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주는 기대와 설렘의 유효기간

by 글밤


시작이 주는 설렘과 기대의 유효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시간은 셀 수 없는 명사의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배웠던 학교 시절의 영어수업이 아직도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보면, 암기식 교육이 단발성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셀 수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우리 곁에서 늘 함께 한다. 함께한다기보다 우리가 시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그런 시간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때가 있다. 바로 끝과 시작이라는 어떤 정해진 기간이나 순간들을 마주할 때다. 그리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 해의 끝과 시작이다. 달력 속 날짜들, 하루하루가 마치 어떤 물리적인 성질을 가진 것 같고, 평상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바람이 부는 것을 온 감각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끝과 시작은 단 1초의 시간 흐름이지만, 감정은 전혀 다르다. 끝을 향해 가면서 가슴속에 생겨났던 후회나 미련들이, 새로움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

1월 10일.

‘사람 마음이 참 그렇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시작의 설렘과 기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일단 시작이 되면 무심해지고 조금씩 무뎌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새로운 해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벌써, 어느새, 이리도, 무감각해졌을까?

겨울 저녁,

아직은 빨리 지는 해가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저 해는 언제나 뜨고 진다.

날짜에 상관없이, 특별한 의미나 순간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삶을 채우는 것도 크고 대단하고 특별한 일들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의 반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에 작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일들이 삶을 지탱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변함없이 내 방 창에도 잊지 않고 비취는 햇살,

집을 나서는 길과 돌아오는 길의 같은 풍경,

한결같은 사람들과의 만남,

별다를 것 없는 비슷한 일상의 대화들 등.

새해가 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움이나 사건이 내 삶에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그런 상상이 주는 설렘이 나에게 있었나 보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글에서 유리병에 돌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큰 돌만이 아닌 큰 돌 사이의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작은 돌, 그리고 또 작은 돌 사이를 채울 수 있는 모래가 필요하다고 했다.

삶을 채우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크고 특별한 일들이 삶에서 일어나지만, 삶을 밀도 있게 채우는 것은 작지만 수많은 평범함, 그리고 꾸준한 반복이 사이사이에 자리할 때가 아닐까 싶다.

시작의 기대감과 설렘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을지 모르지만, 올해의 시간 속 일상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유효기간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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