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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Dec 25. 2023

공휴일 그림일기

- Merry White Christmas!

크리스마스 아침, 눈이 온다.

창밖에 설경은 요 며칠 아주 녹지 않고 보기 좋게 뽀얗다.

마음도 느긋한 공휴일, 직장에 안 다니는 백수지만 공휴일이 참 좋다.


오늘은 친구 생일맞이 점심약속이 있다.

동짓날 팥죽을 못 먹어서 오늘 먹기로 했다.

생일날, 팥죽이 좀 약소한가 싶지만 '팥죽결핍'이 급하니까 먼저 먹기로......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외출준비를 하려고 커피를 한잔 내렸다.

소설을 읽지 않은지 오래됐는데, 요즘엔 시간이 여유롭고 도서관에 자주 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소설책을 집었다.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소설 <그 후>.


몇 개월 전 일본의 할머니 작가 '시바타 도요(1911~2013)'의 시집을 시골 관공서 책장에서 우연히 보고 읽게 된 후, 마음 한쪽에 할머니 작가의 위로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몇 년 전 아들과 떠난 일본여행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유적을 관심 있게 보았던 영향인지 그의 소설을 읽기로 했다.

시바타 도요                                                                           나쓰메 소세키


작가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국유학도 다녀온 일본 근대문학의 대문호라고 한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는 탐미주의적 지식인이며 부유한 아버지덕에 대학졸업 후에도 놀고먹는 한량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혐오하고 색채와 향기를 탐닉하며 집안에서 권하는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친구의 아내를 선택한다.


 '미치요'는 오빠의 친구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오빠는 열병으로 대학생 때 죽었다. 오빠의 두 친구는 다이스케와 히라오카다. 미치요의 오빠가 죽은 후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히라오카를 맺어줬다. 다이스케도 미치요를 좋아했지만 의리인지 우정인지 히라오카에게 미치요를 양보했다.


친구부부(미치요와 히라오카)가 타지로 가서 살다가 히라오카의 불성실한 생활로 빚을 지고 다이스케 곁으로 이사를 왔다. 다이스케는 집안의 결혼 독촉을 거부하며 옛사랑 미치요를 불성실한 친구 히라오카에게서 빼앗기로 한다. 미치요의 마음도 다이스케에게 있었다.


다이스케의 앞날에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고, 사회적으로 유리되고, 그렇게 경멸하던 생계를 짊어지게 될 역경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난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자연의 지령을 따름'이라고 합리화하며, 인간사회의 윤리적 책임은 회피할 수 없지만 자연의 섭리로는 '죄 없음'을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근본 없는 일본사회의 근대화가 결국은 사회적 병폐가 되고 있음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 러일전쟁 후 경제공황으로 가난한 젊은이들의 막막함, 정경유착, 부정부패등,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관되게 어둡고 불안하다. 요즘을 사는 우리 사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난 소설을 읽는 동안, 백 년도 더 이전의 일본사회엔 서구문명이 활발하게 유입되고 있었구나, 우리나라는 구한말의 혼란을 겪어낼 때 그들은 자본주의의 파도를 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유한 기업가의 문명화된 생활상이 소설에 잘 묘사돼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어느 시대에 살든 다이스케처럼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살 만하지 않겠나?


그러나 어느 시대에 살든 '내 뜻대로의 삶'을 살아가려면 생계를 짊어져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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