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우리 사이에 살아있는 과거

by 청사

M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시간의 흐름은 기억의 잔상을 흔들리게 했다. 기억 사이에 공백이 생기면서 시간은 각자의 시계대로 더욱 뚜렷하게 흘러갔다. 더욱이 스펙트럼 속에서 펼쳐진 심상이 얇아지면서 존재감은 점점 작아졌다. 언제 터졌던 활화산인지 알지 못하게 그 흔적은 매우 딱딱하게 굳어져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그럴만한 사정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그런 인간사의 평범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지금 그녀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떠가는 구름과 함께 무덤덤하게 흘려보냈다.

가슴속으로 받아들였던 쇼윈도의 유혹도 느끼지 못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새겨진 하나하나의 추억들이 갖고 있는 인연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아쉬움을 삭혔다. 그리고는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미래의 인연을 위해 공간의 넓이를 재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M으로부터 다시 편지가 왔다. 연락이 두절된 지 2년째 되는 2013년 12월 6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여름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급의 센바람처럼 닥쳐왔다. 아주 상쾌하고 힘차게 나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3년 전 여름 대학에서 신세를 졌던 M입니다.

건강하게 계신지요?

다가오는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홀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시간이 되면, 잠시라도 만날 수는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여행도 며칠 전에 계획된 것이기에 갑작스러운 제안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그 기간은 대학의 시험 기간이라고 들었지만, 혹시 바쁘시다면 다음 기회라도 괜찮습니다.

덧붙여서 대학에 계신다면 제가 대학까지 방문하겠습니다.

시간이 없는 가운데 대단히 송구하지만 검토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으로부터」

M군은 한국으로의 외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여행의 일부에 내가 포함된 것이었다. 아니 “국제선 비행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한국으로 가고 싶다.”라고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한국에서 경험한 추억이 남아있는 듯했다. 가끔 엿보였던 그녀의 담대한 표출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의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 나보다도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편지를 받고서 다시 M군에게 가졌던 다양한 심상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M군,

오랜만입니다. 잘 지냅니까?

실은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총장과 함께 일본의 대학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도쿄에서 머무는 장소는 뉴오타니 호텔입니다.

일본에서 만나도 좋을 듯합니다.

9일 월요일은 바쁘지만 저녁은 시간이 있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화번호는 0000000입니다.

만약 일본에서 만날 수 없다면, 한국에서 13일에는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연락 바랍니다.

가능하면 전화번호를 알려주기 바랍니다.

00으로부터」

나는 화려한 외유가 되었든, 목적이 있는 여행이 되었든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비록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그녀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조우할 수 없다면, 귀국해 그녀가 출발하기 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소통은 묻혀버린 과거의 시간을 되살렸고, 마음을 역류하게 했다.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과 만나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가깝게 느껴지게 했고, 그녀의 존재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선생님,

정말로 반갑습니다. 저는 매우 건강합니다.(^^)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입니까?...

참으로 잘도 엇갈리는군요!!!

13일 저도 김포에서 하네다(羽田)로 가야 합니다만...

대학까지 가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화번호는 00000000000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M으로부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의 스케줄과 나의 스케줄을 바꾸지 않는 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3일 오전 그녀가 하네다로 떠나기 전 시간 이외에는 없었다. 행운과 불운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나에게는 이번의 기회가 행운을 만들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나의 깊은 가슴에 갇혀 겨울잠을 자고 있던 딱딱한 생명이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뛰어나오는 듯했다. 잊었던 추억이 다시 현실로 소환되는 듯했다. 우리는 만남과 두절을 거쳐 다시 접점을 시도하고 있었다. M과 나 사이에는 살아있는 과거가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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