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산옥, 기생에서 문인화가로 마친 일생
전주의 옛 도청 앞에 행원이라는 요릿집이 있었다.
행원은 고위직 공무원들과 사업가들이 접대자리로 드나들던 곳이다.
또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교류하던 작은 살롱 같은 곳이었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그 집을 방석집이라고 불렀다.
나도 젊었을 때 그 집을 지나치면서 덩덩거리는 장구소리를 듣곤 했다.
지금도 행원은 그 자리에 있다.
이젠 한옥 찻집으로 변모했고 전주미래유산 18호로 지정되었다.
행원의 전주인이 문인화가 허산옥이다.
허산옥은 남원권번 출신으로 1952년, 그녀 나이 서른 살 때부터 행원을 운영했다.
1924년 일제 강점기 전북 김제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나서 16세에 권번에 입적했다.
그 시절 열여섯 처녀가 시집갈 나이에 권번으로 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한편으론 시서화 가무악등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교육의 기회가 됐을 것도 같다.
권번이 해체되고 자유인으로서 요식업을 하면서도 36세에 <묵국>으로 첫 국전 입선을 하였다.
밤늦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새벽까지 붓을 잡으며 그림공부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선뜻 제자 삼겠다는 스승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아직 반상(班常)을 구분하던 시절인 데다 여자요, 기생출신이라니 더욱 달가워하질 않았나 보다.
공모전의 풍토도 다르지 않아 20년간 출품을 해도 매번 입선이 수상경력의 전부였다고.
어떤 인터뷰에서 허산옥은 첫 입선을 하였을 때 "목숨과도 바꿀 만큼 귀한 상"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자신에게는 그토록이나 감지덕지한 상이었던가 보다.
전란 중에도 전주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는지 전국의 예술인들이 피난지로 머물렀다.
행원은 예인들의 사랑방이라 허산옥도 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남종화가 의제 허백련을 스승 삼기로 마음을 정하고 무작정 무등산으로 찾아갔다.
전통적 화풍을 더욱 연마하고 스승으로부터 남전(藍田)이라는 호를 얻었다.
중국에 청옥이 많이 나는 밭이름이 남전인데 옥과 같이 귀하게 인생의 결실을 맺으라며 지어준 호라고 한다.
허산옥이 남전이라는 아호를 받고 얼마나 기쁘고 소중하고 자랑스러웠을까?
본명은 허귀녀, 기명은 허산옥, 당호는 행원, 드디어 예술가의 이름 남전을 얻었으니......
문인화의 고아한 화풍으로 시작된 허산옥의 그림은 점차 색채를 얻었다.
50대 이후 작품은 장미, 목련, 등나무, 모란등 화려한 소재로 확장되고 짙은 정서가 깃들어졌다.
당혹스러울 만큼 과감한 색채에서는 자주성을 주장하는 듯한 작가의 결기가 엿보인다.
자신감의 표현일까?
원숙미의 발현일까?
허산옥은 요식업으로 번 돈을 보람되게 썼다.
지역의 예술인들과 인재들을 후원하는데 앞장서 독지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전주시 문화장, 전라북도 문화상을 받았다.
개인전, 교류전, 초대전, 해외전시등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70세를 맞아 고희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 타개했다.
이번 전북도립미술관의 허산옥 전시는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의 다섯 번째 전시다.
남전 허산옥이 이루지 못한 고희전 대신 백년전이 열린듯,
전시관 흰 벽마다 매란국죽 장미 모란 백화가 가득 피었다.
***성독을 위해 지어 본 4.4조의 가사를 여기에 붙임
<여자 허산옥의 일생>
삭풍불어 매서운날 홀로찾은 미술관에
여류화가 옛그림이 8폭병풍 가득하다
그녀난지 백년만에 기념전이 열렸는데
화폭마다 매란국죽 사군자와 문인화라
담채수묵 맑은화풍 파초잎도 휘어능청
채색화라 고운빛깔 마음깊이 숨긴여심
삼사십대 갈고닦아 오륙십대 능란해도
여자라고 좌시하고 기생출신 멸시받네
일제시대 김제땅에 열남매중 아홉째라
가난부모 슬하에서 입덜고자 헤어졌네
꽃다웁다 열여섯에 혼인식은 고사하고
어미손에 이끌려가 정한곳이 권번이라
기생팔자 왠말인가 서럽고도 기막히다
개화세상 찾아와도 사람대접 받겠는가
예기되자 마음먹고 시서화를 가까이해
권번해체 자유얻어 행원주인 되어놓고
새벽으로 먹갈아서 난초치고 대그릴때
남쪽창엔 여명비쳐 일촌각도 아깝구나
허백련을 스승삼아 그림공부 매진하여
국전입선 되었을때 목숨보다 귀하더라
행원장사 천금벌어 예술가들 후원하고
인재수재 뒷바라지 아낌없이 베풀어도
기생꼬리 어디가리 예술세계 매정하다
심중설움 삭이려고 장미꽃만 붉어지네
칠십기념 개인전을 준비하다 세상하직
부푼마음 끌어안고 다시나소 여자세상
백년기념 개인전을 후세에서 열어주니
생전설움 씻어내고 혼백일랑 기쁘리라
기생이름 허산옥이 호를얻어 남전이라
양반한량 남정네들 떠난곳이 어드메요
모악산에 전북도립 미술관이 번듯하오
허산옥이 남전그림 방방마다 걸렸구려
백년잔치 열렸으니 구름따라 구경오소
노고할매 지킨다오 수작일랑 어림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