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헌 해를 밀어내고 와야 하는 우주의 법칙이다.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순리이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순리를 파헤쳐 새롭게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움을 위해서 지혜를 늘리는 것은 숙명이다.
일본에서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 한 해 동안 집안에 낀 먼지를 터는 대청소를 한다. 헌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채우기 위한 마음이다. 저녁이 되면 새해맞이 국수(年越しそば)를 먹으면서 장수를 기원한다. 새해를 축하는 의미에서 오세치요리(お節料理)를 준비해서 온 가족이 즐긴다. 그리고 그동안 신세를 진 지인들에게 고맙고 잘 부탁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하장(年賀状)을 보낸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M군의 연하장이 도착했다.
「선생님
새해를 맞이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매우 행복했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한글을 잘 모르지만
주신 저서를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리고 다시 뵙겠습니다.
M으로부터」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사법은 닮아있다. 고마워할 일이 생기면 그에 상응하는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일본에서는 ‘신세를 져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수동적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감사하다.’라고 하는 능동적인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다. 동일한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자신을 객체로 놓은 성향이 있고, 한국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놓는 성향이 있다.
M군은 일본인의 수동적인 표현과는 다른 성향이 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매우 능동적으로 표현을 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일본에서 암암리에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본인의 대화법과는 달랐다. 나는 그런 점이 그녀가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연하장에 대한 답예로 새해 인사를 보냈다.
「M군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서울에서의 만남은 새로웠습니다.
이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습니다.
잘 가봅시다.
좋은 새해를 맞이하기 바라며,
가정과 직장에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올해 콘셉트는 ‘緣’이라고 정해 소중히 키워갈 생각입니다.
새해 카드를 송부합니다.
「 縁というのは、
捨てても消えず生き残る心
逃がしても行かず捕虜になる身体 」
「 인연이라는 것은,
버려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 마음
놓아주어도 가지 않고 포로가 되는 신체 」
최근 M군과의 대화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학생이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 활동하는 사회인으로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민족 차이에 의한 문화 차이가 개입될 여지는 있지만 인격체라는 관점에서 서로 간의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군과의 사이에는 인간의 지혜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이른바 내생적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세대 차이는 연령 차이를 의미하고, 연령 차이는 가치관 차이로 발현된다. 연령 차이와 가치관 차이로 나타나는 세대 차이는 서로를 구분하거나 다양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연령 차이는 신체적 준거에 의한 구분이다. 신체적 구조에 의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 성장 과정에 의한 유아, 청소년, 장년, 노년 등과 같은 차이에 의한 인식이다. 그런 생물학적 차이는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지위, 활동, 역할 등에서의 차이로 나타난다.
가치관 차이는 정신적 준거에 의한 구분이다. 즉 사고, 행동, 감각, 의식, 인식, 가치, 도덕 등에 의해서 발생하는 차이이다. 중장년의 고리타분함을 꼬집는 꼰대라는 용어, 젊은이를 의미하는 사토리(悟り) 지각) 세대, 구세대와 신세대의 시대성 등에서 행동거지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내가 느끼는 M군과의 세대 차이는 전통적으로, 내생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답습해 온 도덕적 준거로 나타나고 있는 듯했다. 인적관계에서 작동하는 양심, 도덕, 규칙, 화합, 제어 등에 의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흔들리지 말라.’라고 하거나 ‘분수에 맞게 살라.’라고 하는 질타성의 도덕적 준거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 질타성의 내심에는 ‘M군에 대한 감정’이 들어갔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도덕적 돌이켜봄이 기능하고 있었다. ‘M군에 대한 감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는 자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준거에 어긋나 숨기는 독백성의 고백으로 다가왔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M군에 대한 감정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하는 자성은 ‘M군을 여성으로서 봐서는 안된다.’ 거나 ‘감정이입은 안된다.’는 제어적 지각으로 발생한 평화적 혼란이고, 투쟁적 화합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도덕적 준거가 기능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내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M군의 감정에 의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비겁한 자세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군이 저돌적이며 직설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버티고 있는 도덕적 준거의 벽돌을 하나하나 빼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은 햇빛을 따라가는 나그네였다.
아직까지 내가 소중하게 키워가는 인연에는 신체적이며 정신적 준거가 미세하게 작동하면서도 여전히 재생되는 도덕적 준거가 뚜렷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 인연이 돌발적인 감정을 잠재워 이어가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속마음을 까지 못하게 스스로 정립한 ‘인연’에 묶여 살아가는 생각이 많은 중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