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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Feb 23. 2024

나는 꽃에게 신이 되고 싶다

- 돌멩이를 치워주랴? 흙덩이를 치워주랴?

며칠간 이 동네 날씨는 매일 비가 내렸다.

서울, 강원도엔 눈이 왔다는데 남녘의 봄은 찹찹하게 땅을 적시는 비를 타고 왔다.

이런 계절엔 흙의 표면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그냥 보면 그냥 흙이다.

그런데 허리를 숙이거나, 아예 쪼그려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흙속에서 흙이 아닌 것들을 볼 수가 있다.


앳되지만 강한 것, 끝이 뾰족하고 단단한 것들이 땅을 갈라놓고 쏙-하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또는,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볼쏙하니 흙을 밀어 올리고, 운기조식하면서 바짝 웅크리고 있는, 그것들의 분기탱천한 옆구리를 미리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 기도를 한다.

여행지에서 성당에 갔을 때, 산행 중 돌탑에, 유적지 탐방 중에 절에 가서도 시주를 하고 기도를 한다.


우선 건축물을 문화적 자원으로써 유지보수하는데 대한 감사, 감상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먼저 한다. 그러고 나서 온 세상의 영혼과 생명에게 안녕과 평화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해서 나와 맺어진 인연들이 선한 의지로써 당면한 과제를 꼭 이루기를 염원하며 기도를 마친다.


나의 기도는 거시적 위선으로 시작해서 미시적 욕망으로 끝나는 발칙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곳의 신께서 노하시지나 않을까 때로는 염려가 된다. 

내가 하는 짓이 사이비 같기는 해도, 골고루 빠진데 없이 외우려고 집중해서 기도를 하기 때문에 동행하는 친구가 자신의 기도를 내게 맡길 때도 있다. 진짜로 그랬다!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안타까운 순간에도, 난 나름대로 의식을 수행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가끔 매체를 통해 끔찍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 아스팔트에 부서져 흩어진 작은 동물들의 흔적을 만났을 때가 그렇다.

"영혼이 있다면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짧은 애도의 인사를 낮은 소리로 독백한다.

아무래도 나는 무신론자이면서 범신론자인가?

기도도 곧잘 하고......




나에게는 아끼는 꽃나무들이 있다.

화분에 심어 돌보는 꽃들도 있지만 지인의 마당에 심어놓고 무시로 찾아가 돌보는 큰 꽃나무들도 있다.

얘네들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봄눈을 냈는지, 미리 싹을 내서 얼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수시로 든다.

지인께서도 내 근심을 헤아려, 강추위가 오기 전에 꽃나무에게 덤불을 덮어주고 무성한 가지도 쳐줘가며 그들의 생명을 잘 보살피고 때때로 그들의 안부를 내게 전해주고 있다.

이번 비가 그치면 그 집 마당으로 가서 흙을 한 삽 뒤집고 '흡흡' 땅내를 맡아봐야겠다.


겨우내 땅속에서 살진 풀뿌리 향기가 곧바로 나의 뇌 속까지 퍼질 것이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도파민이다.

새 봄이 왔노라는 통과의례를 그렇게 치르고 싶다.


아직 3월이 오기 전, 눈과 비가 설치고 계절이 순환할 때 나는 어슬렁어슬렁 주변의 땅을 살핀다.

돌멩이, 흙덩이를 이고 꼬부라진 새싹을 찾아내 나의 '신의 한 수(手)'를 기꺼이 내밀고 싶어서 그런다.


걱정 마!

내가 다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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