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아름다운 결별

by 청사

아름다운 결별은 있다. 아름다운 결별은 없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결별에는 아픔이나 시원함이 있다. 결별하기 싫어한 사람은 아픔이 있을 것이고, 결별하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시원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새로움이라는 희망이 있다. 따라서 만남과 결별이라는 접점이 있는 철길 위에서 달리고 있기에 감상적인 프레임에 갇힐 필요는 없다.

決別とは

接点において

激しく破れながら芽生える

希望

결별은

접점에서

심하게 찢어지면서 피어나는

희망


결별이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을 도출하지 않으며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변화무쌍한 상황에 직면하기에 모든 결별에서 상처만을 받거나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만을 차지하기 어렵다. 더욱이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사정에 의한 ‘이익적 자아의 분출’이기에 그것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다.

만남이 없는, 상대방이 없는, 상처가 없는 결별은 없다. 거기에는 객관적으로 납득이 가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판단과 편견이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해명이 변명이 되고, 이유가 상처가 되며, 감정이 원한이 되는 성향이 있다.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이익적 자아의 분출’은 분명 만남의 접점을 가르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접점을 가르는 동기

미워할 때

부정적으로 부각될 때

만남이 흔들릴 때

의심이 들 때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귀찮아질 때

기다리고 싶지 않을 때

하찮게 보일 때

가치가 사라질 때

미래가 어두울 때

좋아하지 않을 때

......

다양한 동기가 부여되어 결별로 이어지는 현상은 당사자들에게 헌 만남을 뒤로하고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결별에는 불안전한 상황을 촉발시키는 결말이 왕왕 발생한다. 그래서 함부로 만나지 않아야 하고, 키우는 과정은 신중해야 하며, 더더욱 결별은 더 잘해야 하는 이유이다.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결별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서툴고 익숙하지 않다. 고심을 하고, 아파하며 치유하는 과정이 동반된다. 결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잡음이 없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별이 없는 만남은 있을 수 있을까?

결별기술은 있을까?

결별로 인하여 발생될 수 있는 불편함이나 위기를 최소화하는 데 결별기술이 필요하다. 결별은 좋지 않을 결과를 내기에 충분한 감정 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파탄을 가져오거나, 상대방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이성보다 감정에 기반해서 응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결별하는 기술에 흥미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은 겉으로 드러내거나 나대는 방식보다는 절제된 방식으로 언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이 결별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비용이나 무고한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그들이 결별하려는 동기는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자신이 만날 기분이 들지 않을 때’ 결별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별하는 장소는 ‘주위에 사람이 있는 곳’을 선택하고 결별하는 시간은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결별하는 방식은 ‘자연적으로 소멸되도록 유도한다(28.5%),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24.6%), 결별 시 음신불통으로 돌린다(23.8%), 이유를 말하지 않고 결별한다.(20.5%), LINE 또는 메일로 결별한다(13.3%)’ 등을 선택했다.

결별을 매듭짓는 말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헤어지고 싶다. 지금까지 감사했다.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지자’라는 언어를 선택했다. 동시에 결별로 발생할 수 있는 응징방지언어로는 ‘결별 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좀 더 소중하게 해줬었으면 했다. 슬픔을 준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결별 시 주의할 점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次に好きな人ができた)’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교제 중에 바람을 피운 것이 되어 상처주기 싶고, 또한 다른 사람과 결별하면 돌아온다고 미련을 갖거나,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해 스토크(stalk)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별 시에는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미련이 남는 말을 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음신불통을 하지 않으며,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부연 설명하고, 다시 만나지 않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은 결별파티를 한다거나, 이혼식을 한다거나, 사용한 밥그릇이나 살림도구를 같이 깨거나 하는 방식의 의식을 한다고 들었다. 현실적으로 결별을 하는데 의식을 갖추어해야 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런 결별방식은 서로가 상처와 충격을 완화시키고, 매듭을 짓는 것이기에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만남은 결별과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이유는 결별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크게 능가하는 긍정적인 희망이 있고, 더욱이 불가능한 마법을 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생산적이며 서정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접점을 이어가는 동기

좋아하게 될 때

긍정적일 때

교감이 될 때

만나고 싶을 때

믿음이 생길 때

즐거울 때

크게 볼일 때

가치가 커질 때

기대가 있을 때

미래가 밝을 때

........


만남은 결별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안고 있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인가를 실현하는 기점과 기회가 되며, 우리를 살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만약 지금 당장 만남이 없는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본인이 접점을 이어가는 동기는 ‘상대방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33.4%), 오랜 기간 사귀었기 때문(14.4%), 상대방이 친절해서(12.5%),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싶지 않아(12.3%), (자신이 바람피워본 결과) 실제로 지금 상대방이 좋기에(8.6%) 등으로 나타났다.

나는 종종 M군과의 결별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결별하는데 필요한 ‘접점을 가르는 동기’ 중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온통 ‘접점을 이어가는 동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별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어떤 동기와 수단과 언어를 통해서 아름다운 결별을 가져오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도 실행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 순간에도 접점을 가르는 동기의 폭을 넓히거나 접점을 이어가는 동기를 삭제하는데 망설이고 있다. 아마도 아름다운 결별이 아니라 결별이 없는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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