다. 그 학생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기에 그들을 보면서도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어 어딘가에 있을 M에게 인사를 했다.

M을 향했던 손을 끌어들이며 떨리는 눈빛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망설였다. 문드러지는 얼굴을 어떻게 다잡을지 알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여지없이 조그맣게 피어나는 아린 파장을 어떻게 잠재울지 몰랐다. 나의 기대와 현실이 어그러지는 이 간절함과 아쉬움을 어떻게 안고 갈지 알지 못했다.

온 마음과 몸이 제자리를 잃고 있는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며 오가는 대화로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에 담고 있는 명백한 감정을 숨긴 채 알코올에 기대어 지르는 축배의 소리에 누르고 있던 무게를 살며시 던져버렸다. “M군 어디에 있는가?”

이곳에서 건강하게 보이는 그들을 만난 것은 후련한 치유였다. 애당초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뜨거운 희망이었다. 그러나 후련한 치유와 뜨거운 희망은 다시 두려움과 걱정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M의 그림자가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인생에는 답이 없는 것이 없지만 지금은 답이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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