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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Nov 21. 2023

서울의 산(2023.11.19)

인왕산 - 북악산 - 청와대

날씨가 추울까 봐 하루 산행인데도 넉넉한 배낭을 준비했다.

패딩을 넣고 보온 도시락도 싸갖고 가야 하니까.

전주에서 출발하는 28인승 리무진이 빈자리 없이 모두 찼다.

산행 후에 청와대 관람 스케줄이 있는데, 산행은 못해도 청와대 구경을 할 사람들이 함께 가는 듯싶다.


회원 중 한 분이 오랜만에 부인과 함께 오셨다고 따끈따끈한 떡을 돌려서 맛있게 먹었다.

늘 보온병에 원두커피를 준비해 와서 모두에게 나눠주시는 분이 오늘은 떡도 주셨다.

인심 넉넉하신 부부 덕분에 버스 안이 훈훈해졌다.


오전 10시, 경복궁 부근에서 인왕산 자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성곽을 따라 50분 정도 걸어서 인왕산 정상(338.2미터)에 올랐다.

북악산으로 가기 위해 계속되는 성곽길을 걷는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만났다.

단풍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예쁘게 물들어 보기에 좋았다.

영화'동주'를 생각했다.

젊다 못해 어린 시절을 살다 간 그들의 생애가 한없이 가엾고 고귀해서 코끝이 저렸다.

밤시간에 그곳에 있어보고 싶었다.

시인이 보았던 그때 그 별 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겠지.




'창의문'안내소 앞 데크 위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추워 보여요. 작두콩차 따끈하게 마셔봐요"

마침 보온병의 차를 따라주시는 회원이 반가웠다.

살짝 찬기운이 몸을 식히려는 찰나에 김이 나고 구수한 차를 한잔 권해주신 분, 고마워요.



가파른 계단이 코에 닿을라.

허벅지가 터질라고 한다.

이럴 땐 들숨 날숨의 길이와 속도를 규칙적으로 맞추면서, 느리되 쉼 없이 오르는 것이 나의 산행 비결이다.


북악산(백악산 342미터)에 올랐다.

이제 청와대를 향해서 내려갈 참이다.

대부분의 길이 데크계단으로 이어졌다.

기울어진 소나무에 등산객들이 부딪칠까 봐 스펀지 보호대를 나무 둘레에 감싸서 배려해 준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함께 산행하던 동생이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고생했던 생각이 나서, 이 보호대가 예롭지않게 보였다.

                    



청와대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온화한 기운 없이 썰렁하게 보였다.

지금도 조명은 반짝이고 카펫은 폭신했다. 새로운 유적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TV에서 잠깐씩 보았던, 붉은 카펫이 깔린 중앙계단을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오르내렸다.

영부인의 집무실이었다는 '무궁화홀'의 비어있는 하얀 벽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관저의 뒤꼍으로 돌아가보았다.

황량히 비어있는 장독대에 항아리 서너 개가 지난날의 덧없는 영화를 담고 있는 듯......

오늘 청와대를 비추는 오후햇살처럼 모두에게 빛나고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장독대옆 정화수에 소리 없이 빌었다.





경복궁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기다리는 버스에 올랐다.

함께 갔던 회원 모두 사고 없이 전주로 돌아와서 국물진한 소머리국밥을 먹고 배부르게 헤어졌다.

오늘을 잘 버텨준 나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안전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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