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그 선배가 나를 울렸지!
스물넷 청춘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어 지방의 대학병원 수술실에 신규간호사로 떨리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내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는데 확실하고 빠른 취업이 급선무라 간호사를 선택했던 아쉬움이 아직까지도 싹 가시지를 않는다.
수술실로 배정을 받은 신규 간호사는, 어느 부서보다도 두렵고 조심스러워 제 몸하나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다, 결국 수술방 한쪽 구석 빈자리를 찾아 선배의 레이저 눈빛이 닿지 않기를 소망하며 조용히 서 있는다. 수술대에서 긴장하고 일하는 선배의 부름을 받아, 소독된 무슨 기구를 찾아오라 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 또 다른 선배를 불러와야만 하고, 다급해서 소리치는 선배의 목소리가 고음으로 갈라지면, 내 뒤통수도 갈라질 듯 아득해졌다. 행여 바삐 오가다가 스크럽(멸균된 수술준비상태)을 마친 의사나 간호사를 닿기라도 하는 날엔 "앗!" 하는 그들의 낮은 외침에 심장이 쫄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열 번이나 죄송하여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신규간호사들의 교육은 선배들의 몫이다. 선배가 낱낱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치껏 보고 듣고 공부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해가며 가장 간단한 수술부터 선배와 짝을 이루어 수술대에 서게 된다. 서서히 독립적으로 수술준비를 하고 수술과정을 안정적으로 서포트하면서 엑설런트 한 간호사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수술실 선배가 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겨우 사람 부딪치지 않고 피해 다닐 줄이나 알만한 참에, 일 잘하는 선배들이 부러워 수술 끝난 방을 찾아다니며 뒷정리를 돕다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땐 유리로 된 석션보틀을 쓰던 시절이었는데 제법 크고 무거운 유리병을 씻다가 장갑에서 미끄러져 와장창 깨 먹은 거다. 난 당황해서 헛손질을 했는지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동기들이 달려와 파편을 치워주고, 마취과 과장은 "몇 바늘 꿰매줘라"며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이제 조용해진 뒤에 수간호사가 들어와 침묵하며 싸늘한 눈빛으로 쓱 둘러보고 나갔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베인 손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서 있던 내 어깨가 따뜻해졌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은 아무 실수도 안 해!"
"너는 뭔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금방 배우겠더라!"
일 년 선배 소간호사가 내 어깨를 감싸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참았던 눈물이 꼭 감은 눈에서 뜨겁게 번져 나왔다.
소선배는 씩씩하고 힘세고 일도 제일 많이 하고 후배들도 잘 가르치고, 체격도 좋고 목소리는 나긋하며 눈매는 장비같이 치켜 올라갔는데 수술실에서 제일 유쾌한 간호사였다. 내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에, 꼭 닮고 싶은 선배한테서 고막이 '딩 -' 울릴 만큼 감동적인 위로의 말을 듣고 보니, 난 다리에 힘이 풀려 차가운 수술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날 소선배의 멘트는 내귀로 들어와 측두엽에 기억회로를 거쳐 대뇌피질 곳곳에 뿌려져서 각인되고, 삼십몇 년이 흐른 지금 까지도 수시로 소환되는 나의 멘트가 되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지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망설이는 어느 정도 늙은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