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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May 12. 2020

쇼핑, 그 완전한 취미를 위한 변론

 -쇼핑 어디서 하세요? 옷은 어디서 사시나요?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집이 어디냐는 질문보다 자주 받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혹자는 이 질문을 받는 이가 당연히 취향불문 센스를 갖춘 이 구역의 패셔니스타일 것으로 예상하겠지만, 정작 내가 이 물음을 해석하는 방향은 조금 다르다. 괄호 열고 ‘그렇게 아무도 안 사고 어디에서도 안 팔 것 같은’ 괄호 닫고, 옷을 ‘당최’ 어디서 찾았는지를 묻는 연유가 기실 대다수다. 갖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도 눈에 띄게 특이한 것을 걸치고 나왔을 때 듣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아무래도 그런 날이 빈번하다는 뜻일 테고, 이는 패션 ‘센스’보다는 ‘용기’에 대한 칭송으로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 이 용기를 나는 고3때부터 여생 동안 마음껏 발산하리라 다짐해왔다.



 다시 돌아가 옷을 어디서 사냐는 물음에 대한 내 답은, 진심을 담아 ‘도처(到處)’다. 가까이는 2~3만원대의 수입 원피스들을 언제고 득템할 수 있는 동네 단골 빈티지샵 ‘혜화동옷집’에서도 사고, 30대의 문턱을 지나면서 서서히 졸업한 스타*난다나 무*사, 여전히 즐겨찾기 상위권인 29*m나 W*셉 같이 대기업(!)이 마련해준 웰-큐레이티드 플랫폼에서도 사고, 낯선 곳을 지나다 길거리에서도 사고, 코카서스 산맥으로 휴가 가서 조지아 트빌리시 마을 장터에서도 산다. 아, 자* 같은 SPA 브랜드에선 혹시나 같은 옷 입은 사람 만날까봐 눈물을 머금고 그 시즌에서 미는 간판 상품들은 장바구니에서 내려놓는다. 이렇게 패션에 있어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성역 없는 구매만이 ‘득템’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도, 반드시 지키는 철칙 같은 게 몇 가지 있다. 미리 밝히지만 참고하기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TMI’들이다.



 첫째, 온라인 구매 시 실측 사이즈를 확인하지 않는다. 매장에서 살 때도 청바지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피팅룸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소 변태적인 심리 제압이기도 한데, 평소 게을러서 체중 변화 체크를 전혀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일반적인 대한민국 여성 의류에서 ‘M(Medium)’ 사이즈 맞는 몸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자기관리 바로미터다. 우리 사회는 어째서 여성에게 다양한 형태의 몸을 허용하지 않는지, 플러스사이즈가 되면 왜 안 되는지 등에 대한 가치 판단을 잠시 외면하면, 이는 내 사회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일상 규칙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실측과 피팅 없이 구매하는 눈이 정교화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체형의 장단점을 잘 반영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것도 핵심이다.



 둘째, 신발은 비싼 것, 가방은 싼 것을 산다.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인데, 발이 편해야 삶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구두는 비싼 구두가 안전하고 운동화도 비싼 운동화가 더 편하다. 누구나 한번에 알아보는 명품백에 비해 신발은 값 나가는 것을 신어도 브랜드가 한눈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도 내겐 은근 묘미다. 돈을 꽤 투자하고라도 내 맘에 쏙 드는 기본템 신발을 몇 개 구비해 놓고 나면 나머지 코디가 용이해지기도 한다. 반면 가방은 그 역할이 조금 다르다. 값비싼 것을 들면 그 가방의 존재감이 나머지 아웃핏을 전부 블랙홀처럼 흡수해버린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명품백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가질 수 있는 벌이가 되지 않고서야, 에코백처럼 내 정치성이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때로는 코디의 포인트가, 때로는 다른 아웃핏을 살려주는 엑스트라가 되어주는 싼 가방이 좋다.



 셋째, 귀걸이와 선글라스는 무조건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의 차이가 큰 것으로만 산다. 착용 후의 변신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을 높이 산다. 아무래도 의류보다 구매의 빈도가 적은 액세서리류이므로 쇼핑 당시의 실시간 기분전환 효과가 특히 중요하다. 미용실 가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행위와 치환된달까. 디자인이 볼드하거나 소재가 특이해서 내 인상을 확 바꾸는 귀걸이와 선글라스들은 단연코 올타임 ‘어머 이건 사야 해’다. 귀걸이야 그렇다 치지만 선글라스는 트렌드에 민감한 아이템인데 너무 실험적이거나 프레젠스가 강한 것을 골랐다가 유행 지나면 어떡하냐고? 태극기집회 노부인들의 잠자리 선글라스도 언젠가는 유행이 돌아오고, 반대로 존재감 없는 얌전한 것을 사도 시간 지나면 어차피 촌스러워 보인다. 선글라스는 내게 철저히 소모품이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인 ‘내 옷장’ 쇼핑이 필요하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내일 뭐 입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숙명에, 내가 가진 모든 옷들을 그 때 그 때 잘 활용해 믹스매치하기 위해서는 재고 파악이 필수다. 특히, 분명 옷장은 꽉 차있는데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바로 옷장 쇼핑의 적기다. 또 사고 싶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 집안에 이미 대체 가능한 아이템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불필요한 지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옷장 쇼핑은 스마트한 바깥 쇼핑을 위한 준비 단계다. 첨언하면 바깥 쇼핑 10번에 옷장 쇼핑 1번 정도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구구절절 규칙이라고 명명하며 나열하자니 이 취미 생활을 타자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서운할 만큼 쇼핑은 그저 즐거움이자 내 자신 그 자체다. 탈코르셋 운동 진영을 향해 늘 부채감을 안고 살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멋진 것들을 사는 행위와 그것을 통한 자기 표현이 가져다주는 행복만은 아직까지 온전히 내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역시 오늘 밤도 옷장 쇼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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