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향기 가득한 하루

by 청사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지루하게 머물던 한기가 자리를 내어주는 시기였다. 가슴에 한 아름 희망을 담아도 죄가 되지 않는 계절이었다. 캠퍼스에 발길이 하나둘 새겨지면 움츠렸던 기지개가 하늘 돋음을 했다. 꽃피는 소리에 눈과 귀가 멀어질 때면 마음에는 봄 향기 가득한 그대가 자리를 틀었다.

나를 유혹하던 꽃은 목련이었다. 마주칠 때면 수줍어하기도 도도하기도 했다. 가슴에 담았던 목련은 언제나 처량하게 왔다가 섬세하고 화려하게 파고들었고, 봄 인사를 매우 강단 있게 하며 단아하게 사라졌다.

평생의 절친으로 동행하고 있는 활짝 핀 목련과 함께 대충 떠오른 느낌으로 M군에게 내 마음의 봄소식을 전했다.

「 <목련>

발가벗은 날개로

엄동설한 나르는 학이 되어

받아 줄 아우성 없어도

하얗게 웃는 네가 좋다

잎과 꽃과 열매라는

통속적 셈법을 버리고

봄처녀 가득 모아

텅 빈 계절을 채우는 네가 좋다

감히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빼어난 오만함으로 가슴마다 찔러도

상처 없는

사랑으로 질주하는 네가 좋다

화려하게 꼬리 치다

머물 줄 모르는 나그네로

봄바람 따라

수줍게 접는 네가 좋다」



봄이 되면 캠퍼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목련은 아주 오래된 봄의 동지였다. 눈길을 외면한 적도, 발길을 거부한 적도 없었다. 풍부한 몸매를 자랑한 적도, 화사한 미소를 잃은 적도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절개도 있었다. 누군가를 닮은 목련에 취하는 이유였다.


「선생님

선생님이 보낸 봄의 사절이 도착했습니다.

멋진 꽃과 글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춥다 춥다 했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봄 향기도 몰려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바쁜 날을 보내겠지요?

아직 온도 차가 심하니 건강 주의하시고

계절의 아름다움 가득 담기를 바라겠습니다.

저의 봄소식을 보냅니다.

M으로부터」



M군은 답장에서 일본의 봄소식으로 벚꽃을 보냈다. 눈가엔 아지랑이 피어나고 벚꽃이 핀 정경이었다. 강가에서 멍 때리다 잠이 들어도 될 것 같은, 꽃길을 걸으며 애매했던 손이라도 잡아도 될 것 같았다. 아마도 도쿄를 버리고 잠시 포근한 고향에 돌아와 숨어있는 그리움을 찍은 듯했다.

봄은 그렇게 왔고, 다시 그렇게 가고 있었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온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고, 부귀영화도 욕망도 부질없고 덧없으니 애타게 매달리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랑도 만남도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다는 핑계로 그 말의 의미를 한 번 뒤집어 생각하고 싶었다. 그 순간을 좀 더 알차고 치밀하게 밀당하고, 후회 없이 밀도 있게 빠져들어 애타는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언제 도망 갈지도 모를 다가온 것들을 소중하게 즐겨야 한다는 초초함 때문이었다.

M군과의 만남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남을 한 올 한 올 만끽하여 가슴 깊숙이 품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만끽’이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이지?”라는 질문이 가슴팍에 박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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