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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an 02. 2024

소원성취 비나리

- 구름에 가렸어도 빌고 보자!

여자 셋, 한 남자 이렇게 중년사람 넷이서 해돋이 산행을 갔다.

겨울철 새벽인데 매우 춥지는 않았다.

진안 마이산 금당사에 도착하니 여섯 시.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방한복을 단단히 챙기고 출발.

안개가 뿌옇게 낀 숲은 비현실적으로 아늑했다.

너무 서둘러가면 산꼭대기 정자에서 떨고 기다려야 하니까 대략 일출시간에 맞추며 발걸음을 더디 놓는다.


조금씩 올라갈수록 기온이 쌀쌀해져서 주머니 속의 핫팩을 빨리빨리 주물러 뎁힌다.

마이산의 바위들은 자갈돌이 박힌 타포니지형이기 때문에 물기가 있거나 바위가 얼면 더 미끄럽고, 경사가 급한 봉우리는 더 위험해진다. 깜깜한 새벽 봉우리는 영하 2도에 물기가 얼어 조심스러웠다.

"이쪽이 낫다, 저쪽이 낫다" 서로 훈수를 해가며 정자에 올랐다.


527M 나봉암 정자에서 해를 맞으려고 올라오긴 했으나 난감하다.

일부러 연기를 피워 감싼 듯 두터운 구름이 밀려들어서 좀처럼 여명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 시간이 다 지나가도 영 기미가 없다.


우리는 구름 덮인 앞산을 바라보며 작년에 일출장관을 보았던 포인트에 대고 소원을 빌기로 했다.

우정이는 자기 소원을 직접 빌지 않고 나한테 대신 빌어 달라고 했다.

일단 나의 소원을 먼저 빌고, 세 사람의 소원을 접수받아서 낱낱이 조근조근 소리 내어 빌어줬다.

서연샘은 미니 심벌즈같이 생긴 명상악기를 살살 부딪히며 분위기를 영험하게 돋웠다.


영락없는 당골네의 비나리 장면다.

우정이가 그러는데 "어떤 영험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그 영험한 사람은 점점 기운이 빠져나간다."


뭬이야?

소원을 내게 빌어달라는 건 다 너의 큰 그림?

우리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면야 기운 좀 빠지면 어뗘?


엉금엉금 기어서 봉우리를 내려와 탑사 앞마당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되었다.

우정이가 미리 부탁해 둔 식당으로 고고.

진안 흑돼지 오겹살에 막걸리 한잔하고 감성 충만해진 중년사람들 안전귀가 완료!


작년 마이산 일출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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