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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an 08. 2024

하루설계 언제 하세요?

- 백수의 스케줄 관리

약속을 잡으려면 일정표를 미리 꼼꼼히 봐야 된다.

또 약속이 잡혔으면 꼭 일정표에 써 놓아야 한다.

내가 무심하게 '오케이'를 하고 나서 나중에 난감한 경험을 몇 번 한 후론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있다.


오래전, 조카 결혼식날을 까맣게 잊고 등산을 갔다가 "몇 시에 출발해?" 하는 전화를 받고 혼비백산했던 일이 두고두고 잊히질 않는다. 가까운 산이라 부랴부랴 산을 내려와 차를 몰고 집에 들렀다가, 또 한 시간을 달려가서 다행히 결혼식장에 늦지는 않았지만 신부대기실의 조카를 못 봐서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미리 날짜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날과 오늘이 같은 날인지 모르는 인지부조화(?)를 겪고 나면 더욱 약속기록의 중요성을 절실히 통감하게 된다.


난 연예인도 아니고 비즈니스맨도 아니고 지금은 은퇴한 백수 아주머니지만 스케줄 관리는 필수!

나뿐 아니라, 모임 중에 약속을 잡을 때면 일제히 폰을 꺼내고 일정표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모습이 이젠 모두의 일상이 됐다.



난 잠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짚어본다. 설레는 시간이다.

약속시간을 알고, 집에서 출발시간을 정하고, 그러면 외출준비를 시작할 시간도 정해진다.

두 개 이상의 스케줄이면 순서에 따라 동선과 주차장도 점검해 놓는다.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 전 또 몇 가지 더 체크한다.

오늘은 몇 월? 며칠? 무슨 요일? 절기는? 날씨는? 미세먼지는?

이렇게 기본적인 일상정보를 인지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준비완료'된 느낌이 산뜻하다.

사실 백수 입장에서 하등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노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환갑을 갓 넘긴 나이지만, 혹시나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시간에 신경을 쓰고 또 매번 말조심하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여러 사람과 대화 중에 부주의한 말 한마디로 의도치 않게 누군가는 상처를 받거나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니까.


"왜 쓸데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

"이런 게 노화인가?"

혼자서 꿀밤을 먹이고 한숨을 쉬면서 괜히 순발력 도망가는 세월을 한탄할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 속에서도 좌중의 입장을 헤아려 가면서 문제적 발언을 삼가야 하는데, 친하다고 여러 말하다가 혹시 실수한 게 아닐까 싶으면 밤잠을 못 이루고 후회막급이지.

그런 날은 내일의 계획이 멀리 달아나 버린다.


나의 은퇴 전 직업, 건축일을 하던 때에는 수 개의 스케줄을 노트에 순서대로 써 놓고 지워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때는 일부러 세분해서 번호를 붙여가며 한 페이지 가득 일정을 메꿔 써놓는다.

처리된 일은 줄을 그어 지운다. 오늘 안 된 일은 메모와 함께 내일 일정표에 써넣는다.

내 일의 흔적이 남아 뿌듯하게 좋았고 일정만큼의 교류가 쌓이고 협력을 이루고 그만큼 돈을 나누어 벌었다.

음, 세금 내는 일정은 빼고.


물론 난감한 민원이나 결제대금을 고민할 땐 잠을 못 이루고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면서 잠들 때도 있었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날씨를 체크하고 일정노트 챙겨서 현장으로 달려갔었는데......

언제부턴가 휴대폰에 일정을 기록하게 되면서 예전의 '그 재미'는 없어졌고, 이젠 적어 놓고 줄 그어댈 일정도 없어져서 서운하다.


지금은 예전처럼 한 페이지 채울 만큼의 일정이 없어도 잠들기 전 곰곰이 하루하루를 계획한다.

책 읽는 시간, 글 쓰는 시간, 스트레칭하는 시간,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시간, 춤추러 가는 시간, 장구 치러 가는 시간, 음악감상 카페에 가는 시간, 귀가 길에 장 보는 시간, 지금의 나에게는 모두 소중한 시간이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과 주변환경을 바르게 인지하고, 실행하고,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조화롭게 어울려 살다가 부조화에 빠지지 않고 생을 마치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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