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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Sep 20. 2023

영광 불갑산, 연실봉

- 2023. 9. 17 상사화 축제는 덤으로!

지난달에 이사를 하고 나니 산행버스 타는데서 제법 멀어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배낭을 챙기고 차를 몰고 나가, 7시에 시청에서 산행버스에 올랐다.

연일 비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빈좌석이 몇 자리 돼 보인다.

오늘은 친구도 함께 가기로 약속했더니 저기서 옆자리를 비워놓고 나를 반긴다.


추석 전에 상사화가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오늘 산행은 상사화로 유명한 영광 불갑산이다.

엄밀히 따지면 불갑사의 상사화는 꽃무릇이라고 한다.

둘 다 수선화과 여러해살이 알뿌리 식물이라 구분 없이 꽃 색깔로만 표현하기도 하는데 영 틀린 이름은 아닐 성 싶다.


빨간 꽃이 먼저 피고 진 다음에 난초 같은 잎이 나는 것이 꽃무릇.

잎이 먼저 나고 시든 다음에 연한 핑크색 꽃이 피는 것이 상사화.

요즘은 노란 상사화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꽃무릇, 상사화 이 꽃들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애달픈 꽃말인듯하다.


불갑산 꽃무릇





오늘이 올해 불갑사 상사화 축제 첫날이라고 진입로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올해부터 입장료를 받는다고 줄을 세운다. 3000원을 내면 지역상품권으로 환급해 준다.

난 작년에도 이맘때 여기 불갑산에 다녀 갔는데 버스킹 하는 가수나 공연하며 모금하는 남미의 연주팀이 작년과 같은 팀이어서 나 혼자서만 살짝 반가웠다.



자연스럽게 꽃구경, 사람 구경을 하면서 9시 40분에 불갑사 곁으로 등산로 초입에 들어섰다.

비 온 뒤라 온산의 습기가 물컹물컹하고 기온까지 높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온몸을 적시고 눈을 찔렀다.

함께 간 친구의 속도에 맞추느라 후미에서 걷는데 친구의 컨디션이 부진하여 낯빛이 창백하다.


자주 쉬면서, 앞뒤로 회원들이 에스코트해 주고 천천히 차근차근 오르다 보니 능선이 나오고, 호흡도 골라지고 친구도 힘을 내서 걸음을 내디뎠다. 오늘 이 산에 많은 팀들이 산행을 하고 있다. 계절적으로 상사화 철이라 여러 산악회가 불갑산을 선택했나 보다.


불갑사 - 덫고개 - 노적봉 - 투구봉 - 장군봉 - 연실봉(516) - 해불암 - 불갑사


연실봉에 12시쯤 도착했다.

봉우리 인증샷을 찍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전국 100대 명산에 들어 등산객들은 꼭 인증을 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연실봉에는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비고 모두 도시락을 펼치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 도시락을 펴고 앉았다. 친구가 아직 힘들어하므로 신경을 써가며, 여럿이 내놓은 푸짐한 반찬도 나누어 먹고 땡볕아래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밥 먹기 전에는 봉우리 사진줄이 길어서 밥 먹고 찍자고 했는데 밥을 먹고 나니 줄이 더 길어져서 포기하고 하산! 난 작년에 찍어둔 사진이 있어서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볕이 뜨거워서 피하느라고 사진 욕심은 인증필수가 아니면 패스!


하산 길은 질퍽 거리고 미끄러운 물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발끝에 집중하고 무릎이 상하지 않도록 훈이가 사서 보내준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스틱도 적절히 사용하며 묵묵히 발목을 내려 딛고 불갑사로 들어섰다.(오후 1시 40분)


눈길이 가는 곳마다 붉은 꽃이 흐드러지고 카메라만 들이 대면 엽서가 되는 풍경이 피로를 싹 가셔 주기에 충분했다. 종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던 친구도 버스 타러 가는 길이 반가워서 미소를 보여준다.

비 맞을 각오로 나섰던 산행길인데 무덥고 습했지만 비를 안 맞은 게 웬 횡재인가 싶어서 축제마당 매점에서 카스맥주 한 캔을 사 갖고 친구는 쪼금 주고 난 벌컥벌컥 마시고 카---! 를 날리며 집에 가는 버스에 사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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