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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단 한번의 프러포즈

by 청사

공항은 이별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M군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생각한 만큼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공항에서의 배웅이 소리 없이도 감염되는 이별이라는 증상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진짜 이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라는 의구심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납게 아프다고 멈추려는 숨소리의 고동이 힘겹게 꼬꾸라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별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마음에는 이미 포기라는 고딕체가 점점 크게 다가와 더욱 깊숙하게 새겨져 굳은살이 되고 있었다.

구름이 낀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한여름 계란 만한 우박이 쏟아지는 것처럼, 한겨울 찬바람에 흔들리는 마지막 잎새처럼, 성장기 아이의 이빨이 빠진 것처럼 우리 관계는 매우 소원해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 상황에 빠졌다. 이후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갔고 고장 난 시계처럼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유일한 소통수단인 관성적인 마음마저 간헐적으로 폐기되는 상황이었고, 무기력해지며 흔적이 사라졌다. 언젠가 가공될 것으로 생각하고 방치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너트려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파괴론이 앞섰다. 매듭이 굵게 엮어지고 있는 어느 날 그녀로부터 편지가 왔다.


「선생님께

망설이다 연락을 드립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오늘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효라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였습니다.

삶에

다가온 숙명이라고 인식했습니다. 」


M군의 프러포즈 소식이 갑자기 푸른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우박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내가 질렀던 “don’t go”는 “bye bye”라는 메아리로 반향 해 다시 올 것이라는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과 그녀의 바람이 멋지게 어그러지고, 희망과 절망이 보기 좋게 만나는 순간이었다.

남녀 간의 프러포즈(propose)는 청혼(請婚)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상대에게 결혼을 청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만남을 마지막으로 매듭짓는 가장 중요하고 숭고한 의식이다. 수용을 하면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깨지거나 갈라지게 된다. 프러포즈가 창조해 내는 삶의 미학이다.

프러포즈는 누군가에게 선(善)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악(惡)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사랑과 배반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프러포즈를 한다. 그것의 최상은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많이 해도 되는 것인지 정해진 답은 없다.

나는 편지를 보면서 빠진 이빨 자리를 채우는 무의식적 의무감으로 편지를 썼다. 더욱이 뒷모습으로 서있는 비굴함을 숨기고, 가는 모습으로 초연하게 보내줘야 하는 허세도 작용했다. 그것은 마치 낮과 밤, 남과 여, 질문과 대답, 오는 것과 가는 것,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 땅과 바다 등이 서로를 헐뜯는 패착을 숨기기 위한 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M군에게

결혼을 축하합니다.

삶과 인생은 시작이 있어야 나갈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큰 호흡을 하며

이제 자유로 향하는 자신과 타협을 해보려고 합니다.

내려놓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려놓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모든 것들이 축복이고 사랑이기를 바라겠습니다. 」

일본영화 미츠노 미치오(光野道夫) 감독의 <101번째 프러포즈> (101回目のプロポーズ)가 떠올랐다. 아주 평범한 중년 남자 호시노 타츠로(星野達郞)는 99번의 중매에 실패하고, 100번째 선에서 기분전환을 위해 나온 미모의 첼리스트 야부키 카오루(矢吹薫)를 만나게 된다. 카오루는 교통사고로 연인을 잃어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인연을 이어가는 도중 트럭에 치일 뻔한 타츠로는 카오루에게 ‘나는 죽지 않습니다!(僕は死にません!)라고 울부짖는다. 지금 및 미래의 자신과 카오루에게 던지는 결기였다. 그러나 타츠로는 자신의 처지가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힘겹다는 것을 느끼며 실망과 희망이라는 곡예를 탄다.

어느 날 타츠로는 동생에게 “나는 다시 태어나면 이런 얼굴이 아니라, 스타일도 이런 모습이 아니라, 길을 걸을 때 여자와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도 척척 잘하고 돈도 있는 즉 지금의 내가 아닌 나로 꼭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호시노 타츠로로 다시 태어나도 좋다고 생각해. 카오루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도 좋아하게 됐어. 이상 중년의 주장”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M군과 나는 젊은 야부 카오루와 중년 호시노 타츠로로 오버랩되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타츠로가 지금의 자신을 좋아하듯이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가? 타츠로는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나는 그럴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츠로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프러프즈를 하지 못한 보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만만치 않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했으며, 일편단심으로 집나갔던 영혼을 되찾았고, 젊은 사랑은 뿌연 안개와 같았을 뿐이라는 ‘주장’을 통해서, 더 이상 M군과 비교되는 중년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비친 중년이 아니라 각색되지 않은 중년이라는 이상한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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