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긴장합니다!!! ”

by 청사

기억은 삶을 갈아먹는 두통이 아니라 풍부하게 만드는 묘약이다. 나의 기억은 두통과 묘약 사이에 있었다. 센다이(仙台)에서 씻겨지지 않은 어두운 기억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했다. M군을 만나지 못했다는 기억과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는 기억이 엉켜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M군이 지배하는 나의 정신과 신체가 갈 길을 찾는데 갈등하고 있었다. 갈등은 부정적 파탄의 시작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전조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를 지배하는 갈등의 본질은 M에 여전히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갈등

있어야 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떠나야 하지만

떠나서는 안 되는

버거운 흔들림


『나. 사랑, 세상을 피우고』에서


지금 나는 나를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마주하고 있고, 길을 잃은 어린양처럼 되어 버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 한 사람 머물러 달라거나 떠나라고 하지 않음에도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어 본 적인 없이 딱 한번 만났을 뿐인 M은 그렇게 함께 황량한 들판에서 동행하고 있었다.

남을 걱정하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퇴로의 말에 기대면서 멍 때리는 순간이 잦아졌다. 순간으로 이어지는 시간을 의식하지 못했고, 시간의 흐름에 나타나는 멍한 그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에 대한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했지만 현재라는 시점이, 갈등하는 마음이, 지나가는 시간 등이 꼬꾸라져 엉키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가졌던 ‘살아가는 인생에는 답이 없는 것이 없다’는 신념이 센다이에서처럼 여전히 흔들거렸다. 다만 답이 늦어질 뿐이라는 변명으로 현재의 위기를 넘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답을 구하고 있기에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으로 채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생겼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좀 더 앞으로 가는 길이며, 지금의 갈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삶을 왜곡 없이 받아들이는 극히 당연한 자세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얇고 가벼운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내게는 많은 의미를 담은 아주 무거운 편지였다. M의 현재를 알리는 그런 편지였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은 떨리는 눈으로, 떨리는 눈은 흔들리는 손으로, 온전치 않은 마음과 눈과 손은 여과 없이 신체의 진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봉투를 깔끔하지 못하게 찢는 방식으로 개봉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M입니다. 건강하십니까? 이번 처음으로 한국어로 편지를 씁니다. 긴장합니다!!! 오늘은 선생님께 보고가 있습니다. 놀라지 말아 주십시오. 저 항공사에 합격했습니다. 여기서 일본어로 씁니다. 죄송합니다.

3月の震災の影響で遅れてしまったものの、6月から試験が始まり、受験していました。6回の試験を経て、ついに内定を頂きました。韓国に滞在している間に'私の夢は航空社に入ること'と先生にお話したのを覚えていますか?そして先生は'背は低い私に対して、アドバイスして下さいました。'背は伸びないけど心はこれから伸びる予定ですと言えば大丈夫だよ'と。私はその言葉をずっと心にしまい頑張ってきました。誰よりも先生に、このことを伝えたかった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先生は一緒に私の夢を叶えて下さいました。感謝しています。お身体に気をつけて、毎日楽しくお過して下さい。また連絡しますね。Mより”(3월 지진의 영향으로 늦어졌지만 6월부터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6회의 시험을 거쳐 내정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체류 중 “저의 꿈은 승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선생님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선생님은 “키가 작은 저에게 어드바이스를 했습니다. 키는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성장할 것이라고 말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저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선생님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해서 저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M으로부터)


M은 한국문화연수를 하면서 한글을 매우 열심히 공부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한글로 편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M이 말한 글 중에서 “긴장합니다”가 가장 눈에 깊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표현이지만 충분히 그 의미를 알고도 남았다. 나는 그녀가 자신이 만들어낸 좋은 긴장감을 내게 전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을 기분 좋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섬세하고 곧은 심성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는 더 성숙하고 밝은 삶을 가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봤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하는 기대를 증폭시켰다.

편지와 함께 활짝 핀 웃음을 담은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동봉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있을까? 개운치 못한 기억이 한꺼번에 가시는 경험은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앞으로 깜짝쇼를 얼마나 만나야 할까?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잠시 알 수 있는 허탈함과 알 수 없는 희망에 빠져버렸다.

삶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어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매우 많은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삶은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라도 타인이 결정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타인은 나와 다르기에 항상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M은 나에게 자성하기를 다그치고, 출렁이는 언행을 잡아주며, 기다림의 의미를 무수히 던지는 재주가 있어 두려운 존재가 되고 있었다. 동시에 예측을 희망으로 둔갑시키고, 버거운 기억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며, 교감하고 싶은 내부인으로 다가오고 있어 가장 가까이하고 싶은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제멋대로 터트린 기억의 불꽃을 품어내는 활화산을 잠재워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M은 자신이 바라는 길로 힘차게 가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해야 하는 것은 걱정이 아니라 열심히 응원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동공에 힘을 주입하는 먼 산을 가까이 끌어들여 보거나, 밟고 있는 땅을 아주 멀리서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의 길이를 결정할 수 있는 아주 명백한 명분이 있는 ‘긴장합니다!!!’가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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