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봄!
검은 토끼의 해, 검은 토끼의 상념!
또 봄이 왔다.
2023년, 올해의 봄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다. 회갑년에 맞는 새로운 계절이라 그렇고 하던 일을 쉬면서 은퇴의 심정으로 맞이하는 봄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 속 계절의 환생을 새삼 경이롭게 관찰하고 있다.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나는 봄꽃 싹이 텄나 궁금해서 아파트 화단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오가는 길에 흙덩이를 이고 뾰족 올라온 어린싹을 만나면, 대견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아이고 무겁겠다'하고 중얼거리며 흙덩이를 얼른 들어내 준다. 그 싹이 자라서 꽃이 피고 지고 씨를 맺는 동안 나는 그 꽃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도 함께.
올해는 음력 2월에 윤달이 들어서 봄꽃이 좀 더딘가 싶지만 그래도 볕 좋은 양달에는 벌써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고 개나리도 밤별처럼 하나둘씩 빛이 난다.
내게는 한 달에 두 번 30분 정도 운전을 하고 달려가, 좋은 사람들과 포근한 시간을 보내고 오는 힐링의 장소가 있다. 임실군 운암의 호숫가에, 잔디와 야생화를 심어 정원을 가꿔놓은 멋스러운 '코티지'카페가 거기다. 혼자서 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 주변 풍경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것도 덤으로 흐뭇하다.
그 카페에 갈 때마다 먼저 호수의 물높이를 본다. 갈수록 물이 줄어 지난겨울엔 바닥이 다 드러날 만큼 가물었다. 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호수라 가물어진 바닥엔 수몰 전 마을의 개울과 다리와 옛길이 그대로 드러났다. 멀리서 그 풍경을 볼 때면, 그 길을 걸어서 개울을 건너 집으로 오고 갔을 수몰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잠깐씩 그려 보기도 한다.
마른 호수를 볼 때마다, 큰 물이 가득 차서 넘실거리며 반짝이던 지난여름의 호수풍경이 보고 싶어 진다.
지난주 '코티지' 앞마당에도 맵싸한 바람 끝에 언뜻 훈풍이 섞여 왔다. 나는 또 자연스레 양지쪽 마른 잎 아래로 눈길이 가고 발길이 가고 손길이 가서 고개를 숙이고 낙엽을 들춰봤다. 노란색 크로커스가 먼저 봄단장을 시작했다. 낙엽들을 좀 더 걷어 냈더니 바로 옆에 복수초도 아직 꽃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내일이라도 병아리같이 노란색 꽃을 펼칠 모양새다.
중년의 코티지 음악감상 회원들이 크로커스 꽃을 보고 '아유 ㅡ' 하고 유치원생 같은 소리를 내면서 사진을 찍느라 부산스럽다. 나도 접사 모드로 꽃사진을 찍었다가 그림일기장에 그려놓고 짧은 이야기를 써 두었다. 올해 처음 만난 봄꽃이라 반가웠다고.
지난 3년 동안 호흡기 감염병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 인류의 삶은 개인마다 빗장을 닫고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계절은 바뀌어 꽃을 보고, 풀을 보고, 숲을 보며 기다렸다.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 멀리 있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해에는 전염병규제도 풀리고 바이러스도 좀 안정되어, 여럿이 만나는 일도 함께 식사하는 일도 부담을 덜게 되었다.
참 다행이다!
다음 주에는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서 매화, 벚꽃도 보고 3년간 못 본 친구도 반갑게 만나러 떠나야겠다.
재첩국, 벚굴도 기다려라!
202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