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뒤는 카오스!
화려한 런웨이를 걷는 패션모델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관객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나면, 무대뒤의 공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TV다큐로 본 적이 있다. 다음 의상을 갈아입느라고 초를 다투며 스텝들이 달려들고 벗은 몸을 가릴 여유는 시간의 사치가 될 뿐, 의상의 디테일을 완성하는데 집중하느라 모두 여념이 없다.
며칠 전 국악공연에 출연하는 한국무용 강 선생님의 스텝자격으로 나도 공연장의 출연자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무대뒤의 대기실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있고, 각 팀마다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그 외에도 여러 팀이 함께 쓸 수 있는 큰 방이 마련돼 있었다.
큰 방에는 분장사와 헤어 디자이너가 와있고 그들 앞에는 공연출연자들이 앉아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얹고 공들여 치장을 하는 중이다. 리허설을 앞두고 무대에서도 기술자들이 기계와 조명을 설치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출연 당사자가 아닌 덕분에 자연스럽게 관찰자의 눈으로 대기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규모가 소박한 국악공연이라서 출연자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함께 와서 옷을 입히고 소품을 챙기며 도와주고 있었다. 찬조출연을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연신 뛰어다니며 어른들의 걱정을 들었다.
경기민요팀은 대기실에서 소리 내어 연습을 하느라고 부산을 떨면서 다른 공연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강 선생님은 "여기 공연자들 정말 촌스럽다. 대기실에서 조용히 각자 공연 준비에 집중해야지 이게 뭔 일이래." 내 귀에 속삭이며 푸념을 한다. 교방굿거리춤의 명무인 강 선생님은 "대기실에서는 말없이 차분하게 기운을 모으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옆사람도 들을 수 있게 소리 내서 말했다.
리허설 중인 무대에서도 큰소리가 났다. 연출자와 공연하는 아이들의 선생님 간에 조명문제로 다툼이 생겨서 고성이 오가고 리허설이 중단되고, 다시 시작되고 어쨌든 마무리가 되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대기실이 텅 비었다.
각각의 공연팀마다 펼쳐 놓은 캐리어와 의상들, 다림질 세트와 먹다 남은 간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출연자들이 곱게 화장하고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고 서 있는 무대와, 치장을 마친 출연자들이 빠져나간 텅 빈 대기실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앞모습과 뒷모습도 다르다.
누구에게나 앞모습과 뒷모습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여행을 함께 가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결혼해서 함께 살아보면 연애할 땐 몰랐던 의외의 모습을 곧 발견하고 아득해지는 순간이
"나만 있었을까?"
난 나이가 좀 들면서 '어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축소되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매스컴을 통해서나 대인관계에서나 어떤 유능하고 멋진 사람을 보게 되더라도,
'저 사람의 뒷모습엔 어떤 반전이 숨어있을까?'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다양한 인생 경험, 실망경험을 통해 얻게 된 부작용일까?
내가 기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사람은 앞모습과 뒷모습의 간극이 가장 적은 사람이다.
오늘 또,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뒤로 부스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