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생각처럼 그냥 밀려들 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생각처럼 말이다. 이때의 감정들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생각처럼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기억만이 남을 뿐, 감정은 지워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정들이 있다. 바로 내면에 근거를 둔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들의 특징은 불분명하다. 마치 수면 위에서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보이는 깊은 바닥처럼 정확히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모호한 감정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일상에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무엇을 보더라도 기저에 깔려있는 그 감정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심리학 책등을 보면 이런 감정에 이름을 정의하라고 한다. 불분명함,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은 형태가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는 그렇다.
멍한 느낌, 상실감까지는 아니지만 내 안에 뭔가가 빠진 기분. 두리뭉실하면서도 답답함과 무력감을 야기하는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헛헛하다. 그리고 이 단어가 가장 적합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비어있는 듯한 느낌.
완연한 여름으로 들어서면서 지치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자연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 시작일 지도 모른다. 기후는 인간의 생활에 가장 영향을 주는 외부의 조건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작은 계획이라도 자꾸만 미루게 된다.
물론 알고 있다. 이것도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오히려 나는 나의 내면에서 더욱 멀어지고 더 공허함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여름 안에서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여름이라는 핑계로 미루며 보내고 있는 시간의 후회가 남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감기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일정 시간 머문 후 지나가는 한 시기의 감정일 수도 있다.
채워야 사라지는 감정이라면, 무엇을 채워야 할까?
정말 바쁘게 살아가야 할까?
밀려있는 독서들을 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끊임없이 하고, 내면을 다독일 취미생활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상호 유대감을 높이고, 물질적인 면에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리고..............
만약 그래도 헛헛한 마음이 계속 밀려든다면, 어떡하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비워야 한다.
애초에 채워야 한다는 방향성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일지도. 후회와 미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무작정 커진 공간일지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덜어내고,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덜어내고,
초조함과 조바심을 덜어내고,
나를 판단하려는 마음을 덜어내고,
효율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을 덜어내고,
……
그렇게 조금씩 비워내다 보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채움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