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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Aug 14. 2023

2023 코로나 유감

인생후반전 작전타임!

딩---

웅---
이 느낌은 뭐지?
아침을 맞는 내 몸의 신호가 이래도 되나 싶게 무겁고 멍한 기분이 들었다.



2023년 계묘년 1월 1일 새해 첫날의 일이다. 내가 계묘생이니까 회갑년을 맞은 첫날 특별한 감회는 없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내 이력에 입술이 삐뚤어지는 자괴감만 밀려오는 판이다. 음력설을 쇠는 우리 오자매는 새해첫날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언니들은 내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50분쯤 떨어진 익산에 모두 살고 있다. 네 명의 언니들과 나까지 오자매에 내가 터를 팔아 두 명의 남동생까지 우리는 칠 남매다. 칠 남매는 두 달에 한번 계모임을 하고 오자매는 따로 짬짬이 만나 왁짝거리며 근동나들이를 한다. 새해 첫 날도 그런 날이었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따뜻이 챙겨 입고 운전을 해서 익산으로 향했다.
셋째 형부가 운전해 주는 차에 타고 다섯 자매가 한나절을 유람했다. 금마에서 점심으로 맛집매운탕을 먹고, 천주교 순례지 나바위성당을 둘러보는 중에도 유난히 바람 끝에 찬기운이 묻어왔다. 전조증상이 예사롭지 않다 싶어 귀가를 서둘렀다.
몸져누워 밤새 온몸이 욱신 거렸다.



집에 있던 코로나 검사 키트로 자가검사를 했더니 두 줄이 착색됐다. 양성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만 3년이 넘도록 변신을 거듭하며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백신을 맞기가 무섭게 변종이 나타나고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재확산된다 하고 3년을 버틴 나도 결국 코로나 환자가 됐다.



예전 감기몸살 걸렸을 때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증상들이 더해져 일주일 밤낮을 침대에서 보냈다. 두통, 발열, 어지러움, 메스꺼움, 관절통, 피부통, 늑간통, 피부발진등 독감증상하고도 분명 달랐다. 격리가 원칙이라 누가 곁에 있을 수도 없고 아들이 보내주는 식재료와 지인께서 날라 주신 음식으로 버텼다.



되돌아보면 지난 60년간 나는 부모님이 주신 건강 덕분에 병을 모르고 신체 건강하게 살아왔다. 건강 때문에 무엇을 못하고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겐 절실한 목표도 끈질긴 실천도 없었다.
매번 새해가 오면 크고 작은 계획을 하고 실천을 시도했지만 얼마못가 계획마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해 왔다.



이번 해는 나에게 육십갑자가 새로 시작되는 새해다. 짧지 않은 세월 60년을 살고 나서도 빈약하기만 한 인생 포트폴리오를 만지작 거리자니 조금 화가 난다. 나의 게으름에, 나약함에, 부족한 끈기에, 너그러운 포기에.



직업 삼아해오던 건축일도 지난해로 끝나고 말 그대로 은퇴한 셈이니 24시간이 자유롭다. 지난 3개월여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생 후반에는 무엇을 하고 살 건지 궁리를 하느라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로 그득했다.



새해 첫날 몸져누워 일주일을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결국 '쓰기를 실천하라'는 명령을 내가 내게 내렸다.
오랜 세월 나에게 쓰기란 작업일지, 결제계획, 송금기록, 일정표, 일기 등 잊지 않으려는 기록이 전부였다. 그나마 일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쓸 일도 없어지고 간간이 일기를 쓰는 게 전부다. 이제는 기억을 위한 기록 말고 누군가에게 조근조근 들려주듯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무슨 이야기를 쓸지 막연하고 궁핍한대로 우선은 책을 읽고 쓰고, 산에 다녀와서 쓰고, 분갈이를 하고 쓰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쓰고 잡다한 것부터 써내다 보면 글밭농사도 늘고 자연, 글열매도 달리겠지 생각하고 있다. 게으름을 어쩔 건지는 장담을 못하겠지만 이젠 일핑계도 못 대고 결국 놀다 쉬다 지쳐서라도 쓰지 않을까?

다행히 언니들 중엔 나한테서 코로나 옮은 사람이 없다 하니 안심하고 이제 좀 밖에 나가서 한 시간쯤 걸어봐야겠다. 코로나를 일주일 앓고 난 나는 어렴풋이 실마리 한가닥을 잡은 듯 맑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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