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반대는 전쟁이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이다. 전쟁하는 명분은 평화이다. 평화를 찾기 위한 명분도 전쟁이다. 전쟁과 평화는 애당초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그렇게 반대편에 있어 애당초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평화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존재할 필요는 없다.
「선생님께
방금 나리타(成田)에 도착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테러 현장에 있던
저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공포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함께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간절하게 느꼈습니다.
위기가 닥치는 순간
2년 동안 뵙지 못한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 듯합니다.
다음을 위해 사뿐히 뛰어내리는 꽃잎을 보며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항상 긍정적 마인드로 매사에 적응했던 M군이 그렇게 당황하고 긴장한 모습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사후처리에 불과한 것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잠시 좌절을 했다.
공포에 휩싸인 M군을 생각하며 브뤼셀 테러에 대해서 급하게 찾아봤다. 자벤텀 공항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고, 그리고 약 1시간 뒤 브뤼셀 메트로 말베이크 역(Station Maalbeek)과 슈만역 등에서도 폭발이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M군에게
보내준 충격적인 메시지가
무사하다는 소식이었기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뤼셀 테러를 보면서
공포에 휩싸여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군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절여 오는 듯 전율을 느꼈습니다.
‘생사를 우연에 맡겨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저렴한 위로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만나야 한다는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어김없이 돌아가는 사계의 흐름을 시샘하고 있습니다.
부러워하다 하얀 수염이 날까 두렵습니다.
꽃잎이 내어준 자리가 크게 보입니다. 」
세계 곳곳에서 마음을 뭉개는 예기치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테러(terror) 또는 테러리즘(terrorism)이 만들어 내는 불안하고 참혹한 세상이다. 테러는 프랑스어 terreur가 어원으로 ‘거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라틴어 terror에서 유래한 언어이다. 이 라틴어는 ‘겁을 주다’는 동사 terrere에서 파생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힘을 대중의 공포(terreur)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반대하는 대중의 복종과 추종을 끌어내기 위해 폭력적 행위로 공포심을 유발했던 것이다. 권력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과 대중의 공포심을 이용했다.
이후에는 체제에 반대하는 반체제 측이 폭력적 무기를 이용하여 투쟁하는 행위를 테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과거의 테러는 한정된 영토 안에서 일어났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 분쟁이 있는 모든 지역이 테러 발원지로 노출되었다. 동시에 테러는 구제가 아니라 파괴라는 혐오 행위로 낙인찍혔다.
<UN안보리결의 1373호>에서 테러리즘은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373)는 “민간인을 상대로 하여 사망 혹은 중상을 입히거나 인질로 잡는 등의 위해를 가하여 대중 혹은 어떤 집단의 사람 혹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어떤 사람, 대중, 정부, 국제 조직 등으로 하여금 특정 행위를 강요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테러에는 극우사상에 기초한 극우테러 또는 백색테러, 공산주의에 기초한 극좌테러 또는 적색테러, 무정부주의테러 또는 흑색테러, 극단적 환경운동으로 인한 에코파시즘 테러 또는 녹색테러, 특정 인종, 성별, 국적에 기초한 인종테러, 그리고 불특정다수에 대한 묻지 마 테러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 정당한 테러는 있을까? 정의로운 폭력이나 살생은 있을까? 자의적이며 일방적인 명분을 주장하는 테러는 있을지 몰라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테러는 평화를 깨는 범죄행위일 뿐 정당화될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새나 에누리도 없다.
테러의 공통점은 자의적 명분, 무자비한 폭력, 잔인한 상처를 내며 공포를 조장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파괴적 행위로 항상 비극적인 결말을 낳는다. 더욱이 회복할 수 없는 말살과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 평화의 반대편에 있는 괴물에 불과하다.
나는 간접적인 테러를 경험하면서 너무 쉽게 위험에 처하는 생명과 지척에서 서성이고 있는 죽음으로 착색된 현실의 무게를 느꼈다. 전쟁 같은 테러로 산산조각 나는 너덜너덜 평화라 하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제야 비로소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M군을 보면서 ‘소중하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