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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On Time』

by 청사

결혼은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 꾀는 즐겁고도 두려운 여행이다. M군의 결혼은 서로 다른 여행을 하는 새로운 길이었고 헤어짐의 정점이었다. 결혼과 헤어짐은 그렇게 한 선에 있었던 근본을 흔들어 놓는 것이었기에 낭만과 절망으로 갈라졌고, 논리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어야 맞는 것이었다.

많은 흔적들이 획일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정리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헤어지기 위한 선물의식이 끝나면서 그것이 마지막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리의 시작에 불과했다. 개념적으로 정리되고 있었지만, 신체에 녹아든 감정을 씻어내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했다.

격정적인 감정이 타오르는 지점에서 오랜만에 눈을 감고 잠시 회상에 빠졌다. 이 또한 홀로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겠는가? 아무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된 상황에서 작동하지 못하게 도덕론을 뭉개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또한 이 순간에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갑자기 리처드 커티스(Richard Curtis) 감독의 『About Time』(2013)이 뇌리를 스쳐갔다. 주인공 팀 레이크는 자신이 21세가 되면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기억하는 시절의 그 상황으로만 이동가능하지만 미래로 갈 수는 없다. 팀 레이크는 과거로 되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만약 내가 팀 레이크처럼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공항으로 배웅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했던 “제 마음은 당장 프러포즈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머님 말씀대로 따님과 저는 세대가 다르기에 프러포즈를 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었을까를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저는 따님을 사랑하기에 당장 프러포즈를 하겠습니다. 어머님 말씀대로 따님과 저는 세대가 다르지만 세대보다 더 길게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면 헤어지기에 딱 좋은 선물 대신에 결혼하기에 딱 좋은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었더라면 나의 삶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잘 돌아가 고장 나지 않은 『On Time』의 시계가 되지 않았을까? 눈을 뜨는 순간 보기 좋게 현실을 깨우치게 하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편지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최후의 통첩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께

결혼식에 초대하려 했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불어오는 실바람이

가슴 한구석에 머물곤 합니다.

아마도 추억이라는 사진첩이 부리는 마술인듯합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한 채

결혼사진을 동봉합니다. 」


결혼식에 오라는 초대장이 아니라 이미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서운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결혼사진에는 환하게 웃는 신부와 신랑의 모습이 하얗게 들어왔다. 그리고 피로연 사진에는 선물로 보내준 진주 귀걸이를 한 모습도 있었다. 하얗게 시작해서 빨갛게 뜨거워진 얼굴을 감싸며 ‘지금까지 그녀를 잡아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회상에 잠겼다.


「M군에게

참석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요.

지금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한 채

사진 속 누군가에게 눈을 떼지 못합니다.」


M군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하나가 둘이 되어 가는 길은 신이 점지해 준 세계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사랑도 있고, 정도 있고, 네발도 있고, 서로 마주 보는 사람도 있으면서도 질투하는 화신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래서 둘이 가는 길이 하나로 가는 것보다 엄중하게 좋은지도 모른다.

나처럼 하나로 가는 길은 인간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사랑도, 정도, 서로 보는 사람도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행방된 혼자이기에 신이 준 세계에 들어가서도 기웃거려서도 안된다. 오로지 부러워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허용되기에 외로운 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감정을 쏙 뺀 건조한 말투의 편지를 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감탄할만한 정의론에 빠졌다. 더욱이 약간의 감정도 실어서는 안 된다는 어둠 속에서 새까만 보석을 찾는 헛발질을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쓰고는 있지만 알맹이만 덩그러니 남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만 쌓였다.

감정이 들어가는, 때로는 감정이 빠지는 편지를 쓰는 사이에 우리들이 설정한 ‘금요일의 대화’도 날아가 버렸다. 칠 년 간의 인연은 현재에도 진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도 없는, 오로지 과거이어야만 성립되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박제되었다. 아마도 흘러가는 시간에도 오로지 그 모습으로 있는 화석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이 될 수 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당분간 그런 상반된 프레임에 갇혀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의 행복이 다른 쪽의 불행을 상쇄시키는 신의 세계가 아니기에 나는 매우 불리한 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순간 한쪽의 행복이 뒤틀려 다른 쪽의 행복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나는 가고 싶은 길을 위해 임시 정류장에 서있다. 미래와 희망이 추억에 눌리고 있기에 아주 잠깐 멈추고 있다. 과거의 나가 현실의 나를 잡고 미래의 나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부전현상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시간과 때를 놓치지 않고 프러포즈와 사랑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의 미래 『On Time』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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