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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Dec 01. 2023

오이디푸스의 '길'

- 선택의 자유?

오늘아침 창 밖엔 청량하고 신선해 뵈는 '첫서리'가 낯익은 풍경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매일아침잠에서 깨면 거실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게 나의 첫 번째 루틴이 됐다.

아침마다 창밖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뀌는 컬러와 음영의 차이로 내게 오늘의 천기를 일러 준다. 그 풍경에 등장해 움직이는 것들은 구름, 해, 자동차, 경운기,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 또는 걸어가는 사람, 날아가는 새, 그들이 때때로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거실 창밖풍경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당기는 선명한 존재는 '길'이다.




몇 년 전에 '배우 황정민'이 주연한 연극 '오이디푸스'를 관람했다.

고대 그리스신화를 배경으로 설치한 무대와 조명이 신비롭기도 하고, 황정민의 절절한 연기가 감동을 준 덕택인지 그 이후로 '어떤 길'을 보면 자연스럽게 '소포클레스의 비극/오이디푸스 왕'을 연상하게 되었다. 내게 '어떤 길'이란 비포장 흙길을 말한다.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쥐고 농락하는 신화의 세계에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할 운명'을 손에 쥐고 테베의 왕궁에서 태어났다. '라이오스'왕은 이 끔찍한 신탁을 듣고서 갓 태어난 오이디푸스의 두발을 꿰어 묶고는 양치기를 시켜 숲으로 데려가 죽이도록 했다. 차마 그러지 못한 양치기는 두 발이 묶인 오이디푸스를 이웃나라 코린토스와의 국경 숲 속 나무에 걸쳐두었다.


이웃나라 양치기가 아기 오이디푸스를 구해서, 마침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 왕에게 전해주었다. 발견당시 아기의 발이 부어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오이디푸스(부어오른 발)'라고 지었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 왕궁에서 친자식처럼 자라났다.


어느 날 코린토스 왕궁연회에서 출생의 비밀을 얼핏 듣게 된 오이디푸스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델포이로 신탁을 들으러 간다. '너는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다.'이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비통한 심정으로 패륜을 피하고자 코린토스를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테베지역의 '좁은 길목'에서 운명적인 만남으로 라이오스왕과 오이디푸스가 마주쳤다. 길을 비키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 오이디푸스는 친부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라이오스왕 일행을 죽게 했다. 일행 중에 라이오스왕의 마부 한 사람만이 살아서 도망쳤다. 


그즈음 테베에는 수수께끼를 내서 맞히지 못하면 사람을 잡아먹는 스핑크스가 나타나 재앙이 되자, 라이오스왕이 이를 해결하려고 신탁을 들으러 가는 중에 오이디푸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계속되는 방랑 중에 테베의 왕비 '이오카스테'가 스핑크스를 물리치는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자신이 아내가 돼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되어서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하고 네 명의 자식까지 낳았다. 왕비는 신비한 목걸이 덕분에 아직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테베에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왕은 처남을 시켜 신탁을 듣게 하였더니 '선왕을 죽이고 패륜한 자가 떠나지 않으면 역병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예언을 전했다. 


오이디푸스왕은 '라이오스왕을 죽인 자를 찾아오면 그 자의 눈을 멀게 하겠다.'라고 공약하고 살인자를 찾는데 전념했다. 과거 좁은 길목에서 라이오스왕이 죽을 때 살아서 도망쳤던 마부의 증언으로 현재의 왕 '오이디푸스'가 범인임을 알게 되고 예언자에 의해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을 메어 죽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떠돌다가 아테네의 어느 동굴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두 아들은 왕위를 다투다가 모두 죽고 두 딸도 자살했다거나 신전에 제물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지? 타고난 성격이 운명일까? 초자연의 손길이 우리들의 운명을 설계하는 걸까?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번복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이 내 순수의지일까? 아니면 그런 선택을 하도록 이미 결정 돼 있는 걸까?


인생이 연극이라면 우리는 각자 배역을 맡은 연극배우다. 난 아웃사이더 조연쯤 되는가 보다. 매사에 특별할 것 없이 무대 위에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 배역이 편하기는 하다. 가끔 존재에 대한 허무로 자괴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간 겪어온 일에 대해 심란하게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역할이니까!


가끔 흉악범죄를 저질러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복도 없다. 어쩌다 저런 배역으로 세상에 나와서 해를 끼치고 공분을 사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또 내게 섭섭하게 하고 이해 못 할 처신을 하는 사람을 볼 때도 역시

'저 사람도 일부러 그러겠나, 자기가 맡은 역할이 그런 거겠지.'하고 마음을 돌려 먹는다.


운명론자가 되면 세상만사 모두가 

"그럴 수도 있지!"


혹여 내가 당신께 못 된 면모를 보이더라도 이렇게 생각해 주세요.

"너 이번생에 나한테 빌런이냐? 이번에 악역을 맡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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