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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Aug 08. 2024

복숭아와 할아버지

추억 속 할아버지의 과수원, 물렁 복숭아에서 꿀이 뚝뚝!!



지금은 복숭아의 계절이다.

내가 오가는 길에 복숭아과수원이 줄지어 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주차할 만한 길가에 내려서 복숭아를 파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과수원 주인아주머니께서 복숭아를 무더기, 무더기 놓고 얼마, 얼마 알려주신다.

한쪽에 모아놓고 가격도 안 가르쳐주는 복숭아무더기를 내가 가리켰다.

"이건 얼마예요?"

"아, 이건 너무 익어서 우리가 먹을라고요."


"이거 저 주세요."

"물러서 얼른 먹어야는디?"


"네, 이거 달아요?"

"하나 드셔보셔"


껍데기가 훌렁훌렁 벗겨지는 물렁 복숭아를 호로록호로록 흡입하듯 한 개 뚝딱 해치웠다.

달디단 콧바람에 흠흠거리며 저절로 음흉한 웃음이 나왔다.

2만 원 주고 한 보따리를 뺏어왔다.


천막을 나오는데 싱싱한 옥수수가 눈에 띄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껍질을 벗기는 중이었나 보다.


"옥수수도 팔아요?"

"아녀, 이건 우리 언니가 우리 먹으라고 갖다 준 거요, 못 팔아요."


내가 강도처럼 보였나?

주인아주머니가 옥수수를 안쪽으로 밀쳤다.


냉장고 채소칸에 물렁 복숭아가 그득하다.

부자가 된 것처럼 흐뭇해서 콧노래가 나왔다.

수시로 홀랑 벗겨 먹고, 또 먹고, 꿀물이 저절로 착즙 돼가니 좀 걱정이 됐다.

주말에 아들이 와서 같이 먹고, 나머지는 잼을 만들어서 빵에 얹어 먹는 중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간직한 황도 복숭아에 대한 향기로운 추억이 있다.

외할아버지의 복숭아 과수원에서 얻은 추억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남매를 낳고 남편을 여의었다.

박 씨 할아버지도 딸만 있는데 상처를 했다.

두 분이 재혼을 하셨다.


외할머니는 남매를 데리고 과수원집에 시집가서, 아들을 연거푸 낳아 주고 권세를 얻었다.

박 씨 할아버지는 순둥이 영감이고, 외할머니는 목소리 크고 삿대질 잘하는 여장부였다.


박 씨 할아버지는 말하자면 의붓손주들인 우리들에게 살갑게 잘하셨다.

우린 모두가 싸낙배기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훨씬 더 좋아했다.

철철에 나는 과일들이 우리 차지였고 어린 삼촌들과 우리 언니들은 동무가 되어 함께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 때는

하얀 모시옷이 눈부셨고, 가슴팍까지 하얀 수염을 기르신 모습이 산신령 같기도 했다.

까만 띠가 둘러진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고, 우리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바삐 걸어오시던 박 씨 외할아버지가 오늘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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