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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가 있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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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
Apr 29. 2024
외출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제자리에 놓고, 전화기에 충전코드를 꽂아두고,
겉옷을 벗어 걸고, 화장대 앞에서 클렌징 티슈로 얼굴을 닦는다.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침대 끝에 눕혀두고 욕실에 들어선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샤워기헤드를 왼손에 쥐고 세면대도 닦고, 수전도 닦고 그런다.
양치를 하고 난 후에 따뜻한 물로 머리부터 몸을 적시고, 샴푸를 두 번 펌핑해서 머리를 감는다.
샤워기 헤드를 오른손에 쥐고 머리를 헹굴 때 거울을 본다.
거울 속, 약간 무섭기도 한 내 얼굴을 보면서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한다.
"원만구족함이여!
따뜻한 물로 매일 몸을 씻을 수 있는 일상이라니 얼마나 감사한가!"
따뜻한 물로, 스스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은 크게 감사할 일이다.
첫 번째로 감사할 일은 병상에 눕지 않았음이다.
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해봤고, 환자로 입원해 본 적도 있다.
병상에서 위중한 상태만 벗어나면, 누구나
맨 처음
하고 싶은 일이 목욕이다.
보호자들도 본인 씻는 일, 환자 씻기는
일이 고충스러우니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두 번째로 감사한 점은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감사이다.
편히 지낼 집이 있어 감사하고,
안방에 딸린 욕실도 땡큐다.
먹고, 자고, 씻는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내 처지가 다행스럽고 안심이 된다.
우리 집의 거실창 밖으로는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자연경관을 볼 수가 있는데,
오늘은 앞산의 초록숲을 배경으로 흰 왜가리가 날개를 펴고 날으는 풍경을 감상했다.
그 모습을 거실에 앉아 보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요!
나이는 육십이 넘었고, 몸체는 작은, 돌싱 아주머니의 일상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나의 감사가 참 하찮고 소박하다고 여기실 분도 있을 터이다.
그래도 나는 소박한 나의 일상에 깊이 감사하고, 선량한 사람 누구든지 안온한 일상을 향유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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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
뒤돌아 봅니다. 빛나지 않아도 엄연한 나의 역사! 부끄럽지만 보따리를 풀어보자. 차곡차곡 모았다가 가끔 꺼내보려고, 철지난 이야기도 브런치 글창고에 칸칸이 넣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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