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기울어진 천칭저울

by 청사

순수하게 움직이는 마음은 죄가 없는 것이다. 나는 졸지에 짐꾼이 되어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것처럼 무거운 그녀의 케리어를 들고 밀며 씨름하고 있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짓고 가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아랑곳하지 않고 유쾌하게 걸어갔다. 드디어 칼날같이 몸을 파고드는 한파를 뚫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무사히 도착했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며,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 등을 주문했다. 얼굴에는 꽃이 만발했다. 눈에는 촉촉한 눈망울이 맺혔고, 눈썹에는 길고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으며, 입술에는 분홍빛의 실룩임이 내려앉았고, 광대에는 기쁨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숨기를 거부하는 치아는 가지런히 무동의 군무를 했다.

나는 겨울에 차가운 공기와 묘한 건조한 공기가 엄습하면 기관지염이 재발되곤 했다.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기침을 하며 물을 자주 마셨다. 어느새 내 물 잔에는 물이 사라졌다. 기침을 하자 말없이 그녀는 자기의 물 잔에 있는 물을 서슴없이 내 컵에 채웠다. 그런 행동에는 위생이나 무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겨움과 감동만이 있었다.

그녀는 “직장 생활하는 데 있어 옳은 것이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의 방침, 상사의 생각, 동료의 이해관계 등에 의해서 그 옳은 것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여 본래의 형체를 잃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갈등하기도 하고 억지로 수용하기도 하고 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정의에 대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견을 피력했다. 정의(Justice)라는 개념은 로마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는 천칭(天秤: 하늘 천, 저울 칭) 저울을 들고 있다. 그것은 좌우의 무게를 재는 것으로 지은 죄의 무게에 적합한 형벌을 재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의 사도로서 유스티티아의 여신상이 법정 앞에 세워져 있는 이유이다.

서양적인 정의는 불의에 대해서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옳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하게 하거나 책임을 지게 하는 강제적 행위이다. 만약 지은 죄에 비해 대가나 책임이 가볍거나 무거울 때는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게 된다.

그 관점에서 정의는 불의의 반대개념이 된다. 정의는 법, 규칙, 관습, 도덕 등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정의는 그것을 지켜야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는 법, 규칙, 관습, 도덕 등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위반한 만큼 처벌을 해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정의를 ‘正義’로 표기한다. ‘바를 正과 옳을 義의 결합’이다. 즉 ‘바르고 옳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르고’의 의미는 왜곡되지 않는 것을, ‘옳은’의 의미는 틀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의는 왜곡되지 않고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왜곡되거나 틀린 것을 옳게 수정하는 방식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서양적 정의든 동양적 정의든 정의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의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 여러 개로 분리되는 상황적 정의로 둔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실에서는 하나의 정의보다는 변형된 다양한 상황적 정의가 작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나의 정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정신적인 요소와 물질적 요소 등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신분, 장점, 배경, 권력, 돈, 지위, 자격, 환경, 해석, 왜곡, 감정, 이성, 사정, 불의 등 하나의 정의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정의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못하고 변형된 상황적 정의가 작동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정의는 오로지 하나이다. 즉 바르고 옳은 뜻을 가진 하나의 정의가 왜곡되거나 틀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하나의 정의가 반드시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러 요인에 의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상황적 정의를 만들어 대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정의와 상황적 정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충돌하거나 갈등이나 불협화음이 발생하여 법, 규정, 훈계, 도덕 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 경우 거짓말을 해도 되는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변형된 상황적 정의의 실현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선생님과 저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의는 어떤 것인가요?”

“‘선생과 제자로 있는 것’이라고 하면 어떻까?”

“그러면 선생님과 저 사이에 사사로운 감정을 걷어낸 건조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선생이 제자를 위해주는 마음 그리고 제자가 선생을 위해주는 마음이 있는 관계이지 않을까?”

“선생님이 아침에 저를 만나러 온 것이나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점심을 챙기는 것은 선생이 제자를 위해주는 마음이었던가요?”

“그렇게 볼 수 있지.”

“제가 한국여행을 계획하고 온 것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 감정이 들어간 행위는 선생님과 저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의를 위반한 것인가요?”

“선생과 제자라는 하나의 정의는 서로 남녀의 관계로 인식해서 사랑하게 되면 깨지는 경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남녀의 관계로 인식해서 사랑하게 되면’은 이미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상황적 정의화된 것이라고 생각해. 하나의 정의가 지켜질 때 좋은 관계가 지속된다고 생각해.”

“저는 언젠가 선생님과 저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의를 능가하고 좋은 상황적 정의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지금 제가 상상하는 그 상황적 정의가 무엇인지는 저만 갖고 있을 겁니다.”

“나도 가능하면 하나의 정의를 대체하는 더욱 바르고 옳은 새로운 상황적 정의가 만들어지길 바라.”

당당하고 당돌한 그녀의 말과 태도가 좋았다. 용기가 있고 적극적인 그녀의 생각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아니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상황적 정의가 만들어져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많은 즐거움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의를 능가하는 상황적 정의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택시에 탔다. 도시 숲을 나오자마자 나른해져서 그랬는지 택시 안으로 빨려 들어온 따듯한 햇빛에 젖어 그랬는지 졸고 있는 그녀는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그녀의 흔들림에 나의 마음은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어깨를 내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깨를 안 내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상황적 정의의 돋음인가라고 생각하며, 부동의 자세로 점점 가깝게 기울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공항까지 배웅하는 과정에서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의 천칭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안간힘을 섰다는 것을 느꼈다. 보딩 체크가 끝나고 출국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어떻게 보내는 것이 하나의 정의를 지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출구 앞에서 그녀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10화 종속이론과 육두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