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하는 삶

by 글밤

한때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보자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심플함과 간결함이 삶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에 끌렸다. 그렇지만 처음 문장에서도 적은 것처럼 다짐은 그저 다짐이다.

다짐이나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져, 실질적으로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목표의식이 있어야 한다. 즉, 많은 물건이 없이 살 수도 있다는 신념이 내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이나 소유욕이 많은 사람은 결코 아니다.


내가 미니멀한 삶에 끌린 이유는 청소를 좋아한다는 것.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물건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건들이 바깥에 나와있는 것들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전체적인 색의 간소함을 지향한다.


물건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구매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거의 책이나 문구 소비가 많은 편이고 아마 나의 최고 장식품은 화분 정도이기에 그래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맞는 생활패턴을 찾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 물건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자 미친 듯이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물건들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자 부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건 실제로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나에게 미니멀한 삶이 아직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간과한 것이다.

심플, 단순하고 간결하다 함은 없는 것이나 부족한 것이 아니다.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맞게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여전히 미니멀한 삶을 꿈꾼다.

그리고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내가 가진 물건들, 내 삶에 들어온 물건들이 각각의 쓰임새에 맞게 모든 가능성을 소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를 말해주는 것은 많다.

내가 본 영화, 듣는 음악, 그리고 하는 말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나를 말해준다.


지금 내 방에 있는 물건들도 그렇다.

그 물건들이 내 방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충동적인 구매가 아닌 이상 내가 선택한 물건들일 것이다. 그 말은 즉 내가 나의 삶의 방식에 맞추어 들인 것이라는 뜻.


그런데 그 물건이 그냥 놓여 있는 것, 서랍 안에 방치되어 있는 것, 사는 것으로 끝나 버린 것 등. 그 물건들이 나를 나타내고 것일까? (물론 그런 성질의 것도 있지만)



전혀 소질이 없어 보이는 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뜻밖의 재능이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건들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기능이나 확장성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 또한 꾸준히 사용하고 활용했을 때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이렇게 활용된다면, 그 과정을 통해 내 삶에서도 특별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삶을 산다는 것은 처음의 다짐도 중요하지만, 나를 말해주는 것들이 내 삶을 어떻게 나타내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가 될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미니멀한 삶을 이루기 위해 의미 없는 소비보다는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소진하는 삶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덧대어 있는 것들이 떨어지고, 불분명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진정한 나만의 단순함과 간결함이 남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16화행복의 기준