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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헤어지기에 딱 좋은 선물

by 청사

헤어질 때 어떤 말을 하는가? 성격이 맞지 않아,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어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등과 같은 상대방과 멀어지려는 상반적 구술은 실체적 헤어짐이라는 결말을 도출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커다란 벽처럼 보이는 ‘세대가 다르다’라는 언설이 결정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인 견지에서 내 방식대로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단절된 인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해주고 매듭을 짓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었다.

헤어지기에 딱 좋은 곳이 공항이었듯이 헤어지기에 딱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결혼을 앞둔 M군에게 마음 편하게 걸어가는데 잘 어울리는 선물을 고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평소에 선물(膳物)은 ‘기쁨을 담아 줌으로써 생명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선물의 선택과 의미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주는 선물에 담긴 ‘기쁨’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결혼을 축하하는 하객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지, 그동안의 만남에 대한 의리라고 해야 할지, 때때로 동일감정을 가진 동지애라고 해야 할지,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대가라고 해야 할지 등 잘 모르지만 그동안의 여정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M군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다른 길이라고 해도

평행선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여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라비아의 전설에 의하면, 달빛을 가득히 머금은 이슬방울이 바다에 떨어진 것을 굴이 삼켜 진주가 생겨났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서는 달이 흘린 눈물방울이 비가 되어 떨어져 조개의 심장으로 들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진주는 모든 사물이 생성되는 과정과 관계를 상징하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가 벌거벗은 상태로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목에 진주를 걸고 있었다고 전한다. 페르시아인들은 폭풍 후 무지개가 진주를 만들었으며, 고대 중국에서 검은 진주는 용의 머릿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믿는다.

로마 시대 권력자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가 자신의 적을 도와준 일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 이집트를 방문한다. 클레오파트라는 그것을 해명하고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돌릴 방법으로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유일한 진주 귀걸이를 이용할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성대한 연회 중에 시종에게 식초를 담은 술잔을 가져오게 하여 진주 귀걸이 한쪽을 담근다. 술잔에 들어간 진주가 녹아버리자 클레오파트라는 진주가 녹은 식초를 마셔버리고 귀걸이 한쪽을 다시 술잔에 담그려 하자 안토니우스는 만류한다.

안토니우스는 진주의 귀함과 클레오파트라의 대범함에 자신의 항의를 철회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진주 귀걸이 한쪽은 살아남게 된다. 그 진주는 전리품으로 로마로 옮겨진 뒤 파티온 신전의 비너스상 귀걸이가 되었다고 한다.

힌두교 신화에서 진주는 사랑과 순결의 상징이었으며, 신비한 힘을 소유한 크리슈나(Krishna)가 처음으로 진주를 발견하여 딸이 결혼할 때 선물했다고 전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코란은 진주를 천국에서 발견된 큰 보상 중 하나로 완벽함을 상징했다. 기독교에서는 사랑과 다산, 순결을 상징하여 종종 신부 및 결혼식과 관련된다.

우주에서 진주는 쌍둥이 별자리의 탄생석이다. 현대인에게 진주는 사랑, 부, 행복, 미, 매력, 순수, 순결, 건강, 장수, 성공 등을 뜻한다. 결혼과 관련해서 진주는 부부의 행복한 생활을 보호하고 지키며, 진주를 착용한 사람은 재물이 흘러들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듯이 행운과 관련되어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아라비아전설, 그리스 신화, 로마 시대, 인도, 고대 중국, 기독교, 우주원리 그리고 현대에서 진주가 상징하는 뜻은 하나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또한 그녀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과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도 잘 어울리고, 나의 바람을 가장 가치 있게 담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때가 묻거나 거짓이 붙을 수 없는 새하얀 진주 귀걸이 한 쌍을 골랐다. 자기 길을 가는데 여운을 남기지 않고, 미래를 향해서 잘 달려가며, 그대로의 영롱한 빛과 색을 잃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만큼은 속물근성에서 벗어나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나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했던, 사랑을 과감하게 키웠던, 세상의 논리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했던, 어머니의 바람을 용기 있게 수용했던, 그리고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말끔하게 안고 가는 담대함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고른 진주가 그녀에게 어울리는 이유였다.

「선생님께

아름답게

걸어가겠습니다. 」


진주는 안토니우스에게 사랑을 싹트게 했으며, 시집가는 딸에게는 축복을 낳고, 인간의 삶에서 많은 행운을 만들었지만, 나에게는 억울하지 않은 사랑의 마침표로 작용했다. M군에게는 새로운 사랑의 싹을 키워가는데 딱 어울리는 선물이었고, 나에게는 헤어지기에 딱 좋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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