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개띠, 돼지띠, 닭띠, 소띠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 울타리에서 먹이를 나누어 먹는 사이다. 아이들이 성장했어도 여전히 가족단위로 움직이고 있다. 여행은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찾는 여정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여행이 중지되어 알맹이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결혼을 앞둔 큰딸과 함께 일본으로의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기획력이 좋은 작은 딸이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모처럼 설레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정을 주문했다. 나는 여행지의 중심사회와 홋카이도 대학을 보고 싶었고, 밥알이 살아있는 회전 스시(寿司)를 주문했다. 아내는 한번 가고 싶었던 곳에서 타인이 해주는 요리를 먹고 다니는 여유로움을 원했다. 큰 딸은 마음 편하게 이곳저곳 가고 싶은 데 가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었고, 작은 딸은 일본 전통여관의 정취와 정통 일본식 이자카야(居酒屋)를 방문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소원은 바라는 것이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소원은 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의지대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실행단계에서 갑자기 소원을 한꺼번에 아작 내는 일본으로부터 소식이 날아들었다. 백 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난카이(南海) 지진 경계주의보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살던 시절에도 느끼지 못했던 위협과 위기가 몰려왔다. ‘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가야 하는 당위성은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즐겼던 호캉스대신에 해외여행으로 딸과의 추억 만들기와 알맹이를 찾는 데 있었다. 포기해야 하는 이유로는 일본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진발생주의보를 내렸기에, 잘못했다간 지진에 온 가족이 휩쓸릴 수 있는 우려가 있었다.
일본정부는 1주일간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후 주의보를 해제할 것인지 아니면 지속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아마도 여행지가 도쿄 등 지진피해범위에 들어있는 남서중부지역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취소했을 것이다. 큰 딸과의 여행이라는 의미와 멀리 떨어진 홋카이도라는 생각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리 예약했던 사안들에 대한 위약금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하늘과의 싸움이 돈과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백 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이 앞으로 30년 안에 발생할 확률이 70-80%라는 숫자로 공표되면서 과학적인 설득력이 있는 듯한 정보는 실제로 가야 한다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기준이 되지 못했고 막연하고 모호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30년 이내에 일본을 방문하려면 언제나 그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진을 피하기 위해서는 30년 안에 일본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내 나이를 감안하면 아마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본에 갈 수 없다는 논리였다.
아내는 일본에서 살았기에 다른 곳이라면 가고 싶지 않지만 가보지 않은 홋카이도(北海道)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후 일본을 방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시 반복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아마도 가족여행에 위협이 따른다고 해도 모처럼의 계획이기에 이번만은 강행했으면 하는 노골적인 압력이었다.
그리고 기획을 했던 작은 딸과 큰 딸은 “그런 확률인데 혹시 이번 일본에 가는 과정에서 직면한다면 그것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는 “일본정부의 주의보 해제와는 관계없이 출발 전에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거나 지진의 전조현상이 위험수위에 도달되지 않는 한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아내와 딸들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나의 결정만이 남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명분은 모든 가족이 가야 한다는 주장에 먹히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가든 가지 않든 가족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가야 한다는 결론에 대해서 번복할 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다만 가더라도 만약을 위해서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하는 문제에 돌입했다. 현재 홋카이도 사정과 머물 예정인 여관이나 호텔에 전화해서 사정을 들었다. 그들도 명확하게 대안이나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출발일이 가까워지고 일본 정부의 발표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하나 둘 슈트케이스가 거실에 등장했다. 가족여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출발 전까지 아니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까지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홋카이도로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