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종속이론과 육두문자

by 청사

재회는 두절된 상태를 무너트리는 최상의 답이다. 재회는 다시 만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의 지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회에는 예상되거나 그렇지 안거나 또는 숨어있는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재회에 숨겨진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급하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M군,

빠른 회신에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만나고 싶습니다.

우선 한국에서의 스케줄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그것에 맞춰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00으로부터」

「선생님,

저도 역시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명동에 있는 호텔에 머물 예정이지만,

한국어로 되어있어 호텔 이름을 잊었습니다. 송구합니다.

11일 오전에 도착해서 명동을 구경하고 12일에는 친구를 만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 귀국하는 12일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피곤하지 않다면 말이죠.

저는 13일 오후 김포에서 하네다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M으로부터」

일본에서의 귀국은 오후 8시 하네다에서 출발해 오후 10시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어서 12일에 만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것보다는 차라지 잠시라도 일본에서 만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다만 M군의 비행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다시 일본에서의 조우를 시도했다.

「M군,

지금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비행이 끝나 귀가하면 연락 주기 바랍니다.

00으로부터」

「선생님,

일본에 어서 오십시오.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서로 메시지로 연락을 했으면 합니다.

M으로부터」

「M군,

신속한 회신 감사합니다.

미안하지만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도쿄에서 중요한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만약 시간이 되면 뉴오타니 호텔로 전화 바랍니다.

승무원 생활 등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00으로부터」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선생님이 대학 행사 참석차 일본에 오셔서 이해합니다.

지금 저는 비행을 하러 가는 중이고 오후 11시에 끝납니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M으로부터」

「선생님,

저는 귀가했습니다.

아직 주무시지 않는지요?

M으로부터」

나는 일찍 잠에 들었기에 그 메시지를 다음날 아침에 확인했다. 그러나 모처럼 M군과 짧지만 잦은 대화를 나눈 것에 만족했다. 매우 진솔하고 용기가 있었고, 구김이 없었으며 친근함이 넘쳤다. 나이 차이가 많아 친구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가능했기에 더욱 정감이 갔다.

직접 전화로 만나는 날짜를 조정하려고 하였지만 비행을 하게 되면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겨우 통화할 기회가 생겨 우리는 한국에서 13일 오전에 만나기로 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영하 마이너스 15도까지 곤두박질쳐 매우 추웠다. 교통 정체가 예상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명동으로 향했다.

그녀는 젊은이들이 가볍게 머물 수 있는 작은 호텔에 머물렀다. 프런트에 들어서 M에게 전화를 했다. 이윽고 케리어를 끌고 내려왔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몸가짐에 약간의 진동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매우 감동적인 재회이어서인지 얼굴에 열기가 올랐다.

“오랜만이야, 건강하게 보이는군”

“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잊은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 롯데 백화점 레스토랑에 점심 예약을 했어”

“예...”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가면 될 거야.”


한국의 날씨를 예감하지 못했는지 투피스에 얇은 코트를 걸쳤다. 나는 목을 감싸라고 목도리를 내줬다. 롯데백화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소요됐다. 그녀와 함께 명동 대로를 가로질러 걸었다. 나는 돌발적인 패션을 한 젊은이들의 사진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녀의 케리어를 밀고 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대학 시절 명동을 걸었던 모습이 새롭게 떠올랐다. 당시 나는 비판사회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종속이론(The Theory of Dependence )을 신봉했던 영향에서 인지 일본, 미국, 한국 정부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을 했었다. 강국 종속으로부터의 해방, 민족통일, 자유화와 민주화 등을 들춰내면 만사가 형통했던 시절이었던 같았다.

당시 친구와 알코올에 약간 취해 민주화 운동 가사를 흥얼거리며 명동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혼란한 정치에 대한 불만, 젊은 혈기를 방출하기 좋은 시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방만한 마음 등에 젖어있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사람, 연말 분위기, 네온사인 등이 한층 들뜨게 했다.

우연히 중년의 일본 남자와 젊은 한국 여성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갑자기 그들에게 증오의 화살을 쏘고 말았다.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향해 육두문자를 강하게 날렸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좁은 골목으로 총총 사라졌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년의 한국 남자와 젊은 일본 여성이 명동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내용과는 관계없이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라는 증오 프레임에 놓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땅에 떨어뜨렸던 육두문자를 거둬들이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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