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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Dec 18. 2023

눈 위에 발자국

- 앞날엔 마른 길을 앙망(仰望)함.

엊그제까지 겨울날씨가 푸근해서 꽃이 핀다고 걱정들 했는데, 어제오늘 쌩한 추위에 눈까지 내려서 제대로 겨울 같은 주말을 보냈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먼산 봉우리도 눈이불을 살짝 덮은 모습이 오히려 포근하게 보인다. 느릿느릿 도서관에 갈 채비를 하고, 걸어갈 참이니까 빵빵한 패딩을 챙겨 입었다.


현관 밖 계단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었다.

관리실에서 단지 내 걷는 길은 눈을 쓸어 놓아서 한결 안심이 되었다.

아파트 그늘을 벗어났더니, 일요일 아침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하얀 세상에 눈이 부셔서 눈을 찡끗 감았다.


도서관 주변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이 넓게 펼쳐져서 나 혼자 가로질러 걸었다.

벽돌을 깔아놓은 산책길로 발을 옮기고 뒤돌아 보았다.

내 발자국만 선명하게 찍혔다.



언제부턴가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이 덕담이 되었다.

꽃방석에 앉고 꽃길만 걸을 수 있다면 인생을 왜 '고행'이라고 했을까?

개인마다 경중이 있을 테지만 오로지 평탄한 인생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

앞날을 살아갈 동안 스스로를 케어하고 마른 길로 데려가고 싶다.

내 인생의 젖은 길은 다 지나갔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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