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runch Talking 9 : 아파트

by 청사

우리 아파트에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아름들이 몸짓으로 버티고 있다. 말없이 시간의 흐름을 나뭇잎으로 늘리고 있다. 바람이 불면 안 가겠다고 흔들고, 비가 오면 옳다고 눈물을 흘린다. 언제나 부동의 자세와 풍성함으로 꽃핌을 대신한다.

벌거벗은 차림새로 숨어 살다 겨울밤의 설움을 떨치고 봄 전령으로 야하게 몸치장한 잔치를 벌이는 스물두 그루 벚꽃나무는 덧셈 정치를 하는 유연함을 갖고 있다. 한 번쯤은 떨어진 채 거를 만도 한데 어김없이 계절의 언약을 꽃 마음으로 지키고 있다.

시끄러운 세상이 몰려와도 흔들림이 없는 열두 그루 소나무는 창창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틀고 있다. 푸르다고 나대는 이에 대해서 ‘푸르지 않은 것은 푸르라’라는 엄포로, ‘변하는 것은 끝까지 남아라’라는 언설로 푸르른 것과 푸르고 싶은 것이 닮아가기를 항상 노래하고 있다.

자주 보는 것보다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에 인생을 건 열한 그루 단풍나무, 쑥스러워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정원수, 따끔한 충고로 엮어낸 넝쿨 장미, 필 때마다 봐달라고 고개를 들이대는 철쭉, 어두운 이나 밝은 이를 가리지 않고 밟아달라는 잔디 등은 한여름의 분수처럼 처지를 알며 살아간다.


이 조합을 통채로 지배하는 것은 출신도 모르고, 어디에서 날아와 언제부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큰 목청을 가진 다섯 마리의 까치다. 가끔 까악 까악 내는 소리는 풍악인지, 경고인지, 교태인지 알 수 없지만 날림으로 텃세를 부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만드는 비좁은 삶의 향연을 두 눈으로 꼭꼭 챙기고 있는 존재가 바로 유일하게 돈을 내고 사는 나다. 문명의 덕으로 아파트 십 층에 살고 있어 그들보다 자연적 신분이 한층 높다.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차이와 다름을 만끽하고 있으나 내가 보는 이곳은 이름이 다를 뿐 신분의 차이가 없는 세상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나를 제외하면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사이좋은 이웃이 살고 있다. 언제까지 동행한다는 기약이나 언제 떠날 것이라는 알림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철든 암묵의 믿음이 있다. 아마도 어우러져 있는 이곳이 내가 남아 살아가고 싶은 보금자리인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Brunch Talking 8 : 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