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을 통해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일본의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오퍼스>를 혼자 보러 갔다.
2022년 9월 8일~15일까지 8일간 스튜디오(NHK509)에서 촬영을 했다 하니 이 연주가 그의 마지막 작별인사가 된 셈이다. 한국에서는 2023년 12월 27일 개봉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곡 20곡이 연주된 다큐형식의 영화였다. 이전에도 다큐영화 <코다 2017> <에이 싱크 2018>를 찍었다. 여러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배우로 참여한 경우도 몇 편 있다고 한다.
무대에는 한 대의 피아노와 최소한의 조명, 마이크와 카메라가 전부다.
까만 화면에 뒷모습을 보인 피아니스트는 단정한 백발, 검은색 재킷. 마르고 왜소한 몸체.
시종일관 무채색의 화면과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이상 흐른 시점에서야 피아니스트의 얼굴을 볼 수가 있다.
그는 2014년 처음 암진단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수술과 투병, 예술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던가 보다.
<오퍼스> 영화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촬영된 스튜디오 연주다.
병색이 짙은 얼굴에 깊은 주름, 혼신을 다 하는 호흡, 귀한 웃음, 집중하는 입모양, 자신의 연주를 지휘하는 주름 진 손, 악장사이의 여백까지. 단조로운 화면과 격정으로 치닫지 않는 단아한 음악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 줄 모르고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 시간 40분 영화 중에 피아니스트의 음성은 딱 한차례 들려주었다.
연주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말했다.
"다시 합시다. 지금 힘들여서 하고 있거든."
촬영팀에서 권유했다.
"좀 쉬었다 하시죠. 선생님."
피아니스트는 두 손을 들고 눈앞에서 '마임'을 하는 듯 '요렇게, 요렇게'움직여 보다가 또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두 손에 자신의 숨을 담는 것처럼 연주 중의 공간마다 섬세하고 소중하게 끊이지 않는 손동작을 지었다.
카메라가 그의 두 손과 검은색 셔츠, 피아노의 현을 때리는 나무망치, 눕혀진 악보, 역광조명에 빛나는 그의 실루엣, 사소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지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혼신을 다하는 예술가의 무대를 보면서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느리고 여리고 낮게 정돈된 피아노 소리가 편안했다. 오묘한 표정과 쉼 없는 몸짓에서 그 사람 내면의 언어가 내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듯 평화롭고 슬펐다.
고단한 피아니스트는 딱 한번 입술을 다문채 소년처럼 웃었다.
자신의 연주가 맘에 들었을까?
자신의 연주가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영화의 마지막엔, 피아니스트는 없고 피아노 건반만이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